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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콩 Dec 16. 2021

가난보다 지독한 외로움


"늙으니까 외롭네..."

눈을 마주치지 말아야 한다.  

오후에 손님 없이 혼자 앉아있게 되면 잠시 창밖을 눈으로 스캔한다.  고개는 안 돌리고 눈동자만...

그러다 혹시 할머니의 실루엣이 보이면 재빨리 열 일 모드로 돌입한다.

간혹 타이밍이 안 맞아 눈이 마주치면 어김없이 문을 밀고 들어오시는 김 할머니.

빚진 것도 잘못한 것도 없지만 나는 김 할머니를 피하고 있다.

왜냐하면 마음이 불편하니까..  

주머니에서 요구르트 한 병을 꺼내  탁자 위 내 눈 앞에 올려두고 내 시선과 직선거리가  짧은 의자를 찾아 앉은 김 할머니가 꺼내는 첫마디

"늙으니까 진짜 외롭네..."

2~3일에 한 번씩 내 눈치를 살피며 들어오시는 김 할머니는,  내가 이곳 사무실을 인수할 당시부터 이 아파트에 거주하셨던 분이다. 18년 전인 그때만 해도 곱게 연세 드신 부잣집 마나님 포스였다. 늘씬한 몸매에 화려한 원피스를 입고 다녀 어디서나 눈에 띄었다.

친정엄마랑 동갑에다 동향 말투를 쓰시는 통에 특별히 정이 더 갔다. 할아버지가 먼저 가시자 살던 집을 아들에게 증여하고 이곳으로 옮겨와 쭈욱 홀로 기거하시는, 말하자면 독거노인이다.

요즘 사람들은 잘 늙지 않는다.  먹거리가 좋아진 덕분인지 예전처럼 뙤약볕에서 고생하는 일이 줄어서인지 세월이 흘렀다고 그 흔적이 외모에 나타나는 사람은 갈수록 드물어진다.  그래서 오랜만에 만나도 '하나도 안 변했네~ 하나도 안 늙었네~  그대로이시네'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자주 보는 사람은 변한 걸 더 모르겠는 게 정상인데 김 할머니는 자주 봐도 해마다 연로하고 쇠약해져 가는 것이 눈에 띈다. 원래도 살집이 없는 늘씬한 체구여서 휘청한 몸에다 백발이 성성해진 머리 그리고 외로움에 지쳐 초점을 잃은 눈빛은 무념한 일상에 얼마나 지쳐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렇다고 노후를 연명할 생계비가 부족하여 허드렛일을 찾아다니는 처량한 신세도 아니다. 할아버지 덕분에 받는 연금으로 먹고 살기에는 부족함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왜 이분은 갈수록 사는 것이 힘들어 보일까

김 할머니의 넋두리처럼 외로움 때문이다. 오로지 외로움.
나는 김 할머니 덕분에 외로움이 온갖 바이러스와 병마와 빈곤보다 사람을 피폐하게 만든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고 있다.

"하루 종일 혼자 있으면 TV 소리도 귀에 안 들어와. 내가 집에 있는 물건 중 하나가 된 것 같아. 나는 내가 늙어서 이렇게 애물단지 같은 사람이 될 줄은 몰랐네..."

김 할머니는 하루 종일 혼자 집에 있다가 너무 적적하면 운동 겸 아파트 주변을 어슬렁어슬렁 산책하다가 말 붙일 사람이 없는지, 잠깐 들어가 앉을 곳이 없는지를 물색한다.  


그런데 그것이 갈수록 힘들다. 코로나 시국이라 모두 얼굴을 마스크로 가리고 다니며 낯선 사람을 경계하기도 하지만, 길거리의 낯선 사람과 나눌 대화는 두 마디 이상 이어질 수가 없다.

그래서 가장 만만한 곳이 부동산 사무실이다. 그나마 예의를 아는 분이라 분주해 보이거나 손님이 있을 때는 그냥 스쳐가고 한가한 시간대를 기다렸다 눈이 마주치면 밀고 들어오는 것이다.

