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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콩 Jan 05. 2021

에미야 베개 가져가거라~


2년 전 명절,  6시간 거리 시골 면소재지의 시댁에 갔다가 어머니 장롱에서
낡고 조그만 꼬마 베개를 발견했다.

이런 베개가 있었던가?
해마다 연 몇 회 시댁에 방문하고 2~3박을 하게 되지만 안방 장롱을 직접 열어 베개를 고르는 일은 없었다.

우리 가족이 머무는 방은 따로 있었고 그 방에는 이불과 베개가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 아버님이 돌아가신 뒤 안방을 혼자 쓰게 되신 어머님은,

아들네가 장거리를 달려 밤중에나 새벽에 도착하면


"건넌방에는 불을 이제 넣어서 별로 안 따뜻할텐데 그냥 이 방에서 같이 자면 안되겠냐?"


라고 물으셨다. 그래도 우리는 언제나 '우리 방'으로 건너갔다.
1시간을 자더라도 편히 자고 싶은 마음이었다. 연세 드신 분들이 보통 그러하듯 어머니는 일찍 눈을 붙이시고 새벽같이 일어나셨다. TV는 거의 24시간 커져 있었고, 아주 깊은 밤이 아니면 형광등 불도 켜진 상태여서 나는 그 밝기와 소음에 적응하지 못했다.

잠잘 때 웅얼웅얼 들리는 TV 소리가 신경을 어지럽혔고 형광등 불빛도 깊은 잠을 방해했다.  나는 칠흑같이 어둡고 적막한 환경에서야 숙면을 취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한 번쯤은  아들 며느리 손주들과 함께 부대껴 자고싶은 어머니의 기대를 충족시켜드릴 수 없었다.

매번 방문 때마다 포기함 없이 반복되는 어머니의 동침 권유가 부담스러워서 간혹 남편한테  

' 이방에서 어머니랑 자요 나는 애들이랑 잘게' 라고 하거나,  애들한테 '너네들 여기 할머니 방에서 따뜻하게  자라' 라고 말해도 내가 일어서 나오면 가족들은 줄줄이 엮인 굴비처럼 따라 나왔다.

나는 그렇게 살강살강한 며느리는 아니었다. 내겐 노동 현장이나 다름없었던 시댁에서는 잠이라도 편히 자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가장 넓은 안방에선 어머니 혼자 주무시고,  작은 방에선 4명이 다닥다닥 엉켜서 자곤 했다.

시집생활  20년 차를 넘어서니 며느리도 나이를 먹었는가...

역시 새벽녘에 도착한 재작년 설 명절에는,  또 언제나처럼  '저쪽 방 불을 이제 넣어서 찬기운이 있을텐데  그냥 여기서 따땃하게 자면 안 되겠냐?' 하며 내 눈을 붙잡는 어머니 말씀을 따르기로 했다.  20년 차에다 장거리를 달려 새벽에 도착하니 정말 따땃한 아랫목이 그립기도 했고 매번 같은 레퍼토리로 권유와 거절을 반복하는 것도 피곤했기 때문이다.

그래~ 오늘은 여기서 다 같이 자자~

라고 했더니 어머니 눈이 반짝 났다. 각기 누울 장소를 찾아 이부자리를 펴던 중 내가 베고 잘 베개를 찾느라 어머니 장롱을 깊숙이까지 살피게 되었다.


 그러다 발견한 낡은 꼬마 베개. 지금은 어머니보다 훌쩍 커버린 어린 손주들 올 때마다 내어주던 베개였는지 아니면 그보다 훨씬 이전 어머니 치마폭 붙잡고 졸졸 거리던 아들 딸들이 돌아가며 안고 자던 베개였는지... 장롱 안쪽 깊숙이 끼어 있었다.

크지도, 높지도 딱딱하지도 않아서 아주 편했다. 원래도 낮은 베개만 애용하는  나한테는 안성맞춤이었다. 색깔도 내가 좋아하는 그린색과 차콜 배합.

그동안 시댁에서 사용했던 베개들이 다 크고 높아서 조금 불편했었던 터라
어? 이런 베개가 있었네? 하고 나는 연휴 내내 꼬마 베개를 끼고 살았다.

아유~ 이 베개 너무 편하고 좋네.
덕분에 잠도 편하게 푹 잘 잤네..

나도 모르게 연신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던지 어머니가 며느리 얼굴 한 번 멀뚱,  베개 한 번  멀뚱 쳐다보시더니

"그럼 가져가라~"

하셨다. 시댁에서 베개까지 냉큼 들고 오는 며느리가 얼마나 흔하겠는가.  

좋은 베개 사서 가져다 드리지는 못할망정 뭔 금붙이 베개라고  싸들고 가랴 싶어서 당연히 그냥 놓고 왔다.

