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핏 방송인 강호동을 연상케 하는 몸매인데, 차이가 있다면근육질의 강호동과 달리 몸 전체가 거의 지방질 같다. 그는 언제나처럼 까만 가방을 멘 채 유치원생 같은 차렷 자세로 서서 애처로운 눈빛을 발사한다.
세상 불쌍한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수그린 채 처진 걸음걸이로 사무실 주위를 맴돌다가 어느 순간 출입문을 밀고 들어와 커피를 주문한다.
목소리도 자세도 예의 바르다.
더구나 손님이 있거나 내가 분주해 보인다고 생각될 때는 들어오지 않는다.
나는 항상 한가로운 때 그를 맞이해야 해서 어찌 보면 딱히 거절할 명분이 없기도 했다...
더 솔직히 말하면 불쌍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
그는 1년 전 이사 들어온 어느 집의 아들이란다.
계약할 때는 보지 못했는데, 입주일 다음 날 들어온 그는 자신을 그렇게 소개했다.
커피 한잔만 주세요!
어제 이사 온 집 아들이에요.
어제? 아 210동... 210동 12층이요?
.......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허공만 응시했지만 나는 왠지 그가 대답을 했다고 느꼈다.
아유 그 친절하신 사모님한테 이런 아드님이 있었다니..
나는 반갑고도 공손한 자세로 커피를 타 주었다.
그는 다음날은 컵라면을 들고 왔다.
컵라면 먹게 뜨거운 물 좀 주세요!
네?
지나가다 간혹 목이 말라서 들어오는 아이들이 있기도 하다. 나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컵라면에 물을 부어주었다. 그는 공손히 받아 든 채 사무실 탁자에 앉아 허겁지겁 먹었다. 뜨거울 텐데... 재빨리 먹더니 인사하고 나갔다. 인사성은 막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한 아이들을 닮았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그로부터 어스름한 저녁 무렵이면 2~3일에 한 번씩 들어와 차렷 자세로 서서 커피를 요구했다.
커피는 안 아까운데 큰 체구에 까만 얼굴 항상 똑같은 검은색 점퍼 등등이 위압감을 주었다.
얼마 후 210동 입주자분이 잠시 들렀길래 물었다.
아드님이 커피 마시러 자주 오세요~
엥? 아들? 무슨 아들?
우리 아들이 서울서 직장 다니느라 바쁜데 여길 언제 와서 커피를 마셔?
며칠 후 다시 그가 왔다.
언제나처럼 차렷 자세로 서서 커피를 달라고 했다.
나는 망설이다 말했다.
음... 어머님이 커피 주지 말라던데요?
그는 애처로운 표정으로 답했다.
우리 엄마는 계모예요.
나 혼자 있을 때 나를 막 때려요.
사람의 속마음까진 알 수 없지만 왠지 나를 속인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 여긴 커피집이 아니에요. 영업하는 곳이에요.
그러니까 이젠 커피 마시러 오지 마세요. 오늘이 마지막이에요.
- 왜요? 제가 커피값 500원씩 드릴까요?
- 아니에요 커피값 때문이 아니에요. 여긴 일하는 곳이니까 오지 마세요.
그는 덩치에 안 어울리게 세상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커피 믹스를 한 줌 집어서 비닐봉지에 담아 그에게 건넸다.
그러나 그는 2~3일 후에 다시 왔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똑같은 포즈, 똑같은 표정으로 커피를 달라고 했다.
커피를 주면서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단호히 말했지만 이틀쯤 지나면 또 왔다.
2~3일 정도 지나면 마지막이라는 말을 잊어버리는지 아니면 무시하는 건지...
매번 어쩔 수 없이 믹스커피를 타서 건네면 그걸 들고 바로 나가주었으면 좋겠는데 그는 그 자리에 선채 뜨거운 숭늉 마시듯 후루룩 들이켰다.
안 뜨겁나... 저렇게 빨리 마시다간 입천장을 데일 텐데... 나는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
그러나 천천히 마시라고 말할 생각은 안 들었다.
나는 솔직히 커피를 안 주고 싶다.
커피가 아까워서가 아니라 여기는 커피 가게가 아니니까...
그런데 커피 주문을 거절하면 그 큰 덩치로 까만색 가방을 메고 세상 불쌍한 사람처럼 고개를 수그린 채 동네길을 느리게 걷는 그를 보게 된다. 오른쪽 창문으로 보이다가 다시 왼쪽 창문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