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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콩 Aug 29. 2020

국밥 할머니네  집값은 언제 오를까

하룻밤 새 오르는 집도 있고 수십 년을 그대로인  집도 있다.

" 우리 집을 계약한다고? 가만있어봐 시세를 알아봐야겠어."

일요일 아침 7시도 안돼서 걸려온 전화. 또 봉천동 국밥 할머니다.


" 약하기로 다 맞춘 건데 무슨 이제야 시세를 알아봐요~"

" 그래도 시세 알아볼 동안 계약하지 말고 기다려"

" 어디다 알아보실 건데요? "


" ○○부동산... ○○부동산 O□□한테 "

" 저예요. 제가 바로 ○○부동산 O□□라고요~"

" 그래? 잘 지냈어? 내가 OO부동산 O□□ 하고만 10년도 넘게 거래했어."

" 그러니까 계약하자고요. 아드님이랑 계약하면 되죠? "

" 기다리라니깐! 내가 OO부동산 O□□한테 물어보고 다시 전화할게..."

며칠째 같은 내용으로 리플레이하듯 통화를 하고 있다. 명의자인 아들하고 시간도 맞추고 계약 조건을 완비했으니 모른 척 전화를 안 받아도 되련만... 나는 그럴 수 없다!



서울 봉천동 어느 뒷골목에서 국밥집을 하신다는 이 할머니가 왜 경기도 외곽까지 와서 집을 사두었는지는 모른다. 내가 중개업을 시작하던 때에 이미 소유권을 가지고 있었고  2년마다 전세를 놔주었

17년 전 첫 거래 시 이분은 막 60대가 되었는데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지 실제로는 이미 70을 넘어 보이는 외모였고,,, 할아버지 역시 보통사람보다 많이 연로해 보이는 커플이었다. 한눈에도 편히 살아오신 분들이 아니었다. 경기도 외곽 59㎡ 1층. 명의자는  지적 장애가 있는 40대 아들.

어느 해였던가....

살고 있던 세입자가 직장 때문에 지방으로 옮겨가는 거라 잔금 전날에 미리 이사 나갔는데, 다음날 아침 일찍 신규 임차인이 청소하러 갔다가 숨넘어가는 소리로 전화를 했다.

" 중개사님!  집에 누가 자고 있어요!"

깜짝 놀라 뛰어가 보니 할머니와 아들이 각기 방 하나씩을 차지하고 코까지 골며 자고 있다. 세입자가 미리 이사 나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현관 비번을 받아서, 이불이며 먹을 거며 보따리 보따리 싸들고 와서 하룻밤을 빈집에서 투숙한 것이다.

" 아니 왜 여기서 주무세요. 임산부 간 떨어지게.."
흔들어 깨웠더니, 눈 비비며 일어나면서 하는 말.

"내 집인데 왜 내가 못 자? 지금 안 자보면  언제 내 집에서 자봐!"

대책 없이 당당하다.
내 집이라고 사놓고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채  세월만 갔다. 그래서 임차인이 하루 전날 미리 나가는 이 기회를 놓칠세라 이불 보따리 챙겨 와서 하룻밤을 "내 집"에서 묵은 것이다.

잔금 정산을 끝낸 후 탁자 위의 사탕을 한 움큼씩 집어 주머니에 쑤셔 넣고 돌아서 가려하길래, 중개보수는 안 주느냐 했더니 눈이 커진다. 또 미처 생각을 못한 모양이다.
주머니를 뒤적뒤적하다가 내 눈치 한 번 보고 다시 아들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할머니 : 너 가진 거 다 내놔 봐

아들 : (7000원을 내놓으며) 어제 옥수수 내 돈으로 사서 이것밖에 없어

할머니 : 아부지 몰래 금고에서 좀 빼오지

아들 : 그럴 줄 알고 아부지가 열쇠 채워놨어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눈치 보며 탈탈 털어 모은 19.000원을 탁자 위에 올려놓길래 헛웃음이 절로 나오는데... 그 사이 모자가 서로 힐끔거리더니...

할머니 : 근데 너 집에 갈 버스비는 있냐?

아들 : 없지.. 다 내놓으라며

아이고.... 만원만 받고 9.000원을 다시 돌려드렸다. '이걸로 버스 타고 가서 나머지 중개보수 꼭 보내주세요~ 아이스크림도 하나씩 사드시고....'

고마워. 내가 가자마자 영감한테 말해서 보내줄게.. 요새 국밥집이 너무 많이 생겨서 토옹 장사가 안돼..

모자는 다시 기운이 났는지 사탕을 한알씩 까서 오물거리며 길을 떠났다.

그냥 어딘가에 내 집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부자가 된 사람들. 그래서 영감님이 이젠 여기저기 안 아픈 데 없고 장사해먹기도 힘드니 집 팔아서 생활비나 쓰자고 해도 죽어도 못 판다고 우기는 바로 그 집..

