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못 받은 전화 두 통
한 달 전 젊은 여성분이 전화를 했다.
역 근처로 50평쯤 되는 상가 임대를 알아봐 달라고 했다.
물건을 몇 개 찾아 알려주고 잊었다.
1주일 후 가족 행사가 있어 막 KTX에 올라탔는데,
"지금 보러 간다"라고 전화가 왔다. 강남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라 중개보조원한테 일러둘 테니 잘 둘러보시라 했더니,
"대표님이 안 계신다면 다음에 가겠습니다"
멀리서 출발하신 거니 그냥 보라고 해도 굳이....
그리고 며칠 후 상가 물건 근처에서 만나자고 다시 연락이 왔다.
나는 아파트 단지 쪽 전문 중개사인데 이 손님은 중심권 상가를 찾는 중이니 상가 전문 중개사무소 여러 곳에 다 둘러봤겠지 해서 전화도 안 해봤는데,
굳이 나랑 보겠다고 시간도 변경하고 다시 연락해 준 손님이 신기해 두근대는 마음으로 나가보니 30대 중반의 예쁜 아가씨였다.
그녀는 물건을 3개 보고서 바로 계약을 결정했다.
서울 등 4곳에서 필라테스 강습소를 운영하고 있고 5번째 체인점을 하려는 중이란다.
"이모 생각엔 두 번째 본 물건 어떠세요?
이모가 괜찮다면 그걸로 계약할게요~"
내가 괜찮다는 물건으로 계약한다고?..
이모? 붙임성이...
2일 후. 계약 시간에 맞춰 공동중개사무소에 가서 앉아있는데, 여성분과 함께 들어온 사람은 3달 전에 타계하신 원로 중개사님의 미망인이었다.
김중개사님은 지역의 원로중개사님으로,
저분이 진짜 중개를 하나 싶을 정도로 병약해 보이지만 든든한 후원을 해주던 선배님이다.
양양~ 양양~ 우리 양양이... 하면서 유독 예뻐해 주셨고, 명절 때마다 "우리 양양이 파이팅!"이라고 직접 그린 그림도 보내주셨다.
연세 드신 데다 위암 투병을 하신 병력도 있어서 많이 힘들어하셨는데, 연수교육 신청하는 방법이라든지 기타 여러 실무에 대해 자주 문의하셨다.
언젠가 사무실을 넘기고 쉬신다고 해서 '아이고~ 그래 이제 쉬셔야지' 했는데... 그 뒤 여행 가느라 공항에 있을 때 다시 개업식 한다는 문자를 받았다.
급히 화환만 보내고 나중에 찾아뵐게요~ 한번 갈게요~ 했는데 나는 가지 못했다.
그리고 어느 바쁘던 날, 전화를 두 번이나 하셨는데 받지 못했다. 나중에 전화드려야지 해놓고 그냥 넘겼다.
다음날 휴일인데 또 전화를 하셨길래 받지 않았다. 또 무엇을 물어보시려나.. 연세가 있으시다 보니 두 배쯤 더 설명해야 하는 게.. 사실 조금 힘들었다.
기본적인 중개업무에다 법률 상담원으로 활동하며 지역 중개사들 전화가 폭주하다 보니 인간적으로 스트레스도 많은데, 그럼에도 오는 전화마다 내색 없이 친절하게 받아야 하는데서 오는 극강 피로감. 더구나 연로하셔서 말귀도 잘 못 알아들으시는 김중개사님 전화는..... 갈수록 귀찮아졌던 것 같다고 솔직히 고백하겠다.
그리고 이틀 후 출근길에.... 부고 문자를 받았다.
사무실을 200미터 앞둔 신호등에서 부고문자를 보고 얼마나 충격을 받았던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아.... 며칠 전에 전화 왔을 때, 그 전날도 전화를 하셨을 때, 그때 왜 안 받았을까.... 연이어 이틀 동안 전화를 하실 정도면 얼마나 급한 일이었을까...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인가...
한번 갈게요~ 갈게요~ 건성으로 답하고 부고문자를 받을 때까지 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날 오후 장례식장을 찾았는데, 생전 명성에 비해 조문객들은 한산했다. 같이 간 중개사가
"원래 정승집 개가 죽으면 문상객이 줄을 잇지만, 정승이 죽으면 개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어"
라고 했다.
미망인이 손을 부여잡고 와줘서 너무 고맙다고 울먹거렸다. 그리고 아들과 딸을 차례로 인사시켰는데 이제 보니 그 딸이었구나.....
계약서를 작성하고 나자 사모님이
"아유~ 영감님이 좋아하시겠네~ 맨날 양양이~ 양양이~ 노래를 부르셨는데"
하시면서
'얼른 중개보수 송금해 드려라~ 부동산비는 계약 때 바로 주는 게 예의다' 라며 계좌를 달라고 하셨는데...
나중에 이야기하자 하고 돌아 나왔다.
모녀는 내가 고인의 마지막 전화를 연이어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까, 모른다 한들 내입으로 말할 수 있을까...
살면서, 그리고 나이 먹으면서, 후회할 일 하지 말아야지 매번 결심하는데, 나는 평생 후회할 일을 또 하나 했다.
이틀 동안 연이어 전화하셨을 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셨던 걸까? 사람의 인연이라는 것이 눈에 안 보인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내가 좋다고, 내가 싫다고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없으니
내게 온 모든 인연을 소중히 해야 한다는 것을 왜 매번 잊는 걸까
매일 보는 사람도 어느 순간 다시 못 볼 수도 있고,
다시 볼 수 있을 줄 알았던 사람도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아야 할 수도 있는데,
왜 나는 내게 보내는 손짓을 소홀히 넘기는 우를 범했을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셨을까...
그분은 하려고 했으나 내가 들으려 하지 않은 그 말씀 때문에, 그 이틀간 전화를 안 받은 것이... 평생 가슴에 남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