연휴 끝나고  집으로 왔는데, 꼬마 베개가 자꾸 생각났다.  그동안 쓰던 베개도 있고 해외 나갔다가 사온 기능성 베개도 있지만 시댁에서 며칠 끼고 살던 그 베개만큼 편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친김에 인터넷 쇼핑몰을 뒤져서 비슷하게 생긴 꼬마 베개를 몇 개 골라서 샀다. 요즘엔  종류별로 기능별로 다양하고 편한 베개들이 많더라.

그다음 추석 명절 때 가니 어머님이 대뜸,

지난번에 왜 베개를 안 가져갔냐?
이번엔 꼭 잊어먹지 말고 챙겨가라..

라고 하셨다.  역시 또  흘려 들었다. '뭔 베개를 자꾸 들고 가라시나... 여기 두고 올 때마다 사용하면 되지 ' 하고 건성건성 넘겼다.  마침 비슷한 꼬마 베개를 몇 개 산 뒤라서.. 네네~  하고는 그냥 왔다.

그리고 다음 명절에 방문했더니 현관문을 열자마자 어머니가 베개를 안고 나오셨다.

에미야 베개를 왜 자꾸 잊고 가냐?
베개만 보면 네가  편하게 잘 잤다고 한 말이 생각나니라.
우리 집에 있는 것들이 모두 오래된 살림들이라
에미가 그렇게 좋다 좋다 한 것이 없었는데,  
그런 낡은 베개를 보고 좋다고 하니 내가 잊히지가 않더라.

요번에도 또 잊어먹고 가면 안되니까  얼른 가서 차에 넣어두고 오니라.
누가 올 때마다 못 손대게  니네방 장롱 깊숙이 감춰놨었니라.
몇 달에 한 번씩 밖에 못 오는데 이렇게 자꾸 잊어먹고 놓고 가면 몇 년이 후딱 가겠다.

그러다 나 죽으면 죽은 살림이라 못 가져가고 다 태워야 할 것 아니냐.
얼른 가서 차에다 놓고 와라.

편하게 잘 잤다고 한 그 한마디 때문에 명절이나 행사 때만 오는  며느리가 현관문 들어설 때마다

'베개 가져가라'는 말이 마중하는 첫마디가 된 것이다.


나는  어머니 베개를 차에 넣는 대신 이틀 밤을 베고 자면서 조금 고민했다.
베개를 들고 가는 게 맞는가 안 들고 가는 게 맞는가...

냉큼 가서 비슷한 베개를 샀노라는 말씀을 드리기는 이미 늦었는데,
이번에도 안 가져가면  며느리가 떠난 뒤에 빈방을 둘러보시다가

아이고~ 망할 것들!  깜빡하고 또 놓고 갔구나~

하고 다음 명절까지 애타 하실까 봐서
나는 결국 어머니의 꼬마 베개를  챙겨서 올라왔다.

그렇다고 들고 온 어머니 베개를 베고 자는 건 아니다. 막상 집에 가져와서 보니 이미 사서 길들여진 내 베개들이 한결 편해서 어머니 베개는 장롱 깊숙이 넣어두게 되었다.

갑자기 집에 베개가 많아지게 되었지만 나는 작년 설 명절 때 어머니 베개를 들고 오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 이후론 코로나 19가 확산되어서 명절 귀성을 자제하는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시댁을 방문하지 못했는데, 그러면 아마 어머니는 베개를 쳐다볼 때마다 애가 타셨을 것이다. 이미 나에게는 새로운 맞춤 베개들이 생겼다는 걸 알리 없는 어머니는 아무 데나 누워 자고 아무 베개나 베고 자지 못하는 며느리 잠자리가 불편할까 봐 쓸데없는 걱정을 하셨을지도 모른다.

첨단 과학과 인공지능의 시대라서 웬만한 건 미리 예측하고 설계하는 게 가능해졌다지만, 늘 해오던 일들을 갑자기 못하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명절은 새로운 증후군을 만들어낼 만큼 주부 스트레스 중의 하나였지만, 반면에 이 땅의 며느리로 살면서 억지로라도 명절 귀성길에 못 오르게 될 줄은 생각 못했다.

이번 설 명절에는 시댁에 내려갈 수 있을까? 가서 투덜대며 장을 보고 하품을 해대며 음식을 만들고 어머니가 권하는 자리에 누워 잠을 잘 수 있을까.

 이번에는 어머니가  '너네 방은 이제 불을 넣어서 아직 차가울테니 이방에서 같이 자는 어떻겠냐'  말씀하시기 전에

'아이고 역시 어머니 방이 제일 따뜻하네요 우리도 여기서 같이 잘래요 어머니'


라고  먼저 선수 쳐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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