집이 로또가 되기를 기다린 17년 동안 남은 건 손님처럼 찾아온 치매 증세뿐이다.

누군가는 공인중개사들이 집값을 올려 부동산 경기를 불안하게 한다고 하는데 중개업 17년 동안 나 때문에 집값이 올라간다는 생각은 언감생심 해본 적이 없다. 정부가 23번의 초강력 대책으로도 못 잡는 집값을 힘없는 공인중개사가 마음대로 올리고 내리고 할 수 있을 거라는 발상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그러나 대출금 만땅 받아 집을 사고 등골 빠지게 은행이자를 갚아가는 서민들을 위해서, 제발 들어간 비용만큼이라도 집값이 올라주기를 바란 날들은 많다. 내 고객들이 쏟은 땀과 한숨 바구니만큼 집값이 오르기를 바랐던 것만으로도  집값 상승에 일조했다고 책임을 묻는다면
...그러면 달게 공범이 되겠다.

가끔.. 시세보다 높게 부르며 팔아달라고, 그러면 중개보수 알아서 더 챙겨주겠다는 고객이  있으면 쓴웃음만 나온다. 중개보수 더 받으려고 집값을 올려 팔 수 있으려면 얼마나 경기가 좋아야 할까. 더구나 고객들에게 모든 정보가 공개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런 꼼수는 먹히지도 않는다.

집을 사러 와서 '집값이 앞으로 얼마나 오를 수 있을까요?'
묻는 손님에게 일관되게 하는 말이 있다.

집값이 언제 오를지 얼마나 오를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한 가지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모든 거래에는 수요와 공급의 원칙이 작용한다는 사실입니다. 공급량보다 수요자가 많으면 그때 오르겠죠?

수요자에 비해 공급량이 부족한 서울 등 주요 도시의 집값은 도깨비방망이처럼 비현실적으로 오르고, 공급이 딱히 넘치지 않아도 수요자가 없는 지방 경기는 매캐한 공기처럼 년년세세 가라앉아 있다. 공급을 늘리거나 수요를 늘리는 게 공인중개사 능력 밖의 일인데 어떻게 공인중개사가 맘대로 집값을 좌지우지하겠는가..

대한민국에서 공인중개사로 사는 일은 가끔 하릴없이 억울하다. 부동산 정책 실패 책임도, 집값 상승의 원인도 모두 공인중개사 탓이란다. 그런 능력이 정말 우리에게 있다면 서러운 거 정도는 꾹 눌러 참아볼만 하겠다.

왜 국밥 할머니는 평생 서울 복판 국밥 골목을 떠나지 못하면서도 두세 번씩 버스를 갈아타고 와야 하는 이 외진 경기도 구석에 소형평수 아파트를 사놓으셨을까... 만성 습진으로 감각 없어진 두 손을 바지런히 움직여 국밥 말아 팔아도 노후를 보장받을 수 없으니 보험 는 심정이었을 거다. 그 보험이 노부부 사후에 혼자 남겨두기 애달픈 아들에게 든든한 유산이 돼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부푼 꿈 안고 사둔 집이 내 집이 아니었다. 갭투자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갭투자 아닌 갭투자자로 산 셈인데, 세입자가 들고 날 때마다 죽은 자식 뭐 만지듯이 아린 눈으로 여기저기 훑어보고 벽이라도 쓸어내리며 이유 없이 든든했다. 월세 내기도 버거운 국밥집 때려치워도 김칫국에 밥 말아먹을 수 있었으면 진즉에 차고 들어와 살았을 텐데... 집을 사서 세를 놓는다고 다 같은 투자자가 아니다. 세입자 돈 내주고 들어올 여력이 안되니 무늬만 집주인이고 평생 닭 쫓던 개 지붕만 쳐다보는 격이다.   

인생역전은 왜 갈수록 고사성어처럼 돼가는 것일까.  똘똘한 집 한 채! 똘똘한 집 한 채! 노래를 불러도 한 채든 두 채든 열 채든 '똘똘한 놈' 선택할 권리가 누구에게나 있는 건 아니다.  돈은 돈이 있는 사람이 번다는 말은 왜 빗나가는 법이 없을까. 해마다 휘어지고 쇠해져 가는 할머니처럼 한때는 그런대로 북적북적하던 국밥집도 이젠 개점휴업 상태란다. 이럴 때 고단한 몸 누이고 난 어느 아침 무거운 눈꺼풀 사이로 그놈의 집값이라도 훌쩍 올라줘야지. 그래야 좀 덜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며 지친 눈을 감지 않겠나....


만약 공인중개사인 나에게 집값을 올릴 수 있는 능력이 1이라도 주어진다면,
국밥 할머니 집만이라도 두배쯤 올려주고 싶다. 두배가 올라도 3억은 택도 없다.

그러니 까짓것 그 정도는 올려줘도 무방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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