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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콩 Aug 25. 2022

왜 내가 김밥 꼭지를 먹어야 하죠?

"넌 왜 항상 김밥 꼭지를 남기니?"


어느 날 나는  20살짜리 아들한테 새삼스럽게 물었다.
딸은 그렇지 않은데 아들 녀석이 김밥을 먹고 일어서면 항상 양쪽 꼭지가 덩그러니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어렸을 때부터 줄곧 그랬던 것  같은데, 같이 먹다 보면 너나없이 먹느라 바빠서  이 녀석이 교묘히(?) 김밥 꼭지를 안 먹는다는 사실을 딱히 인지하지 못했다.
아마 그동안은 아들이 부러 피하고 있는 김밥 꼭지를 나나 가족들이 무심결에 먹어치워서 몰랐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날 아들 혼자 김밥을 먹고 일어선 자리에 김밥 꼭지만 남은 걸 본 나는 이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는 걸 문득 깨달았다.



" 제가 왜 김밥 꼭지를 먹어야 하죠?

이왕이면 가운데 부분 보기 좋고 먹기 좋은 김밥이 저는 좋은데요..."



일부러 안 먹은 거란다.

예를 들면 먹다 보니 어쩌다 김밥 꼭지만 남은 상태에서 배가 불러 젓가락을 놓았다든지 하는 것이 아니라, 김밥 꼭지까지 먹어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단다.

가운데 부분 모양 좋은 놈들만 먹고 싶었단다.


그래서 집에서뿐만 아니라 밖에서 친구들이랑 김밥을 먹게 될 경우에도 가운데 부분만 골라 먹었고, 그럼 친구나 주변 사람이 알아서 김밥 꼭지는 다 먹어치우더란다.


이 녀석은 일부러 좋은 부분만 골라 먹어야겠다 의도한 거고, 나같이 음식은 뭘 먹든 배만 차면 된다고 생각하는 비 미식가들은 그 맛이 그 맛이라고 생각해서 김밥 꼭지든 뭐든 닥치는 대로 집어먹은 거다.

어떤 사람들은 김밥을 먹을 때 꼭지가 더 맛있다고 일부러 김밥 꼭지 부분부터 집어 먹기도 한다.

재료들이 여유 있게 들어가 있는 셈이니까.





나도 좀 그런 편이었던 것 같기는 하다.

사실 김밥을 먹을 때 어느 부분을 먼저 먹을까 딱히 고민했던 기억은 없지만,

꼭지가 더 맛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던 것 같다.  

이렇게 같은 김밥을 먹으면서도 그게 꼭지든 몸통이든 다 똑같은 김밥이고 취향에 따라 먹고 싶은 부분부터 골라 먹는 보통 사람들과 달리 아들 녀석은 김밥에 대한 나름의 기준을 정해  꼭지 부분은 일부러 피했던 것이다.



"생각해보세요

같은 김밥이라도 가운데 부분은 김밥으로서 모양까지 완성된 것이지만

꼭지 부분은 어떤 면에선 상품성(?)도 떨어지고 자투리인 셈이잖아요.


그러니 이왕이면 보기 좋고 먹기 좋은 가운데 부분을 골라 먹어야지 왜 굳이 꼭지 부분을 내가 먹어야 하죠?"



아들 이야기를 들으면서 동시에 생각했다.

내가 먹는 것에 우둔한 것인가.

아들보다 2.5배를 더 살아온 나는,

아들보다 김밥을 30배 정도 더 먹고 살아온 나는,

왜 그동안 한 번도 꼭지 부분의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지?


집에서 먹는 김밥 한 줄에도 상품성과 가치를 따지는 아들과 그저 맛있으면 되고 배부르면 된다는  1차원적이고 생리적인 부분에 충실했던 모습은 극명한 차이를 드러냈다. 


아들 녀석의 '김밥론'을 들은 다음부터 나는 식당에서든 어디서든 음식을 마주 하면 잠시 고민을 하게 됐다. 그냥 생리적인 욕구에 충실할 것인가 아니면 기본적 의식주에도 나름의 기준을 정할 것인가.   


조금 늦긴 했지만, 사소하고 반복되는 일상에서도 나를 대우하는 습관을 가져보고 싶다는 갈등도 살짝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들에게는 김밥 한 줄에서도 본인을 스스로 대우하려 나름의 기준을 정하는 것처럼, 내가 일부러 골라먹고 남은 자투리 꼭지김밥을 대하게 될 그 누군가의 마음도 한번쯤 생각해보라는 말을 해주었다. 아들은 그 부분까지는 미처 생각 못했음을 인정하고 앞으론 그러지 않겠다고 했다.  


살아가는 모든 것에는 항상 상대성 이론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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