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생각되는 순간을 맞는다면 그건 뭔가를 얻었을 때가 아니라 잃었을 때일 것이라고 '알베르 카뮈'가 말한 것처럼 정말이지 인생의 아이러니가 딱 그런 것 같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야 뒤늦게 철이 드는 자식, 연인과 헤어지고 나서야 사랑의 소중함을 깨닫는 사람, 사업 실패로 재산을 다 잃었지만 새로운 인생을 알게 되었다는 사람 등등. 뭔가를 잃지 않고서도 꾸준히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외면적 발전과 내면적 성숙을 이뤄낼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래도 그때까지 살아온 삶의 일부를 잃더라도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할 수만 있다면 아직까진 행운의 여신이 나에게 미소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럴 뿐이지 안타깝게도 이 세상에는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와 기회조차 허락되지 않는 삶이 허다하다.
2. 복잡다단하고 불확실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누구에게나 우울 증상이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평소 시속 20~30킬로미터의 속도로, 다소 느긋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은 벽에 부딪혀도 외상(外傷)이든 내상(內傷)이든 딱 그 속도만큼만 상처를 입는다. 그래서 비교적 쉽게 털고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평소 90~100킬로미터의 속도로 치열하고 바쁘게 살던 사람이 벽에 부딪히게 되면 벽이 산산조각 날 만큼 내 몸과 마음에 큰 상처가 남게 된다. 상실감과 공허함을 훨씬 더 크게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3. 몇 년 전에 그 우울 증상이 내게도 찾아왔다. 쉰 살 즈음이었으니 이걸 삶의 고달픔으로 말미암은 갱년기 증상으로 봐야 할지, 지루하고 답답한 일상에 찌든 권태감과 무력감으로 봐야 할지, 무언가를 찾고 있는 오춘기적 방황으로 봐야 할지...
우선 그 증상이 불면증의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다. 나의 불면 증상은 처음부터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잠들었다가 아주 이른 새벽에 잠에서 깨서 다시 잠들지 못하는 것이었다. 격한 운동을 해봤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이른 새벽에 깨서는 밤새 뒤척이다 멍한 상태로 회사에 출근을 하니 하루가 너무 힘들었다. 그러다가 도저히 더 버틸 수가 없어서 병원을 찾았다.
다행히 의사 선생님을 잘 만났다. 잔뜩 긴장한 나에게 참으로 명쾌한 답을 주셨다. "감기에는 감기약, 잠 안 올 때는 수면제"라고. "수면제를 너무 부정적으로 여기지 말고 일단 잠을 충분히 자야 몸과 정신이 회복된다"라는 말씀과 함께. 그리고 "일단 효과를 보고 나면 복용 횟수나 양을 줄여 나가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 끊으면 된다"라는 친절한 설명도 덧붙여주셨다.
의사 선생님의 예상은 적중했다. 2개월 만에 복용 양을 반으로 줄이고 4개월 만에 수면제 없이도 잠을 충분히 잘 수 있게 되었다. 비슷한 증상이 있으신 분들에게 권유하고 싶다. 수면제를 너무 부정적인 선입견으로 대하지 말라고.
4. 약에만 의존할 수는 없었다. 뭔가 나의 의지로 지금의 상황을 이겨내고 싶었다. 마음의 안정을 위해 그림 그리기를 시작했다. 버킷 리스트에 담아 두었던 것을 곧바로 실천에 옮겼는데 예상보다 훨씬 큰 도움이 됐다. 게다가 나도 몰랐던 소질까지 발견했다. 그림 그리기는 지금 내 삶의 중요한 일부가 됐다.
몸과 마음의 균형 회복을 위해 본격적으로 걷기에 매진했다. 집 근처 한강공원을 거의 매일이다시피 두세 시간씩 걸었다. 걸으면서 많은 것을 비우고 새롭게 다시 채우곤 했다. 걷기에 흠뻑 빠져서 <아이러브워킹>이라는 걷기 모임까지 만들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걷고, 대화를 나누고, 소소한 음식도 함께 먹고 하면서 시나브로 다시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모임 멤버들에게 찐 고마움을 전한다.
5. 불면증을 어느 정도 극복한 시점에 일요일 저녁마다 두 시간씩 인사동에 위치한 <마음치유학교>라는 곳을 다녔다. 총 8주 동안 명상을 통한 마음 챙김으로 마음 근육을 키우는 과정이었다. 그 첫날을 잊을 수가 없다. 나를 포함해 십여 명의 사람들이 같은 방에 모여 원을 이루고 앉아 있는데 다들 얼굴 표정이 참 슬프고 힘들어 보였다.
