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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양화 Dec 14. 2021

나는 비행기 공포증입니다(2화)

나는 그때까지  내 공포증속에 숨겨진 진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설마 유년시절의 경험이 잠재의식 깊숙이 자리 잡고 있음이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



비행기 공포증 1화 에서 언급했듯이 나는 8년 동안 비행기를 못 탈만큼 심한 비행기 공포를 가진 사람이다.

그러나 진정이 일본에 있는 한 어떻게라도 바다를 건너가야 아빠나 형제,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한국에서 온 남편이랑 결혼하지 말걸... 아니다. 남편이랑의 만남은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이다. 최고의 행운이 가져온 최고의 고민, 인생이 참 아이러니하게 생겼다.


코로나로 인해 고속페리 운항 중지중인  지금  내가 일본에 가려면 비행기밖에 선택할 길이 없어졌다. 결국 끝까지 회피하려고 한 ‘비행기 공포증의 나’와 대면하고 이야기해봐야 할 처지가 되어버렸다. 얄미운 코로나야! 고마워... 너 때문에 나 이제 회피를 못하게 생겼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인연 있는 심리코칭 선생님께  내 고민을 토로했다. 그 결과 경험한 치유 과정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글을 쓰는 지금도 내 마음은 아직 당황스럽고 못 믿어지긴 한다. 그 반면 지금 마음이 너무 편안하다. 코칭의 치유효과인가 보다.

.



“선생님... 나 실은 8년 전부터 비행기 공포증이 있어서 페리로 일본으로 가고 있어요... 코로나 때문에 이제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극복하고 싶어요...”


선생님은 얼마나 힘들었냐고 위로를  주시면서 비행기를 못 타게  과정을 하나하나 물어보셨다.


“그러면 신혼여행으로 간 하와이로 갈 때 까지는 괜찮았는데 그때 좀 많이 흔들었단 말이죠..?”


“네... 그때 많이 흔들고 너무 무서워지고 혹시 비행기가 떨어지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아이를  낳아서 그 불안은 더 커졌어요.”나는 계속했다.


마지막 비행기는 열 이난 아이를 데리고   없이 탔는데 그때 아이들 앞에서 무서워하는 엄마를 보이기 싫어서 계속 괜찮은 척했어요. 아이들에게 불안을 주기 싫어서요...”


“불안을 회피하시면 그 불안이 더 커질 수 있어요... “


이 말을 들은 순간 시간이 멈춘 듯이 번쩍 눈이 뜨였다. 불안을 회피하면 그 불안이 커진다는 말이 머릿속을 맹돌 앗다.

“‘회피 , 맞아  8 동안이나 회피했었지.”

불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괜찮은 하다가 결국 공포증이라는 증상으로 나타났다.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불안에 접근하신다.


“무서웠을 때의 느낌을 머리로 상상해보고 몸의 어떤 부분이 불편한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선생님은 설명하셨다. 불안이나 공포를 많이 느꼈을 때 그 공포를 몸(세포)이 기억을 하고 있다고 한다. 공포가 너무 커서  느낌을 잊을 수가 없는 거라고. 


지금 어디가 불편하세요?”

눈을 감는다.

목과 등에 힘이 안 들어가고 내가 사라져 가는 느낌이 들어요. 그리고 심장도 콩닥콩닥 뛰고 식은 땀이 나와요.”나는 눈을 감으면서 비행기를 타는 장면을 떠올린다. 헐 역시 너무 떨린다. 심장이 멈추지 않을까 걱정될 만큼이다. 포기해야겠다.


선생님은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목소리로 나의 몸 반응을 계속 물어보셨다.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비행기 탔을 때의 기억을 깊이깊이 떠올렸다.


선생님... 이상해요.  그럴까요? 지금 머릿속에 어릴  일본에서 봤던 티브이 화면이 떠올라요.  화면에는 1985년, 일본에서 비행기 사고로 돌아가신 분들의 명단이 계속 올라오고 있어요.”


1985년 8월 12일 일본 군마현에서 일 항기 추락사건이 있었다. 사망자수 520명
그 당시 뉴스에서 탑승자 명단이 계속 화면상에  
소개되었다.


“그때 양화 씨는 몇 살이었나요?”선생님이 질문하시자 나는 서둘러 계산해 본다. “10살... 초등 3학년이네요...”

선생님이 그 당시의 나 (아이)를 만나본다고 하셨다. 10살 때 비행기 사고 뉴스를 혼자 우두커니 보고 있었던 초등 3학년의 나. 그때의 마음을 느껴본다.


“... 10살의 나는 불안해요. 부모님은  앞에서 자주 싸우셨어요. 아빠 엄마가 사우시는   때문일까? 아빠 장사가  될 때 집형 편도 걱정되었어요... 그리고... 학교에서 친구들이 내가 도덕질을 했다고 의심했어요. 나는 슬프고 화가 났어요. 내가 안 했어!! 이렇게 마음속에서 외치고 있어요. 억울해요... 속상해요. 부모님이   나를 보살펴주시면 했어요. 선생님들도  믿어준 친구들도  미워요.... 엄마가 조금이라도 나를 안아주고 신경  주시면 했어요. 나는 아무 말도 못 한  울고 싶은데 웃고 있었어요. 걱정을 드리고 싶지 않았어요.”