사람은 어찌나 외로운 동물인지 누군가랑 의미 없는 대화라도 주고받으며 상대방의 살아 움직이는 표정을 보는 것이 얼마나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일인지.. 나는 김 할머니에게 깨닫는다.

" 자식들이라고... 전에는 간간이 전화라도 한 번씩 하더니 이젠 그런 것도 없어.  전화기가 있으면 뭐해. 쓸데없이 뭐 사라 어쩌라 하는 이상한 전화밖에 안 와."

대화는 거의 비슷한 내용들로 반복된다. 한 달 전에 만났을 때도 세 달 전에 만났을 때도 늘 '외롭다'가 키워드이다.

"아들은 내가 늙었으니까 자꾸 집을 팔으라는데 집을 팔면 나를 자기 집으로 데려갈 것도 아니고 내가 어디로 가겠어... 요양원이나 보내겠지. 근데 요양원은 가기가 싫어.
잘해주는 고급 요양원도 있다는데 그런데는 비싸서 보내주겠어?  요양원에 들어가면 죽어서야 나온다는데 꼭 죽을 준비 하러 가는 것 같아서 나는 가기 싫어.  그래서 집이 팔릴까 봐 걱정이야."

아들과 딸이 번갈아가며 전화해서 왜 집이 안 팔리느냐고 묻지만 할머니가 집을 파실 생각이 없으니 당연히 적극적으로 매도 작업을 하지는 않는다. 집을 보러 가면 혹시나 집이 팔릴까 봐 유난히 애처로운 눈빛을 보내는 김 할머니를 어찌한단 말인가..

"영감이 먼저 가고 혼자 있으니까 더 신경을 안 쓰는 것 같아.  명절 때 아니면 핏줄 구경을 못해.
내가 가난하게 살아보지 않아서 가난이 얼마나 힘든 것인 줄을 몰라서 그런지 몰라도. 가난한 것보다 외로운 게 더 안 좋은 것 같아."

나는 할머니랑 대화하는 것이 부담스럽다. 그래서 혹시나 할머니가 사무실 주위를 맴돌고 있으면 여기저기 전화하는 척도 하고 바쁜 척도 한다. 그렇게 스쳐 지나가시게 한 날은 마음이 당연히 안 좋다. 멀리 사는 자식들은 이런 모습을 보지 않아서 연민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지만 말이다.

할머니가 잘 키운 자식들, 좋은 직업에 좋은 집에서 사는 자식들은 할머니가 환대받지 못하는 불청객으로 주변의 외면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겠지. 너무 늦기 전에 알아야 할 텐데...

"얼마나 외로운지.... 나도 내가 늙어서 이렇게 외로울 줄은 몰랐네, 너무 외로우니까  아 차라리 얼른 죽는 게 나을까 생각해. 그래서 늙으면 죽어야 한다고 하나 봐"

아유 무슨 말씀을 하세요. 그런 말씀 마시고 맛있는 거 사 드세요.라는 말을 그나마 위로랍시고 했더니 문을 밀고 나가던 할머니가 나를 돌아보며 마지막 말을 남긴다.

"근데 나는 죽기도 싫네.. 나는 안 죽고 싶네.. 더 살고 싶어."

언제나 너무 솔직하신 성품. 옛말에  죽고 싶다는 노인분 말은 거짓이란 소리도 있지만, 김 할머니는 말이 씨가 될까 무서운지 항상 마지막에는 죽고 싶지 않다 더 살고 싶다는 말을 굳이 덧붙인다.

그래서 더 불편하다.

김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 나의 노년이 걱정된다.

노년의 고독은 김 할머니의 의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 의지만으로 내 노년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나는 행복한 노후를 보낼 것이라고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만약 예측 가능한 노후를 생각한다면,  홀로 계신 부모님을 한번 더 돌아보아야 맞다. 그래서 우리부터라도 연로한 부모님을 외롭게 하지 않는 문화를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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