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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콩 Dec 15. 2021

주인님!  원목마루 비용 주세요~

임차인의 유익비 청구권


임차인이 지방으로 직장을 옮기게 되어 집을 내놓았다. 임차인은 깔끔한 30대 신혼부부인데  4년 전에 이사 들어왔다.  임차인은 4년 전 잔금을 치르고 입주한 후에 집을 둘러보다가 임대인에게 전화를 했다.

"거실과 방바닥이 장판이라 별로 마음에 안 들어요. 혹시 제가 원목으로 교체해도 되나요?"

임대인은 당연히 수락했다.  돈을 들여서 고급 원목으로 깔아준다는데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임차인은 거금을 들여 원목마루 시공을 했고 잘 살았다.  그런데 4년 후 이사 나가는 날 임차인이 말했다.

"세입자인 제가 원목마루를 깔았으니 마루 시공비를 주세요."

임대인은 펄쩍 뛰었다.

"아니 내가 깔라고 한 것도 아니고 본인이 깔고 싶다고 하니 그러라고 한 건데, 이제 와서 마루 시공비를 달라면 어떻게 합니까?  돈을 달라고 할 거면 아예 원목마루 뜯어가고 원래 있던 장판으로 다시 깔아놓으세요."

하면서 '임대차 기간이 만료되면 임차인은 목적물을 원상으로 회복해서 반환해야 한다'는  계약서상 부동 문자(계약서에 인쇄되어 있는 약정 문자들)를 거론했다.

임차인도 지지 않았다. 분명히 임대인에게 사전 동의를 받아 원목 마루로 시공했으니, 마루 비용을 달라고 끝까지 맞섰다.

갑작스러운 요구에 당황한 임대인은 급기야  당장 원목마루 걷어내라고 소리소리 질렀지만, 우리 법은 그렇지가 않다.

임차인이 유익비를  지출하여  목적물의 객관적 가치가  증가되었다면, 임차인은 임대인에게 유익비 또는 목적물의 증가액을 상환해달라고 청구할 수 있다. (민법 제626조 제2항)

임차인의 지출로 증가된  임대목적물의 가치를 돌려주자는 취지이며,  유익비를 지출하기 전에 임대인의 승낙을 받을 필요도 없다. 그러므로 임차인은 원칙적으로 임대인에게  마루 시공 비용 또는 장판을 마루로 교체함으로써 생긴 목적물의 가치 증가액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런데 임차인의 유익비 상환 청구권은  강행규정이 아니다.  특약으로  얼마든지 제한할 수 있다. (민법 제652조 참조)

따라서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면서

 
[ 임차인이 임차 주택을  반환할 때 일체의 비용을 부담하여 원상 복구하기로 한다" 고 약정했다면 임차인은 유익비를 돌려달라고 청구할 수 없다. (대법원 1975. 4. 22 선고 73다 2010 판결) ]

이런 특약이 있다면 임차인은 유익비 상환 청구권을 포기했다고 볼 수 있어, 원목 마루 시공비를 달라고 청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런  원상복구 특약이 있다면, 임차인은 유익비를 청구하기는커녕 원목 마루를 다시 장판으로 교체해놔야 할까?

[ 원상복구 특약과 함께 "임차인이 설치한 모든 시설물에 대해 임대인에게 시설비를 별도로 요구하지 않기로 한다"라는 약정이 있다면, 임차인이 유익비 상환 청구권을 포기하는 대신 원상복구 의무를 부담하지 않아도 된다. (대법원 1998. 5. 29 선고 98다 6497 판결) ]

그렇다고 임차인이 지출한 모든 비용이 유익비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유익비는 물건을 개량하여 가치를 증가시키는데 도움이 되는 비용이다. 임차인이 유익비를 지출했다면 그 가액의 증가가 현존한 경우에 한해 임대인에게 청구할 수 있으며,  임대목적물의 객관적인 가치 증가가 입증돼야 한다.   유익비 상환청구를 받은 임대인은 현실로 지급된 비용이나 유익비에 의한 증가 가치 상당액 중 어느 한쪽을 선택해 지급할 수 있다.

원목마루 시공비를 유익비로 볼 것이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다행히 집 상태가 깔끔하게 잘 보존되어 있어서, 임대인을 설득하여 임차인이 요구하는 비용의  50% 선에서 협의하여 처리되었다.

전월세 물량이 부족하다 보니 임대인이 내부 수리를 하여 집을 내놓는 경우가 드물다. 그래서 임차인들이 내부 도배장판 시공 등을 하는 경우도 있고, 또 집 내부 시설물을 거금을 들여 교체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계약 종료 시점에 뜻하지 않게 유익비 상환 청구 등의 문제로 분쟁이 생기지 않도록, 임대차 계약 시에 충분히 조율하고 협의하는 것이 좋겠다.

10여 년 전, 이사 잔금이 끝나고 짐을 넣으러 간 임차인이 비명 같은 전화를 했다.

"잔금 전에 집 둘러볼 때는 문제가 없었는데, 전 임차인이 이삿짐 다 뺀 후에 장판을 걷어갔나 봐요. 장판이 없어요."

2년 전에 이사 들어올 때 임대인한테 장판이 너무 낡았으니 새로 깔아달라고 요청했으나, 임대인이 거절하자 말없이 장판을 새로 깔았던 임차인이 2년 후에 '내가 깔았으니 내가 들고 간다'며  말없이 장판을 벗겨 들고 가버린 사건.


이삿짐 뺀 후 임대보증금을 반환받을 때라도 '장판 내가 깔았는데 혹시 장판 값 좀 줄 수 없느냐'라고 물었으면 어느 정도 협의를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 한마디 없다가 장판을 벗겨가니 시멘트 바닥이 몸을 드러내고 있었다.

사람 사는 일은 대부분 대화로 해결된다. 물론 대화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경우도 많지만, 그래도 최악은 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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