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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콩 Aug 08. 2020

K에게는 있고 우리에게는 없는 2%

아둠마 나 집 사주떼요~

     


"아아 아둠마!   나 집 사주떼요~

사사 사장님이 이번 달부터 월급 올려둔데요~."


14년 전 어느 날,  그는 헤벌쭉 웃으며 나타났다. 당시 30대 중반이었던 K는 집을 딱 한 개 보고는 유난히 좋아했다.  

몇 개를 더 보자 해도 됐다고 방금 본 집이 너무 좋다며 그냥 갔다.  허름한 4층 빌라일 뿐인데 왜 저렇게 좋아하지? 오히려 내가 의아했다.


그리고 다음날 중년 여성분이 명함을 들고 찾아왔다.


" 000 중개사님이시죠?

제 동생이 꼭 여기 부동산에서 집을 사야 한다네요."


그리고 K가 딱 한 개 보았던 바로 그 집을 계약했다.


그는 퇴근하면 부동산으로 왔다.


어떤 날은 아이스크림을,  어떤 날은 박카스를 두 개씩 사들고 와서 30분 정도 수다를 떨었다.

말을 더듬고 발음이 좋지 않아 대화를 하면서도 집중이 안됐다.


손님이 있으면  빙글빙글 웃으며 한쪽에 앉아서 하염없이 기다리고,

손님이 없으면 회사 사장님이 박스 포장 마무리 잘했다고 칭찬해준 이야기, 엄마가 보내준 고추장아찌가 이번에는 좀 쓰다는 이야기, 퇴근하 면서 타고 온  버스기사 아저씨가 인사를 잘해서 최고라고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려줬다는 이야기...그리고 간밤 꿈에서 본 사람 얼굴이 잘 기억이 안 난다는 이야기..


외출했다 돌아오면 문 앞에서 까만 봉지를 흔들며 기다리기도 했고,

손님과 함께 집을 보며 단지를 돌고 있으면


'고고 공인중개사 사사당니임~!'  


멀리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뛰어오기도 했다.ㅠㅜ


주말이면 거의 사라져 가는 비디오테이프를 가지고 와서

"아아 아둠마랑 보려고 빌려왔떠요~" 라며 헤벌쭉 웃었다. 테이프를 받아서 서랍 안에 넣어두었다가, 다음날 잘 보았다고 돌려주곤 했다.


사람들은  그를  2% 라고 불렀다.


착하고 예의 바른 청년이지만

그에게는  2%가 부족한 뭔가가 있었다.


어느 날 당시 초등학생이던 딸이 용돈을 타려고 들렀는데

K가 ' 아아 아둠마 딸이에요? 이이 이쁘네요.' 하면서 주머니에 들어있던 박카스를 꺼내 따주며 딸에게 권했다. 딸이 눈만 동그랗게 뜨고 엄마와 K를 번갈아 쳐다보자,  K가 주머니에서 박카스 한 병을 더 꺼내 쩝쩝거리며 건배를 하자고 했다. 딸은 박카스를 탁자 위에 놓고 재빨리 도망쳤다.


쩝쩝 소리를 내는 그와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도,  박카스로 소리 높여 건배하는 것도 부담스러워질 무렵, 그가 품 안에서 구깃구깃해진 사진을 꺼내 보여주었다.


" 아아 아둠마. 나 이 여자랑 결혼해야 돼요.

아아 아둠마처럼 예뻐요"


그리고... K는  발길을 끊었다.


몇 개월 후 큰길가에서 고개를 우로 젖히고 온몸을 흔들며 갈지자로 걷는 여자를 보았다.

그리고 그와 나란히 걷는 K를 보았다.

여자는 뇌성마비? 한눈에 보기에도 장애가 보였다.  그러나 그녀와 함께 걷는 K는 너무 행복해 보였다.


어느 날부턴가,  K부부가 나란히 서서 중개사무소 유리창을 두드렸다. 깜짝 놀라 돌아보면 그 모습이 재밌는지 두사람은 온몸을 흔들며 웃었다.


그들에게 아이가 생겼다.

아이는 엄마도 아빠도 닮지 않고 아주 귀여웠다. 여느 아이들과 다름없이 건강한 아이를 보면서, 나는 누군가에게 감사를 드렸다.  


그리고 몇 년 후  나는  K가 아내, 아들과 함께 다시 유리창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깜짝 놀라며 쳐다보자 해맑은 세 얼굴은 또 온몸을 흔들며 웃었다. 뭐가 그렇게 신이 나는지 한없이 웃었다.


재빠르게 달려나가 아이스크림 세 개를 사 와서 그들의 손에 쥐어주었다.


고고 고맙뜹니다 아아둠마 !


K가  90도로 인사하자 그의 아내도 90도로 인사했다.  그리고 그들의 아들도 90도 인사를 했다. 세 가족은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물고 걸어갔다.


그들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걸으면서도 온몸을 흔들며 웃었다. 웃음소리가 들리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지나가는 길거리는 항상 웃음으로 가득 찼다.




며칠 전 점심 때 남자 두 사람이 들어왔는데 뒤따라 들어온 사람이 K였다.


아아 아둠마. 저 아시죠? 더더는 아둠마 잘 알아요~~


오랜만에 만난 거라 자기를 기억 못 할까봐 걱정했나 다.  사촌 형님이 빌라 월세를 찾아서 아는 부동산 있다고 끌고 온 거란다. 브리핑을 한 뒤에 아이는 잘 크는지 가족 모두는 건강한지 물었더니 K가 말했다.


다 달달 달 있어요. 그그 근데 코코로나 때문에 더 더는 회사에서 짜짤렸어요.

그그래서 집에서 놀아요. 계계속 놀아요


실직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K는 그 특유의 밝은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안타까워 뭐라 할 이야기를 찾지 못하는 사이 갑자기 창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K가 벌떡 일어나서 문을 가리키며 온몸으로 웃었다. 창밖에는 K의 아내와 어느새 엄마 키만큼 자란 아들이 유리창을 두드리며 신나게 웃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그들이  부러워졌다.


K를 처음 본 날부터 나도 모르게 속으로 끌끌 차며 그를 안쓰러워했던 것 같은데, 그는 오히려 유리창 두드리는 소리에도 깜짝 놀랄 만큼 정신없이 살아가는 나를 안쓰러워했을지도 모른다.


내가..그에게 왜 하필 엘리베이터 없는 4층 빌라를 사줬을까 후회스러워할 때도,

온몸을 흔들며 갈지자로 걷는 그의 아내가 어린 아들을 안고 가파른 4층 계단을 오르내리는 상상만으로도 짠 소금 맛이 느껴질 때도,

사람들이  2% 2% 수군대며 마른 눈으로 바라볼 때도,


K의 가족들은 비웃기라도 하듯 해맑은 웃음으로 길거리를 흔들고 다녔다.  내가 온갖 근심과 걱정을 안고 아등바등 살아온 10여 년 동안

그들은  늘 그렇게 사소한 일에도 행복해하며 살았던 것 같다.


어쩌면 사람들이 그에게 부족하다고 느꼈던 2%는,  사실 우리가 갖지 못한 그만의 행복바이러스 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우리가 미처 가져보지 못한 2%에 대한 결핍감을 애써 부인하고 있는 것이다.  


K의 가족들이 지나가는 거리에는 뿌연 운무처럼 웃음만 가득 찰뿐, 소리가 남지는 않는다. 소리가 없는 그들의 행복은  어떤 데시벨로도 측정할 수가 없다. 단지  온몸을 흔들며 웃는  모습만 오래도록 남을 뿐이다.


그들만큼은 아니어도,

딱 2%만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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