자신도 놀랐다. 계속 뱉어내듯이 말이 나왔다. 그리고 깨달았다. 항상 불안했던  시절에  티브이 뉴스 화면이  잠재의식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던 사실을.


번개 친 듯 당황스러웠다. 왜냐면 비행기 사고 뉴스 화면을 보던 초등 3학년 당시 화면을 봐도  공포를 느끼지 않았고 그냥 ‘뭐지? 아아.. 비행기 사고가 있었나 보구나...’이 정도의 인식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티브이 화면이 지금 마흔을 넘은  머리에 각인되어 있었다. 어릴  쌓인 불안, 서러움, 원망이 힘든 육아에서  불안 회피가 계기가 되어 비행기 공포증을 유발할 줄을 어떻게 알겠는가...


“본인은 몰라도 그 당시 양화 씨의 어린아이는 많이 불안했고 화를 내고 있었어요... 그때 본 비행기 뉴스 화면을 지금까지 기억할 정도로...”


선생님은 계속하셨다. “이제 서럽게 비행기 뉴스를 보던 어린아이를 만나요. 눈을 감고 그때의 어린아이를 몸으로 느껴보세요. 그 아이의 모습, 마음은 어떨까요?”

조심스럽게 자기 마음을 살펴보았다. “울고 싶은데 미소를 지어요. 많이 안쓰러워 보여요. 나를(어른의 나 ) 보고 쑥스러워하고 있어요.”


선생님이 질문하신다. “그 아이가 뭐라고 해요?”


“기다리고 있었다고 서러웠다고 해요...”


볼에 뜨거운 눈물이 흘러간다. 참고 참았던 눈물이 쏟아진다. 어릴  열심히   척을 하고 있었다. 엄마 아빠 대신에 동생들을 돌보는 누나가 되려고 애쓰면서. 안심하고 기댈 사람이 없었다. 오직 나만이 똑똑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내 어린아이에 쓸며시 다가가 말한다.

 “지금까지 힘든 너를 무시하고 모르는 척하고 미안해. 이제 너를 잊지 않을 거야. 내가 많이 안아줄게. 함께 갈게. 이제 괜찮아. 슬프면 슬프다고 싫으면 싫다고 말해도 돼”


선생님이 이야기하신다. “기특하고 착한 어린아이야... 부모님이 싸우는 모습이 많이 슬펐지? 친구들이 너를 안 믿어져서 상처도 많이 받았나 보다... 그래도 너는 이렇게 잘 크고 이제 너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어. 이제 안심해도 돼. 비행기는 안전하고 편리한 교통수단이야. 안 떨어져. 그리고 나랑 신이 너를 도와주실 거야. 어린 아이야... 이제 괜찮아...”




내면의 아이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안아주고 대화하는 동안 눈물이 계속 흘러나왔다. 그 눈물은 초등 3학년 때 흘려야 했던 눈물이었다. 참고 참았던 눈물. 흘러도 흘러도 여전히 흘러나오는 눈물.


“지금 기분이 어떠세요?”선생님이 물어보셨다.

“선생님... 신기해요... 비행기 타기 싫은 마음 100%가 60%까지 내려갔던 것 같아요... 지금 마음이 편안하고 시원해요!”


“네~다행입니다. 몇 번만 더 반복하면 비행기 공포증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아요.”선생님의 말이 정말 내 마음에 와닿았다. 괜찮아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8년 동안 고민을 거듭하던 내가 조금이라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내가 받은 코칭의 놀라운 과정은 이렇게 끝났다.

코칭  까지는 비행기 공포증의 이유를  그냥 ‘많이 흔들렸을 때의 트라우마’ 혹은 비행기 공포증 1에서 내가 적었듯이 ‘육아를 통한 불안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진짜 원인은 그것이 아니었다. 


상상도 못 했지만 ‘초등 3학년의 어린아이 불안하고 상처 받은 마음으로 혼자  ‘비행기 추락 티브이 뉴스’가 원인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비행기 공포증을 비롯한 소위 말하는 ‘공황증’은 단순히 비행기, 좁은 곳, 어두운 곳, 높은 곳 등이 근본적인 원인이 아닐 수 있다. 진짜 원인은 어릴 적에 각인된 잠재의식 안에 있다. 숨박꼽질 하듯 구속에 숨어버리고 빨리 찾아주기를 기다리는 어린애처럼 ‘성장한 어른의 나’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아직 나는 비행기 공포증 극복과정에 있다. 그러나 다행히 원인을 알았으니 멀지 않아 극복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2022 1월 2일  비행기를  예정이다.


이 글이 나와 비슷한 고민을 가진 분 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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