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사람이 비싼 대가를 치르는 세상
10여 년 전, 아파트 단지에서 부녀회장을 맡아 누구보다 활발하게 활동하던 김여사가 집을 팔고 싶다며 찾아왔다. 당시 부동산 경기는 좋지 않았고, 김여사가 원하는 가격은 시세보다 5천만 원 이상 높았다.
그녀는 중개사무소를 여러 차례 방문해 "조금만 더 받아줄 수 없느냐"라고 물었고, 나는 거듭 난감함을 표했다. 이미 시세라는 것이 형성돼 있는데, 일개 중개사가 시세보다 높은 값을 받아주겠다고 약속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중개사님 오래 하셨잖아요. 능력 있으시니 조금만 더 받아주세요. 중개보수는 넉넉히 드릴게요!"
온갖 회유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관되게 답했다.
"지금 시장에선 어렵습니다. 이 단지 매물들이 다 소진된 다음에나 가능할 것 같아요."
잠시 굳어지던 표정. 그녀는 서운한 기색을 숨기지 못한 채 돌아갔고, 그 뒤로 한동안 연락이 없었다.
그러다 2주쯤 지나 다시 전화가 왔다.
"교회에서 오래 알고 지낸 심집사가 우리 집을 사기로 했어요.
내일 오전 11시에 대표님 사무실에서 만나기로 했으니 계약서 좀 써주세요."
대서·대필 계약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었지만, 원하는 금액에 팔아주지 못한 미안함이 마음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 도와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매매 금액을 물었다가, 그만 말을 잇지 못했다.
평균 시세보다 15~20% 높은 가격이었다. 어떤 사정을 감안해도 그 금액은 당시의 내가 죽었다 깨어나도 정당화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매도인과 매수인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든, 그 가격으로는 계약서를 써줄 수 없었다.
"그 가격으로는… 계약서를 써드릴 수 없어요!"
김여사는 당황하며 중개보수를 두 배로 주겠다고 했다. 그래도 고개를 저었다.
돈으로 무마하기엔 자격증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기 때문이다.
속으로 생각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시세도 확인하지 않고 저 금액에 집을 살까. 그리고 어떻게 오랜 지인에게 저런 가격으로 팔 수 있을까.
그러나 사람마다 삶의 기준은 다르고, 남의 인생에 정답을 들이대는 일은 무의미하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그 일을 잊었다.
6개월쯤 지났을까. 60대 중반의 여성이 사무실을 찾아왔다.
시세를 묻더니 "왜 이 아파트는 갈수록 떨어지느냐"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동과 호수를 묻고서야, 나는 그녀가 김여사에게 직거래로 집을 산 교회 지인 심여사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렇게 높은 가격에 샀으니 당연히 현실의 시세가 만족스러울 리 없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고, 개인 간 거래에 대해 왈가왈부할 자격도 없었기 때문이다.
인연이 거기까지인 줄 알았는데, 심여사는 그 뒤로도 종종 사무실에 들렀다.
마트에서 사은품으로 받은 음료수를 놓고 가기도 하고, 화장품 판촉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고 샘플을 건네기도 했다. 어느 날은 소파에 주저앉으며 말했다.
"제가 사교성이 좋잖아요. 저 좀 써주세요. 뭐든 열심히 할게요."
난데없는 취업 청탁이었다.
그녀는 어떤 일이든 오래 지속하지는 못했지만, 늘 무언가를 해보려 애쓰는 사람이었다. 성실했고, 지나치게 착했다. 그리고 선한 사람 특유의, 세상을 너무 곧이곧대로 믿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10년쯤 인연이 쌓인 어느 날, 그녀가 메모지를 내밀었다. 서울 근교의 빌라 지번이 적혀 있었다.
"친구 남편이 급하게 돈이 필요하다면서 이 집을 나한테 싸게 넘긴대요.
등기도 바로 해준다는데, 계약서는 대표님이 써주셨으면 해서요."
그녀의 쉴 새 없는 수다에도 불구하고 나는 말없이 등기부를 열람했다. 아무리 10년의 친분이 쌓였다 해도 그녀의 부동산 거래 감각을 믿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예상대로였다. 가등기, 압류, 근저당…. 설정 금액은 실거래가를 이미 넘어 있었다.
"이 집, 이 상태로는 절대 거래하시면 안 됩니다."
그녀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등기부를 움켜쥐고 뛰쳐나갔다.
사흘 뒤, 케이크를 들고 다시 찾아왔다.
"제가 내일모레 일흔이에요. 그런데 평생 친구나 가족, 가까운 사람한테 당하고 살았어요.
너무 물러서, 너무 사람을 믿어서 그런가 봐요. 그런데 대표님… 왜 제가 심심하면 여기 오는지 아세요?"
그녀는 내 사무실 앞을 지나칠 때마다 10년 전, 김여사의 집을 인수할 때가 떠올랐다고 한다. 계약 일 하루 전에 갑자기 계약서 쓰는 장소가 바뀌었는데, 가까운 단지 내 부동산이 아니라 외지고 낯선 곳으로 옮겨진 것에 대해서 왜 당시에는 아무런 의구심을 갖지 않았는지, 한참 지나 자신이 시세보다 훨씬 비싸게 샀다는 걸 안 후에는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고 했다.
"대표님이 그때 계약서 안 써주신 게… 지금 생각해 보니, 얼굴도 모르는 저를 지켜주신 거였더라고요.
이번에도 그래서 대표님 생각이 나서 달려온 거예요. 두 번이나 저를 막아주신 셈이죠."
나는 부동산 거래를 주 업무로 하는 공인중개사이지만, 어떤 거래는 성사시키는 것이 아니라 막는 것이 일이라는 걸 그때 다시 깨달았다. 당장의 중개보수보다, 한 사람의 인생이 더 무거운 순간이 분명히 있다.
사람은 선해서 상처받는 게 아니다. 믿음을 줄 줄 알아서 상처받는다.
그리고 그 믿음이 일방적일 때, 상처는 더 깊어진다.
그날 심여사가 놓고 간 케이크는 달았지만, 그보다 오래 입안에 남은 건 이 한마디였다.
"그때 계약서 안 써주셔서, 정말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