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시 같은 중개사와 할머니
"요즘 보기 드문 젊은이네요. 그런 손주가 어딨어요."
나는 칭찬하느라 입에 침이 마를 정도였고, 할머니는 싱글벙글 손주자랑 하느라 입이 귀에 걸릴 정도였다.
살던 집을 팔고 어디로 갈까 고민하는 사이 둘째 딸 손주가 인근아파트 전세로 옮겨오며, 할머니를 모시고 살겠다는 제안을 한 것이다.
그동안 함께 거주하던 아들이 직장 관계로 멀리 지방으로 이동하게 되어 집 판돈 일부를 나눠주고,
남은 돈으로 방 두 칸짜리 빌라라도 구하려 했던 할머니에게, 손주의 이 제안은 차마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전세계약을 하면서도 나는 이 잘생기고 듬직하고 효성스러운 손주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이구 진짜 착하다. 어떻게 할머니를 모시고 살 생각을 했어요? 할머니가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손주는 말했다.
"저 어렸을 때 할머니댁 가면 부침개도 해주시고 용돈도 주시고 얼마나 잘해주셨는데요.
그런 할머니 제가 모시고 살아야죠."
나는 쓸데없이 싱글벙글 즐거웠다.
중개업을 오래 하다 보니 부모 섬기는 자식이 많지 않음을 체감하고 있던 나로서는,
직장 핑계로 아들도 안 모시고 간 할머니를 사회초년생 손주가 전세대출 만땅 받은 전셋집에서 모시고 산다는 설정 자체가 너무 흐뭇했기 때문이다.
좋은 일이 있든 나쁜 일이 있든 세월은 어김없이 흘러서, 어느덧 2년이 되었다.
어느 날 손주가 전화를 하여 전셋집을 빼달라고 했다.
이사 날짜는 언제든지 상관없다고 했다. 전세 물건이 귀한 시점이라 바로 보겠다는 손님이 있어 전화하였더니,
'본인과 엄마는 이미 타 지역으로 이사를 가서 그 집에는 할머니 혼자 계신다,
이사 날짜는 최대한 빠를수록 좋다.'라고 했다.
그리고 집에 할머니 계시니 가서 보면 된다고 했다.
손님을 모시고 가서 벨을 누르니 할머니가 누구냐고 물었다.
부동산이고 집 보러 왔다고 했더니 할머니가 다시 내게 물었다.
"우리 집을 누가 내놨어요?"
순간 어리둥절하긴 했지만 뭐 사람마다 여러 상황이 있고 다양한 사정이 있는 것이니 그러려니 하고 집을 보았다. 집 보러 다녀온 후 할머니가 쭈뼛쭈뼛 사무실로 들어오셨다
.
"부끄러워서 이런 말 부동산 사장님 외에는 아무한테도 못하겠어"
한 달 전 아침, 눈을 뜨니 손주와 딸이 타 지역으로 이미 떠나고 없었다.
그 후 혼자 기거 중이신 80대 중반 할머니.
집을 내놓은 것도 몰랐고 손주랑 딸이 할머니 전화를 수신 차단한 상태란다.
이 집이 계약되면 어디로 가야 할지 암담한 상황.
아무리 드라마 같은 일, 독립영화 같은 일이 많은 세상이라지만
우리 주변에는 삶 자체가 쓰라린 사연들이 많다.
10여 년 전 어느 가을날,
수영장 가방을 든 할머니가 힘이 부치는지 사무실 뒷문 의자에 앉아 잠시 쉬시길래 음료수와 홍시 두 개를 드렸다. 그것이 이분과 나의 첫 만남이었다.
신기한 듯 나를 쳐다보던 할머니가, 한 달 후 딸들을 우르르 몰고 들어와 '앞으로 집 살 때는 여기 부동산에 사라' 하신 뒤 나름 거래도 여러 건 체결했다. 당시 유난히 우애 좋고 효심 가득했던 자녀들 모습이 부러웠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 세월이 흐르면서 우애 좋던 딸들과 아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서로 연락조차 안 하는 사이가 되었고,
그중 둘째 딸의 손주집에 얹혀살다가 결국 혼자 남게 되신 할머니.
집을 본 손님이 바로 계약하겠다고 하는 순간부터 나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임차인인 손주가 빨리 빼주라 성화여서 계속 미루지 못하고 계약을 체결하였는데,
할머니는 집이 계약된 후 길거리 나앉을 걱정에 잠 못 이루며 매일 전화를 하셨다.
하소연을 듣다 보니 왜 5년 전과 다른 상황이 되었는지 보였다.
그 연세에 집도 절도 없고 가진 거라곤 집 팔고 남은 돈 2200만 원뿐이었는데,
그나마 그것도 손주 집에 합가 할 때 전세금에 보태주어서 수중에 남은 것은 한 푼도 없었다.
우리가 인정해야 하는 건, 요즘은 가진 거 없이 장래에 들어갈 비용만 많은 노부모는 아무도 돌보려 하지 않는 세상이라는 것이다. (한때 많았더라도 자식들 키우느라 다 소진해 버렸다면...)
반면에 둘째 딸과 손주는 어느 순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할머니를 본인들이 계속 책임져야 하는
그 상황이 부당하다고 생각되어서 발을 빼느라 먼저 이사 나가버렸고,
다른 자식들 입장에서는 집 판 돈의 대부분을 아들에게 주고 남은 돈 2200만 원마저 손주 전세금으로
소진해 버린 할머니에 대한 섭섭함이 부모 자식 간의 '천륜'을 덮어버린 것이다,
중개업 하면서 느낀 것은, 아무리 내 자식들이라도 더 마음이 가고 아픈 손가락이 있기 마련이지만
부모의 금전이 누군가에게 몰빵되는 순간, 부모와 자식-형제자매 서로 간의 사이에서 치유할 수 없는 금이 생기더라는 사실이다.
결국 할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처지가 되었는데,
허전하고 외로운 순간이면 어김없이 내게 전화를 하신다.
"홍시같이 생긴 부동산 사장님. 어쩜 그렇게 홍시같이 생겼어.
우리 딸들도 그러면 좋은데. 나 이사 갈 곳 좀 알아봐 줘요."
달덩이 같다고 하지 않아서 다행이지만,
십 년 전 드린 홍시 두 개 때문인지 할머니는 자꾸 나를 그렇게 부르신다.
아무 생각없이 홍시 두 개를 드린 기억이 그분 마음에 그렇게나 진하게 남았던 것일까.
세상은 자꾸 식어가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작은 관심이 삶을 버티게 하는 불씨가 된다.
누구는 가족이라도 버리고, 누구는 남이라도 걱정한다.
오늘도 그런 사람들 사이를 걸으며,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거래를 중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