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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콩 May 12. 2022

강호동 닮은 불청객

"커피 좀 주세요..."


40대? 50대? 나이를 알 수 없다.   

얼핏 방송인 강호동을 연상케 하는 몸매인데, 차이가 있다면  근육질의 강호동과 달리 몸 전체가 거의 지방질 같다.  그는 언제나처럼 까만 가방을 멘 채 유치원생 같은 차렷 자세로 서서 애처로운 눈빛을 발사한다.


세상 불쌍한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수그린 채 처진 걸음걸이로 사무실 주위를 맴돌다가 어느 순간 출입문을 밀고 들어와 커피를 주문한다.    


목소리도 자세도 예의 바르다.  


더구나 손님이 있거나 내가 분주해 보인다고 생각될 때는 들어오지 않는다.  

나는 항상 한가로운 때 그를 맞이해야 해서 어찌 보면 딱히 거절할 명분이 없기도 했다...


더 솔직히 말하면 불쌍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


그는 1년 전 이사 들어온 어느 집의 아들이란다.  

계약할 때는 보지 못했는데, 입주일 다음 날 들어온 그는 자신을 그렇게 소개했다.


커피 한잔만 주세요!

어제 이사 온 집 아들이에요.


어제? 아 210동... 210동  12층이요?


.......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허공만 응시했지만 나는 왠지 그가 대답을 했다고 느꼈다.

아유 그 친절하신 사모님한테 이런 아드님이 있었다니..   

나는 반갑고도 공손한 자세로 커피를 타 주었다.     


그는 다음날은 컵라면을 들고 왔다.


컵라면 먹게 뜨거운 물 좀 주세요!


네?


지나가다 간혹 목이 말라서 들어오는 아이들이 있기도 하다.  나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컵라면에 물을 부어주었다. 그는 공손히 받아 든 채 사무실 탁자에 앉아 허겁지겁 먹었다. 뜨거울 텐데... 재빨리 먹더니 인사하고 나갔다. 인사성은 막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한 아이들을 닮았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그로부터 어스름한 저녁 무렵이면 2~3일에 한 번씩 들어와 차렷 자세로 서서 커피를 요구했다.    

커피는 안 아까운데  큰 체구에 까만 얼굴 항상 똑같은 검은색 점퍼 등등이 위압감을 주었다.


얼마 후 210동 입주자분이 잠시 들렀길래 물었다.


아드님이 커피 마시러 자주 오세요~


엥? 아들? 무슨 아들?   

우리 아들이 서울서 직장 다니느라 바쁜데 여길 언제 와서 커피를 마셔?



며칠 후 다시 그가 왔다.

언제나처럼 차렷 자세로 서서  커피를 달라고 했다.

나는 망설이다 말했다.


음... 어머님이 커피 주지 말라던데요?


그는 애처로운 표정으로 답했다.


우리 엄마는 계모예요.   

나 혼자 있을 때 나를 막 때려요.



사람의 속마음까진 알 수 없지만  왠지 나를 속인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 여긴 커피집이 아니에요. 영업하는 곳이에요.

 그러니까 이젠 커피 마시러 오지 마세요. 오늘이 마지막이에요.


- 왜요?  제가 커피값 500원씩 드릴까요?


- 아니에요  커피값 때문이 아니에요.  여긴 일하는 곳이니까 오지 마세요.


그는 덩치에 안 어울리게 세상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커피 믹스를 한 줌 집어서 비닐봉지에 담아 그에게 건넸다.



그러나 그는  2~3일 후에 다시 왔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똑같은 포즈, 똑같은 표정으로 커피를 달라고 했다.   

커피를 주면서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단호히 말했지만 이틀쯤 지나면 또 왔다.   

2~3일 정도 지나면 마지막이라는 말을 잊어버리는지 아니면 무시하는 건지...


매번 어쩔 수 없이 믹스커피를 타서 건네면 그걸 들고 바로 나가주었으면 좋겠는데 그는 그 자리에 선채 뜨거운 숭늉 마시듯 후루룩 들이켰다.  


안 뜨겁나... 저렇게 빨리 마시다간 입천장을 데일 텐데... 나는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  

그러나 천천히 마시라고 말할 생각은 안 들었다.



나는 솔직히 커피를 안 주고 싶다.   

커피가 아까워서가 아니라  여기는 커피 가게가 아니니까...    


그런데  커피 주문을 거절하면 그 큰 덩치로 까만색 가방을 메고 세상 불쌍한 사람처럼 고개를 수그린 채  동네길을 느리게 걷는 그를 보게 된다. 오른쪽 창문으로 보이다가 다시 왼쪽 창문으로 보인다.

그럴 때마다 그는 세상과 분리되어 있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처럼 보인다.


온갖 꽃들이 만발한 화창한 봄날,   

오늘도 어우러진 향기 사이로 북극곰 같은 그가 지나간다.


나는 그에게 커피를 주고 싶지 않다.

그런데 내가 커피를 안 주면 그는 왠지 평생 커피를 못 마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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