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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콩 Sep 01. 2020

아파트 잔금을 900만원이나 더 줬어요!

잘못 지급한 매매대금에도 점유이탈물 횡령죄가 적용된다.

그날은 시작부터 불편했다.

30도를 웃돌고 있었지만 바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강이나 계곡을 향해 떠나간 빈 거리에도 아스팔트는 태양과 맞짱이라도 뜨듯 끈끈한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12시에 만나기로 한 매수인은 1시가 넘어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예정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매도인은 팔짱을 낀 채 연신 투덜댔다. 그녀는 모든 게 맘에 안 들었다. 너무 싸게 팔아버린 듯한 매매가도, 사전 양해도 없이 늦는 매수인도, 비좁고 후덥지근한 부동산 사무실도... 공인중개사들은 시계를 힐끔거리며 애매한 눈짓만 교환했다. ( 공동중개였다.)

드디어 헐레벌떡 뛰어들어온  매수인이, 대기 중이던 은행 측 설정 법무사 직원으로부터 대출금을 수령한 후 탁자에 마주 앉았다.

그런데....... 사무실이 비좁은 탓에  앉을만한 자리가 마땅치 않아, 나는 엉거주춤한 폼새로  매수인의 등 뒤 저만치에  떨어져 서 있어야 했다. (매매 잔금일에는 은행 측 법무사, 소유권 이전등기 법무사, 매수인, 매도인 그리고 공인중개사 등 인원이 많다. 중개사무소 2곳이 공동으로 중개한 경우에는 물건을 의뢰받은 중개사무소에서 계약서 작성과 잔금 업무를 진행한다.)

나는 1M쯤 뒤에 떨어져 선채로 매수인에게 말을 던졌다.

매도인께 9000만 원만 건네주시면 됩니다!

계약 시에 계약금이 지급됐고 그 후 중도금과 임차인 보증금을 미리 지불하였기 때문에  그날 매도인에게 넘어갈 잔금은 정확히 9000만 원이었다.


매수인은 알겠다고 대답했고, 매도인 측 중개사는  "네 맞아요 9000!"이라고  거들었고, 여전히 팔짱을 낀 채로인 매도인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매수인이 수표를 세어 옆에 앉은  중개사에게 건넸고 중개사는 그 돈을 그대로 매도인에게 넘겨줬다.

그리고....
정확히 6일이 지난 일요일 저녁 밤 10시경에 매수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중개사님!  아무리 계산해도 900만 원이 부족해요!   잔금 때 900만원이 더 넘어간 거 같아요!!"

이게 무슨 아닌 밤중에 홍두깨야....

" 대출금을 1억 받아서 100만 원짜리 수표 한 장만 빼고 전부 매도인한테 준거 같아요!! (1000만 원권 수표  1장을 뺐어야 하는데 늦게 도착한 탓에 눈치 보이고 경황없어 100만 원권 1장을 뺐다는 것이다. ㅠㅠ)"

잔금을 치른 지 일주일이 지나서야 900만 원을 더 줬다고 주장하면 어쩌란 말인가...매수인은 따로 쓸 데가 있어서  담보대출을 신청할  때 1000만 원을 더 받았는데, 그간은 이삿짐 정리하느라 잔액에 신경 쓰지 못했다. 그러다 돈을 쓸 타임이 되어 지갑이며 통장 잔고를 뒤져보니 900만원이 온데간데 없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매도인 측 중개사에게 연락해 정산서를 확인해보라고 했다.
정산서에는 1000만 원권 수표 9장 / 100만 원권 수표 9장이라고 친절히 적혀 있었다.ㅠㅠ ( 잔금 정산일에는 복잡하고 소란하기 때문에 대개의 공인중개사들은 그날 잔금 내역을 상세히 적은 정산서와 각종 영수증, 수표 내역을 카피해 보관한다.)

9000만 원만 넘어가면 된다고 모두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9900만 원이 넘어간 것이다. 다행히 매도인 측 중개사가 수표 지급 내역을 모두 적고 또 카피해놓았기 때문에 그 증거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사실 이런 실수가 있으면 안 되는 거지만 시간에 쫓기고 분위기에 휩쓸리다 보면 간혹 머리와 손이 따로 놀 때가 있다.

