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0원으로 촉발된 부당이득반환 청구 소송
2년 전부터 수시로 전화하여 빌라 시세와 경제 동향을 묻는 남성이 있었다.
처음엔 친절하게 응대했으나 어느 순간 목소리만 들어도 이명 현상이 날 정도가 되었다.
이 남성의 말투는 이렇다.
"만약 지금 집을 내놓으면 바로 팔릴까요?
우리 집은 너무너무 좋거든요. 만약 좋은 값에 바로 팔릴 수 있다면 세입자를 내보낼까 해서요.
제가 정말 보기 드물게 잘해주는 집주인이라서 세입자가 나가기 싫어하겠지만요."
20년 차 투룸 빌라다. 몇 개월에 한 번씩 전화하여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해서 토해내자 인내심에 한계를 느낀 나는 건성건성 패스했다.
그러다 한 달 전 전화하여 세입자가 드디어 나가기로 했다며 월세를 맞춰달라고 했다.
구축 빌라 투룸의 귀에 가시 돋치는 임대인. 마침 방문객이 있어 보여줬더니 바로 계약을 하게 됐다.
계약 날 나는 이 임대인을 처음 보았다.
그간의 집요하고 장황한 말투로 보아 부정적인 외모를 상상했었는데, 내 나이 또래의 인상 좋은 멋쟁이 아저씨.
그런데 30분이면 끝날 계약이 3시간이나 걸렸다.
내가 한마디 하면 열 마디를 했다. 중개사인 나야 할 말이 많은 게 당연하다. 계약서 부동문자 및 특약사항을 설명하고,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도 구체적으로 세세히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임대인은 기회를 엿보듯이 불쑥불쑥 끼어들었다. 마치 대화할 상대에 굶주린듯한.. 말을 하고 싶어 못 참는 듯한.
제지하고 자르고 하느라 눈에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앉은 후에야 겨우 서명 날인까지 마쳤는데, 일어서려는 임차인을 붙들고 고향을 묻더니, 그 지역에 사는 친구가 있다며 그 친구에 대한 수다를 시작했다. 얼굴도 모르는 친구의 인생사를 왜 우리가 들어야 하는 것인지...
참다못한 내가 임차인한테 눈짓을 하며 말했다.
"차에서 여자친구가 기다린다면서요 빨리 가세요 모임 시간 늦으시겠어요."
임차인이 무한 감사의 눈빛을 날리며 벌떡 일어나 도망치듯 나가자 임대인의 눈빛이 내게로 꽂혔다.
그리고 다시 본인이 얼마나 대단한 임대인인지 현재 살고 있는 세입자가 얼마나 못 됐는지를 늘어놓았다.
나는 휴대폰으로 재빨리 여기저기 톡방에 sos를 날렸다.
<저 좀 구해주세요. 전화해서 집 보러 왔으니 빨리 나오라고 해주세요!>
카톡 날리자마자 고맙게도 전화가 빗발쳤고 손님이 기다리고 있다며 튀어나오자, 임대인이 가방을 챙겨 들고 부리나케 쫓아 나왔다.
"저도 같이 가요. 저도 아파트 구경하고 싶어요."
"안 돼요 손님이 싫어할 거예요!"
나는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냅다 뛰었다. 그분은 달리기는 못하는지 쫓아오다 멈췄다.
나는 공실인 집에 들어가 숨을 고르고 숨어있다가 2시간 후에 사무실로 복귀하였다.(사무실 가서도 혹시 어디선가 대기하다 다시 쫓아 들어올까 봐 콩닥콩닥)
그리고 잔금일.
이사 나가는 세입자가 들어오자마자 나에게 물었다.
"계약갱신요구권 행사한 계약은 5% 이상 못 올리는 거 아닌가요? "
맞다고 했다. 법에 규정된 당연한 사안이니까...
잔금 정산이 끝날 무렵, 임대인이 2020년 여름에 관리비 10,000원을 못 받은 것 같다고 거론했다. 임차인은 한 번도 누락한 적이 없다고 했다. 임대인이 "자신은 기억력과 계산이 정확한 사람이라며 정산이 완료되지 않으면 보증금 반환을 못해준다"라고 했다.
