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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갱도요새 Jul 23. 2021

꽃게된장찌개는 이제 안녕

할아버지, 좋은 곳에서 행복하세요

지난 토요일 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밤늦게 연락을 받고 일요일 아침 빈소를 찾았다. 거리두기 4단계 때문에 친족이 아니면 장례식장에 방문할 수가 없었고 빈소에는 우리 가족과 작은 아빠네 가족, 막내 고모, 할머니뿐이었다. 인사를 드리고 상복으로 갈아입었다. 친족이라고 해도 코로나 때문에 방문을 자제해달라고 했고, 빈소는 계속 조용했다. 장례식장의 모든 빈소가 다 조용했다. 할아버지는 되게 사람을 좋아하셨는데 가시는 길이 심심하진 않았을까 싶다.


보통 장례식장에선 정신없이 조문객이 와서 정작 돌아가신 분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없다. 하지만 조문객이 없는 코로나 시대의 장례식장은 자꾸만 돌아가신 분을 생각하게 했다. 가족들하고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자연스럽게 할아버지 얘기도 많이 하게 되었다. 빈소에 놓인 할아버지의 영정사진을 자꾸 보게 되었고, 내가 할아버지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을 즈음의 할아버지의 근엄한 모습이 담긴 그 영정사진은 자꾸만 할아버지를 생각나게 했다.



할아버지는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정말 눈치도 없으셨고(눈치를 봐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안하셨다.), 주변 사람들은 아랑곳 않고 자기 할 말만 하셨다. 명절에 놀러 가면 꼭 가족들이 언성을 높이게 되는 순간을 만드는 것은 할아버지였다. 손주들이 놀러 와 있는데도 개의치 않고 술 드시러 나가시곤 했고, 할머니나 고모가 과일을 직접 포크로 찍어 자기 손에 쥐어주기 전까진 과일을 먹지도 않는 분이었다. 우리 아빠는 항상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어떻게든 다른 가족들에게 양보하려고 하는 성격인데, 할아버지는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당연히 본인이 먼저 먹어야 했다. 가족들이 자주 놀러 오지 않는다며 불만을 토로하시면서도 정작 가족들이 놀러 가면 방에 틀어박혀 TV만 보셨다.


가족을 살뜰히 챙기거나 다정한 성격은 절대 아니셨다. 그냥 자기 인생 재밌게 잘 사시는 분이었고 가장으로서 최소한의 부양의 의무는 다하셨다. 그것도 사실 잘 해내긴 어려운 일이라 그것만으로도 우리 가족들은 모두 할아버지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분명 할아버지는 요즘 기준으로 본다면 좋은 남편이나 좋은 아빠는 아니었다. 빈소에서 할머니는 그래도 할아버지가 성격은 참 좋으신 분이라고 했다. 그 말에는 동의한다. 성격이 좋은 것을 판단하는 기준과 가족에게 좋은 사람인지 판단하는 기준은 분명히 좀 다르다.


할아버지가 앞마당에 텐트를 쳐줬던 것이 그나마 제일 재미있는 기억이다. 내가 어렸을 때 할머니집 마당엔 완전 시커먼 색의 개가 한 마리 살고 있었고, 할아버지의 주황색 텐트를 쳐놓고 그 개를 보면서 놀았다. 요즘처럼 설치가 간편한 텐트가 아니라 완전 옛날식 텐트였는데, 당연히 어린 내가 설치할 수는 없어서 할아버지가 설치를 해주셨다. 군인 출신인 할아버지가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놀이는 텐트치고 노는 것이었나 보다. 할아버지는 텐트만 설치해주고 또 친구를 만나러 나갔고, 나는 동생이랑 텐트 안에서 야무지게 놀았다. 마당이 살짝 언덕이라 텐트도 약간 기울어졌는데, 그게 또 재미있었다.



할아버지가 제일 즐겨드셨던 음식은 꽃게된장찌개였다. 우리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된장찌개였다가 어느 순간부터 우렁된장찌개로 바뀌었다. 입맛도 닮나보다. 쓰다 보니 문득 맛있는 건 자기가 다 먹어야 했던 할아버지가 꽃게는 다 먹어버려서 아빠가 그냥 된장찌개만 좋아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된장찌개는 끓이기가 아주 쉬워서 어느 집에서든 밥도둑이다. 된장찌개를 밥에 슥슥 비벼서 먹기도 한다. 아예 밥도둑이 되려고 작정한 강된장찌개도 있다. 취향에 따라 들어가는 재료가 조금씩 다른데 기본 재료는 애호박, 두부, 양파, 감자 같은 것들이다. 해산물의 시원한 맛을 내기 위해 바지락을 추가로 넣거나 새우를 넣는 집도 있다. 서초동에 있는 변호사들은 <교대 이층집>이라는 식당을 구내식당처럼 드나드는데 그 집은 점심에 우렁된장찌개를 판다. 백종원의 식당은 차돌된장찌개로 유명하다. 봄에는 냉이나 달래를 넣기도 한다. 할아버지는 황해도 출신인데 황해도는 꽃게가 잘 잡히는 곳이라고 한다. 아마 그래서 할머니가 그 많은 재료 중 꽃게를 넣고 된장찌개를 끓인 것이 아닐까 싶다.