깜짝 놀란 매도인 측 중개사가 부랴부랴 매도인에게 전화했더니 매도인은,

아.. 잘 모르겠는데~
지금 바쁘니깐 나중에 확인해볼게요~


라고 했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도 답이 오지 않았다. 다시 전화를 해서 '확인이 안 되면  수표조회를 의뢰하겠다'고 했더니 매도인이 그제야 말했다.

혹시 내가 900을 더 받았더라도 지금은 없어요. 써 버려서... 11월 말경에 적금 타면 그때 드리든지 해야 해요~

매수인은 당장 돈을 써야 한다고 난리인데,  900만 원을 더 받아간 매도인은 4달 후인 11월 말에  적금을 타서 준다고 했다. 그리고는 바쁘다고 전화도 안 받았다.

언젠가 절친한 공인중개사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난 적이 있다.  잔금 때 매수인이 매도인한테 돈을 송금하면서 0 하나를 더 눌러 단위가 다르게 넘어갔단다. 그걸 하루 지나서 확인하고 반환을 요청했지만  준다 준다 하고 안 줬다. 결국  매수인이랑 중개사가 수십 번 찾아간 끝에  수개월만에 겨우 받아냈다. 그것도 분할로 찔끔찔끔씩..

매도인은 전화를 안 받고 매수인은 당장 돈을 써야 하고.. 총체적 난국이었다. 일단 매수인한테 돈을 먼저 빌려준 뒤에 매도인한테 받으면 돌려받기로 했다.

이제 이 문제를 어떻게 푼다...?  생각을 정리하느라 창밖을 보고 있는데 마침 순찰 중인지 경찰차가 지나갔다. 삐뽀삐뽀...  아 경찰서! 밑져야 본전!!  112에 상담전화를 했다. 이런 것도 상담해줄까 반신반의하면서...

상황을 설명했더니

-잔금 시에 돈을 건네받을 때  900만 원이 더 온 걸 알고 받았으면?
ㅡ■ 사    기!!
-잔금 날 돈 받을 때는 몰랐으나 나중에 알게 된 뒤에  그냥 써버렸으면?
ㅡ■ 점 유 이 탈 물 횡 령 죄!!
라고 했다. 법률상담실에도 전화하여 같은 내용을 확인했다.

그리고 전화를 받지 않은 매도인한테 문자를 발송했다. 법률상담받은 대로 사기죄와 점유이탈물 횡령죄에 대해 설명하고,  매수인이 법적 조치하기 전에 조속히 반환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물론 매수인이 매도인에게 잔금을 건넬 때 옆에서 정확히 확인하지 못한 공인중개사의 실수에 대해 사과드렸고 그로 인한 법적 책임이 발생한다면 달게 받겠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또한 반환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연체이자와 소송비용이 추가될 수 있다는 내용도 친절히 적어 보냈다.

매도인에게 마지막 문자를 보낸 지 30분 후에 매수인한테서 연락이 왔다.

900만 원 입금됐어요~!!

점유이탈물 횡령죄란,
유실물ᆞ표류물 또는 타인의 점유를 이탈한 재물이나 매장물 등을 횡령했을 때 성립하는 범죄이다.
"점유를 이탈한 물건"이란 「유실물법」 제12조에서 말하는 ‘착오로 점유한 물건’ /  ‘타인이 놓고 간 물건’ / ‘잃어버린 가축’ 등을 말한다. (예 : 바람에 날려온 옆집의 세탁물, 잘못 배달된 택배 등)

또 잘못 송금된 돈을  '그러한 상황을 뻔히 알면서도'  출금해 사용하거나,  상대방의 반환 요구에도 불구하고 이를 거부하는 경우 형법 제360조에 해당된다는 것이 다수설이고 몇몇 하급심 판례도 마찬가지이다. 점유이탈물 횡령죄의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만 원 이하의 벌금 또는 과태료에 처해진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중개거래에 있어서도 항상 예측하지 못한 사고가 발생한다. 그래서 공인중개사들은 늘 긴장을 늦추지 않고 공인중개사법뿐 아니라 세법ㆍ 민법 등등 각종 법을 익히려고 노력한다.  최선을 다하여 임하다 보면 끝은 언제나 해피엔딩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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