나는 임대인에게 다가가 눈을 맞추며 "관리비 문제는 나중에 이야기하자 혹시 누락되었으면 내가 처리하겠다"라고 했다. 임차인한테도 관리비 10,000원은 내가 낼 테니 신경 쓰지 말라고 다독였다.
임대인은 끝까지 관리비 10,000원을 주장하고 자신은 기억력과 계산이 정확한 데다 보기 드물게 잘해주는 아주 좋은 임대인임을 반복하여 강조했다. 그냥 넘어가자는 눈짓 발짓 손짓을 아무리 해대도 소용이 없었다. 결국 10,000원 관리비로 인해 쌍방 간 짜증과 고성이 이어졌다.
내가 적극적으로 만류하며 10,000원을 손에 쥐어줬음에도 불구하고 30여 분간 실랑이가 벌어지자 임차인이 10,000원을 임대인에게 던져주고 일어서며 말했다.
"자 받으세요 10,000원! 다 끝났죠?
그럼 저는 가서 계약갱신요구권인데도 월세를 40% 가까이 인상한 것에 대해서 소송제기 할게요!"
10,000원을 임대인 손에 쥐어주기까지 하며 30여 분간 만류한 이유는 이것 때문이었다.
임차인이 들어오자마자 5% 이상 올린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기에(다른 부동산에서 계약한 것임), 아 이 집이 이전 계약갱신요구권 계약 시 5% 이상 인상하였구나 하는 직감이 있었던 것이다.
2020년 시행된 계약갱신요구권의 가장 큰 혜택은 임대료 인상이 5% 이내로 제한되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대인이 5%를 초과하여 인상하려 할 경우 임차인은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할 수 있다.
1. 임대차 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 신청
2. 부당이득반환 청구 소송 제기
주택임대차보호법 제10조(강행규정)는 이법에 위반된 약정으로서 임차인에게 불리한 것은 무효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법원 판결에서도 5%를 초과하는 부분만큼은 무효가 된다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만약 이미 5% 이상을 지급하였더라도 임대인은 그 초과분을 임차인에게 반환하여야 한다.
-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권 행사로써 체결된 임대차 계약에 포함된 보증금 수수에 관한 약정 중 주택임대차보호법 제7조 제2항 본문에서 정한 증액 한도를 넘는 보증금을 수수하기로 한 부분은 무효이고, 증액 한도를 넘는 보증금 상당액에 대하여 부당이득으로서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고 봄이 옳다- <서울고등법원>
법이 이러함에도 10,000원에 목매어 나의 간절하고 적극적인 사인을 무시한 임대인은 임차인의 선전포고에 멘붕이 되어, 큰일 났다며 임차인을 설득해 달라고 했다. 나는 거절했다.
"나 같으면 반드시 부당이득반환 청구소송 제기합니다.
내가 저 임차인과 친분이 있다면 귀찮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꼭 소송하라고 용기를 줄 거예요.
그러니 편법을 저지르셨으면 제가 적당히 하라고 만류할 때 멈추셨어야지요."
했더니 자기가 잘 몰라서 그런 건데 중개사님 너무 한다. 왜 그렇게 상처 주는 말을 하느냐, 그리고 자기가 그동안 얼마나 잘해줬는데 저 세입자는 그 돈 몇 푼 돌려받으려고 그런 소송을 한다 하냐고 돈이 그렇게 좋은 거냐! 사람이 살다 보면 손해 볼 때도 있는 건데 돈에 목매는 저런 사람 딱 질색이라고 쉴 새 없이 떠들었다.
그렇잖아도 2주 전에 펌이 잘못돼서 스트레스 받으면 활화산처럼 솟아오르는 머리를 부여잡고 나는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그만 떠들고 나가세요. 그리고 이제 우리 사무실 오지 마세요.
말도 안 되는 궤변, 적반하장도 유분수, O 뀐 넘이 큰소리.. 이런 거 내가 요새 많이 당하는 일이에요!"
라고 했다.
세상은 넓고 이상한 사람들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