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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성필 Nov 08. 2018

어릴 적 절에서 먹은 스님표 총각김치가 최고

아이들과 나누고픈 내 부모님과의 추억 - Episode 15

대구 팔공산 동화사에 가면 내원암이라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절이 있다. 동화사 본절이라고 불렀던 큰 절을 지나 조금 더 위쪽으로 올라간 곳에 자리 잡고 있는데 그렇다고 암자 수준은 아니고, 복수의 당우(堂宇)를 지닌 동화사의 부속 사찰 중 하나이다. 


나는 혼자 걸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부터 어머니 손을 잡고 산길을 걸어서, 때로는 다리가 아프다는 핑계로 어머니 등에 업혀서 어머니께서 절에 가실 때마다 빠지지 않고 따라다녔다. 어머니와 함께 내원암을 같이 찾은 세월은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내원암에 계신 스님이 대구 시내에 '길상선원'을 지어서 동화사를 벗어나실 때까지 거의 십 년 이상 계속되었다. 나름 독실한(?) 불교 신자였다.


당시 내가 절에 자주 다녔던 이유는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절밥에 고기반찬이 있을 리 만무하지만 절에서 먹는 밥과 나물 반찬이 너무 맛있어서였다. 특히 나는 공양 시간에 나오는 총각김치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는 무로 담근 김치가 말이다. 그러다 어떻게 하면 총각김치를 이렇게 맛있게 담글 수 있는지 절의 부엌인 공양간에서 스님들이 총각김치를 담그는 것을 내내 옆에서 지켜보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총각김치를 더 먹기 위해서 밥을 한 그릇 더 먹는 일은 어린 나에게 큰 식도락이었고, 깨끗이 비운 밥그릇에 물을 부어서 헹궈 마시는 공양 예절 또한 착실히 따랐다. 내가 총각김치를 너무 좋아하니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스님이 빈 반찬통에다 따로 싸주시기도 했고 어머니께서 스님께 담그는 법을 배워서 집에서도 자주 총각김치를 해주셨다.


자주 절에 따라다녔던 또 한 가지 이유는 이종 사촌동생과 어울려 절 주변에서 자연을 벗 삼아 노는 즐거움 때문이었다. 내원암을 갈 때엔 주로 외할머니, 큰 이모, 그리고 어머니께서 같이 다니셨는데 큰 이모의 막내아들인 두 살 터울의 동생과 나는 친형제 이상으로 오랜 시간을 붙어 다니면서 함께 놀았다. 우리 둘은 일단 절에 도착하면 부처님께 삼배를 드리고 난 후에는 마치 부여된 소임을 다한 듯이 법회가 열리는 동안 절 주변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장난을 치며 놀았다. 


절 옆쪽으로 시냇물이 흘렀는데 나뭇가지를 엮어서 작은 뗏목을 만들기도 했고, 돌과 흙으로 물길을 막아서  작은 댐을 만들며 놀기도 했다. 한 번은 절 아래쪽 옥수수 밭을 날아다니는 고추잠자리를 잔뜩 잡아서 도망가지 못하도록 날개 위에다 조약돌을 올려서 늘어놓았다가 살생을 금하는 절에서 무슨 짓이냐고 스님께 된통 혼이 난 적도 있었다. 또 폐지를 쌓아둔 곳에서 불장난을 하다가 불이 번져서 불을 끄느라 혼쭐이 난 적도 있었다. 그때 불을 꺼다가 손에 생긴 화상 흉터가 아직도 살짝 남아 있다.     





내원암은 내 철없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많이 배어 있는 곳이다. 하지만 대구 시내에 위치한 '길상선원'을 다니게 된 이후로는 가보질 못했다. 마지막으로 찾은 때가 언제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되었다. 내가 어릴 적 총각김치를 좋아했던 시절부터 오십이 넘은 나이에 이르게 된 여태까지 나를 아껴주시고 나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스님이 아직 살아 계신다. 


서울 생활을 하다 보니 요즘은 명절인 추석과 설에 고향에 갈 때마다 아버지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꼭 '길상선원'에 들려서 스님께 세배도 드리고 잠시 동안이지만 차를 마시면서 스님과 이런저런 말씀도 나누고 온다. 세배를 드리면 스님은 꼭 세뱃돈을 주셨는데 스님이 주시는 빳빳한 새 돈은 늘 내 지갑 안쪽에 부적처럼 넣고 다닌다. 그리고 매년 스님께 받은 새 돈으로 바꿔 넣고 있다. 그 돈은 실제 행운을 가져다주는 부적처럼 든든하다. 결혼한 이후에는 집사람과 아이들까지 함께 가는데 스님은 부모님을 비롯해 나와 닮은 아이들까지 삼대가 함께 있는 걸 보시면서 지난 사십여 년의 세월이 잠깐인 듯 흐뭇한 웃음을 지으신다.      


워낙에 먹거리가 다양해져서인지 요즘은 나도 예전만큼 총각김치를 즐겨 먹진 않는다. 대구 고향집에 가면 어머니께서 총각김치를 반찬으로 내주시는데 어릴 때 절에서 먹던 그 맛이 나질 않는 것 같아 손이 잘 안 간다. 그렇지만 가끔 집사람이 차려놓은 식탁 위에서, 또 직장 동료들과 식사를 하러 들어간 식당에서 총각김치가 나올 때마다 어머니와 스님, 그리고 내원암의 추억이 떠올라 주위 사람들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하는 엷은 미소가 내 얼굴을 스쳐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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