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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성필 Oct 27. 2018

안부전화와 어머니의 인센티브

아이들과 나누고픈 내 부모님과의 추억 - Episode 8

세상에서 고향에 계신 부모님만큼 내가 거는 전화를 늘 기쁘게 받아주시는 분이 또 있을까? 뭐가 그리 바쁘다고 채 5분도 안 걸리는 전화 한 통을 자주 못하면서 사는지 모르겠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그게 참 잘 안된다. 시간문제도 아니고 마음의 문제도 아니라면서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도 잘 모른다. 나뿐만이 아니라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꽤 많다. 세계 8대 불가사의에 포함되어야 할 것 같다. 지금 바로 하면 되는데 내일로 미루고 그러다 잊어버려서 한 주가 지나고 하는 식의 반복이다.


오히려 대학시절에는 더 자주 통화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당시 통화 내용이라는 것이 거의 내가 하고 싶은 말과 용건 중심이다. 새 학기 책값이 너무 비싸서 용돈이 벌써 바닥났다든지 친구들과 여행을 가는데 돈이 필요하다든지 남들 다 입는 게스 청바지 하나 사달라든지 하는 말. 


반대로 날이 많이 더운데 어떻게 지내시는지, 지난번에 손목 아프신 건 좀 어떠신 하는 말은 좀처럼 내가 먼저 묻질 않는다. 그리고 어쩌다 백만 년 만에 한번 먼저 여쭤보면 다 괜찮고 아무 문제없으니 너나 끼니 잘 챙겨 먹고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씀만 하신다. 지금도 크게 나아지진 않았지만, 내가 생각해도 그 시절엔 어찌 그토록 철이 없었는지. 휴~.



몇 해 전에 티몬 가족사랑 캠페인이라는 것이 있었다. 자녀들이 부모님께 전화해서 느닷없이 사랑한다고 말하고, 부모님의 소원이 뭐냐고 물으면 티몬이 대신 부모님의 소원을 들어드리는 내용이다. 유튜브에서 찾아서 보면 재미와 감동과 반성을 동시에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재미있는 부분은 자식에게 사랑해라는 말을 들으신 부모님들의 반응이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어디 아파? 돈 필요해? 심지어 낮술 했어? 내 아들 맞아? 등 각양각색이다. 만일 내가 학창 시절에 느닷없이 전화로 부모님께 사랑한다는 말씀을 드렸으면 무슨 얘기를 들었을까? 부끄럽게도 아마 앞서 말한 예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을 거라 짐작된다.


나의 대학시절엔 휴대폰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대부분 학교 앞 담배 가게에서 100원짜리 동전을 바꿔서 한 손에 가득 들고 공중전화 박스에서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통화 중간에 전화가 끊기지 않으려면 적절한 타이밍에 동전을 계속 투입해야 한다. 한 번은 학교 앞 공중전화 박스에서 전화를 걸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내 앞에 있는 여학생이 정말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어머니인 것 같으신 분과 통화를 했다. 꽤나 목소리가 커서 굳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더라도 내가 서 있는 곳까지 통화 내용이 다 들렸다. 보고 싶은 어머니와의 애틋한 대화에 정감 어린 사투리가 섞여서 내 차례를 기다리는 내내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오히려 피식 웃음이 났다. 그 여학생의 마지막 멘트는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엄마. 끊고 잡진 않지만 이제 고만 끊어야 쓰겄어"   


얼마 전에 분명 발신자는 아버지의 휴대폰 전화번호가 찍혔는데, 도대체 내용을 알아볼 수 없는 외계어 같은 문자 메시지가 수신되었다. 신종 보이스피싱으로 느껴져 메시지를 바로 삭제하고 일체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다음날 아버지께서 전화를 하셨다. 어제 문자 메시지 받았냐고. 아버지께서 문자를 보낼지 몰라서 겨우 어떻게 해서 보냈다고 하시면서. 내용은 너네에게 말은 안 했지만, 어머니가 최근에 속상한 일이 생겨서 기분이 좀 안 좋으신데 전화를 좀 더 자주 하고 위로도 좀 해 드리라는 말씀이셨다. 자식들이 괜한 걱정 할까 봐 무슨 일이 있어도 여간해서는 말씀을 안 하시니 내가 알 수도 없지만, 좀 더 세심하게 부모님의 마음을 살펴 드려야겠다는 자책과 반성을 했다.              


어머니는 상대적으로 의젓한 딸내미에 비해 아직 철이 덜든 둘째 지훈이에 대한 애정과 염려가 많으시다. 그래서 매주 일요일 저녁마다 지훈이에게 전화를 하라고 일부러 시키시고 짧은 통화 속에서도 늘 손자의 건강과 공부에 대한 당부와 격려를 하신다. 그리고 지훈이가 전화를 드릴 때마다 자신의 수첩에 기록을 하시고, 명절날 만나면 한 통에 천 원씩 쳐서 용돈을 주신다. 벌써 수년 째 그렇게 하고 계신다. 어머니 나름의 손주 사랑법이다. 어릴 때부터 습관이 되어서인지 둘째 녀석도 매주 일요일 저녁에 할머니한테 스스럼없이 전화를 건다. 서로에게 좋은 인센티브(?)인 것 같다. 오늘 저녁엔 미루지 말고 꼭 부모님께 전화를 드려야겠다. 혹 이 글을 읽으신 분들은 다들 그렇게 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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