얼굴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정확한 사연을 모르긴 해도 저분들은 적어도 나보다 훨씬 힘들고 괴로운 상황을 겪고 있는 중임을. 반대로 전체 과정을 진행하시는 '근명 스님'이 들어오시면서 인사를 하시는데 그렇게 밝고 편안한 표정은 여태 본 적이 없다.
처음에는 이런 명상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과정이 진행될수록 마음을 현재에 두는 법, 호흡을 통해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버리는 법 등 마음 챙김을 위한 명상에 익숙해져 갔다.
이번에도 운이 좋았다. 근명 스님이 열심히 하는 내게 각별히 애정과 관심을 보여 주셔서 명상의 즐거움에 흠뻑 빠져 들게 되었다. 덕분에 마음 근육이 몰라보게 튼튼해졌다. 스님과는 지금도 연락을 주고받는다. 내 인생의 전환점에 큰 힘이 되어주신 고마운 분이시다.
8주 과정을 마친 후에 명상을 위해 필요한 방석을 샀고, 스마트 폰에는 명상에 필요한 앱을 깔았다. 집에서 잔잔한 음악을 들으면서 하는 15분 정도의 명상이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몸에 생채기가 나면 딱지가 생기고 아무는데 시간이 걸리듯이 마음에 생긴 상처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필요하다. 명상을 통해 내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천천히 아픈 곳을 달래주고 상처가 아물 때까지 기다려줘야 한다.
근명스님 말씀을 기록한 노트 스님께서 손수 만들어 선물 해주신 초
6. 6개월 정도 매일 감사 일기를 썼다. 회사 동료의 소개로 시작했다. 이 역시 처음 시작할 때는 '이게 무슨 효과가 있을까?' 하면서 반신반의했지만 꾸준히 실천하는 과정에서 내 마음이 정화되는 걸 느꼈고, 조명의 밝기가 높아지듯 조금씩 조금씩 주변 세상이 환해지기 시작했다. 모든 일에 감사하면서 살라는 말이 왜 생겨났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지인 중에 매일 마다 세 줄 일기를 쓴 사람도 있는데 아마 나와 비슷한 이유에서 시작했을 것이다. 하루의 시작을 '감사'의 마음으로 열어가다 보니 세상이 응원하고 싶은 사람들로만 가득 차 보였다. 지금 이 순간 그들 모두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 지인이 쓴 세 줄 일기 >
7. '회복탄력성'이라는 말이 있다. 몸의 힘이 몸의 근육에서 나오듯 마음의 힘은 마음의 근육에서 나온다. 마음의 근육은 분명히 실재하는 존재다. 마음 근육 역시 체계적이고도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 키울 수 있다. 마음의 근육이 단단하면 단단할수록 어떠한 어려움과 역경이 닥쳐도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이 생기는데 바로 그 힘이 회복탄력성이다.
내가 겪은 일처럼 몸과 마음의 치유와 회복을 통해 다시 일상으로의 복귀가 가능하다면 100세 인생 시대에는 인생 전반기의 삶을 만회할 수 있는 충분히 긴 시간이 인생의 후반전에 주어진다. 그래서 육체적인 건강 관리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평소 마음 근육을 단단하게 만드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
마음 근육이 단단한 사람은 극심한 슬럼프나 쓰라린 실패의 슬픔 속으로 깊이 가라앉았다가도 일상의 삶으로 다시 떠오를 수 있다. 결국 세상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려 있지 않은가.
"떨어져 본 사람만이 어디로 올라가야 하는지 그 방향을 알고, 추락해본 사람만이 다시 튀어 올라가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듯이 바닥을 쳐본 사람만이 더욱 높게 날아오를 힘을 갖게 된다. 이것이 바로 회복 탄력성의 비밀이다"라고 <회복탄력성>의 저자는 주장한다.
8. 셰익스피어의 말을 빌리면, 세상에는 좋은 것도 없고 나쁜 것도 없다. 다만 생각이 그렇게 만들 뿐이다(‘햄릿’의 대사). 당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든 그건 이미 벌어진 일이다. 그 일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그 점이 중요하다. 인생의 전반전과 마찬가지로 인생의 후반전에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튼튼한 마음 근육을 길러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슬기롭게 잘 대처해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