꽃게된장찌개는 일반 된장찌개보다 된장을 조금 덜 넣는다. 된장을 많이 넣어서 국물이 너무 탁하면 해산물의 시원한 맛이 잘 안 살아서 그런 것 같다. 꽃게가 국물 맛을 다 내주기 때문에 따로 멸치나 다시마 육수를 우릴 필요도 없다. 비싼 꽃게를 쓰는 경우는 거의 없고 저렴하게 파는 냉동 절단 꽃게를 주로 쓰거나 꽃게 살 때 덤으로 주는 꽃게 다리를 쓴다. 해산물에는 역시 무를 같이 넣어주어야 제맛이다. 오래 끓이면 게살이 다 뭉개지고 국물도 탁해져서 센 불에 후다닥 끓이는 것이 관건이다.


나는 갑각류의 껍질을 벗기지 않고 넣은 찌개를 좋아하지 않는다. 일단 찌개에 갑각류를 넣는 순간부터 살을 발라먹는 것이 너무 고역이다. 국물이 다 묻어있는 갑각류를 들고 껍질을 벗기기엔 손이 너무 더러워지고, 특히 그걸 먹고 나서 다른 반찬을 먹으려면 젓가락까지 더러워진다. 그럼 끝까지 찝찝한 상태로 밥을 먹어야 한다. 파스타집에서 껍질을 벗기지 않은 새우나 게를 올린 해산물 파스타도 싫다. 소개팅 명소인 파스타집의 특성상(?) 아무도 새우나 게를 발라먹지 못해서 거의 모든 테이블에 갑각류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가끔 모든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게살을 발라먹는 상상을 하곤 한다. 하지만 껍질에서 국물 맛이 우러나는 것이라 껍질을 빼고 살만 넣는 건 또 무의미한 일이다.


젓가락질의 고수였던 우리 할아버지는 꽃게된장찌개의 게를 젓가락으로 다 먹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할아버지는 꽃게를 젓가락으로 쥐고 엄청 큰 소리로 쪽쪽 빨아먹었는데, 밥상에서 그 소리를 듣는 게 썩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할아버지는 젓가락으로 꽃게를 먹는 위엄을 보이며 밥상에서 늘 나한테 젓가락질이 이상하다고 핀잔을 줬다. 부모님은 젓가락질 가지고 뭐라고 한 적이 없는데 할아버지만 유독 그랬다. DJ DOC가 젓가락질 잘 못해도 밥 잘 먹는다고 관광버스 춤을 출 때 나는 할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할아버지가 식사를 마친 자리엔 늘 깨끗한 밥그릇과 젓가락에 의해 바스러진 게껍질이 남아있었다.



6.25. 전쟁에 참전을 하셨던 할아버지는 괴산호국원에 묻히셨다. 황해도 황주에서 홀로 내려온 할아버지는 다정다감한 사람이 되기엔 너무 일찍 가족들과 떨어져 전쟁을 겪은 것이 아닌가 싶다. 할아버지에겐 가족을 챙기는 것보다는 생존 그 자체가 더 큰 과업이었을 것이다. 전쟁을 겪어보지 않는 나는 그게 도대체 어떤 삶일까 좀처럼 상상하기 어렵다. 할아버지를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내가 전쟁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일 거다. 돌아가실 때까지도 나는 할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냥 꽃게된장찌개를 보면 할아버지가 생각날 것 같다.


재판 일정이 있어서 호국원에는 함께 가지 못했다. 대신 할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보며 할아버지에게 좋은 곳으로 가시라고 속으로 몇 번씩 말을 걸었다. 할머니와 고모를 잘 부양해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도 드렸다. 하지만 좀처럼 먼 곳에서 우리 가족들 잘 보살펴 달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살아계실 때도 그다지 가족을 챙기진 않는 분이었는데, 돌아가셨다고 해서 갑자기 우리 가족을 돌봐주는 수호신이 되어주실 것 같진 않았다. 그냥 여태까지 그래 왔듯, 좋은 곳에서 재미있고 행복하게 지내시라는 인사만 했다. 어디서든 눈치를 안 보고 할 말 다 하시는 분이니 아마 어디서든 잘 지내실 거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피고인 꽃게 된장찌개는 국물이 시원하여 다른 된장찌개에 비해서는 죄질이 좋지 않으나, 잘못을 모두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으며 밥을 절취당한 피해자들과도 원만히 합의하였습니다. 부디 법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의 선처를 하여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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