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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ha Sep 10. 2020

묵상ㅣ건축, 사유의 기호 / 승효상


수녀원에서 하룻밤 머문 적이 있다. 언젠가 이탈리아 아시시를 여행할 때, 색다른 경험이란 후기에 혹해 델 질리오 수녀원을 숙소로 삼았었다. 아시시는 뭐랄까, 너무나 평온해 경건하단 느낌마저 드는 공간이었다. 역시 수녀원에 묵길 잘했다 싶었지만, 급격히 떨어진 컨디션과 얇은 이불 덕에 밤새 덜덜 떨며 선잠을 잤었다. 소박하고 경건한 공간이 일순간 차갑고 매정한 곳으로 돌변했다. 아침이 되자 다시 찾아온 온기, 그리고 밝아진 창 밖의 풍경에 마음은 변덕을 부려댔다.


아시시 수녀원의 냉기와 경건함을 떠올리며, 묵상 책을 펼쳤다.


       


p.23
우리가 현실에 살면서 얻는 정보나 지식으로 나도 모르게 사물이나 장소에 대해 환상을 쌓게 되는데 그 환상은 부서지기 쉬운 달걀 껍데기 같아 힘이 없다. 심지어 우리의 삶을 허위로 내몰 위험도 있다. 믿건대, 힘은 진실로부터 나오며 진실은 늘 현장에 있어, 현장에 가는 길인 여행은 그 장소가 가진 진실을 목도하게 하여 결국 우리에게 현실로 돌아가 일상을 다시 시작할 힘을 얻게 한다. 적어도 나에게 이 말은 항상 사실이었다.
/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 여행의 기술

결국 이 책도 수도원을 '여행'한 기록이다.


p.211
세상의 경계 밖으로, 스스로 추방된 자들
/ 경계 밖으로 스스로를 추방하는 자 - 산 펠레그리노 산투아리오 수도원

'수도사'에 대한 정의가 꽤 그럴듯했다. 스스로를 내몰면서 얻고자하는 건 무엇일까.


p.242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는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Foucault(1926~1984)가 만든 말인데, 여행지나 놀이공원 같은 비일상적 공간을 가리키며 실제화된 유토피아라고 했다. 이런 일시적 공간은 일상에 지친 이에게 활기를 주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게 하는, 유용한 존재 가치를 가진다. 그러나 헤테로토피아에 사는 이, 예를 들어 놀이터에 근무하는 이에게 이 공간은 헤테로토피아가 될 수 없으니 헤테로토피아는 절대적 가치를 가지지는 않는다. 
(…) 수도원이 헤테로토피아라는 견해는 세속인인 우리의 시각일 게며, 그 속에서 일상의 삶을 산 수도사에게는 그들의 생명이 다하도록 지킨 유토피아라고 여겨 굳이 찾아갔던 것이다. 세속의 침탈을 막고자 스스로 폐쇄하여 만든 이 수도 공동체는 그들의 영적 전쟁터여서, 그 싸움에서 실패하면 이내 디스토피아가 되었다. 영적 전쟁. 그들은 무엇을 놓고 싸웠을까? 이 기행에서 줄곧 물어야 하는 질문이었다.
/ 그렇다, 전해지는 것은 사유뿐이다 - 헤테로토피아
p.244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나는 번잡한 곳만이 아니라 경건한 영역이나 시설이 있어야 도시의 지속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이다. 경건한 곳이라면 죽음이 있는 무덤만한 곳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묘역을 부동산 시세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도시 밖으로 모두 쫓아내어, 마치 죽음을 모르는 양 일상을 산다. 오래된 도시들을 보시라. 오래된 대부분의 도시는 무덤을 가까이 두고 늘 죽음을 보며 일상을 살기에, 그들은 지금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잘 안다.
/ 그렇다, 전해지는 것은 사유뿐이다 - 헤테로토피아

본격적으로 공간에 대해 생각한다. 나의 헤테로토피아는 어디일까? 굳이 먼 곳이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잠시 숨을 수 있는 공간은 어디였더라?


코로나19가 확산되고, 재택근무가 길어지면서 일상의 공간이 좁아지기 시작했다. 그 속에서 휴식과 일이 뒤섞여버린 지금, 내게 '집'이라는 공간은 어떤 의미일까.


헤테로토피아를 찾아나서는 것도, 디스토피아를 살지 않으려는 것과 흡사한 전쟁이다.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한, 일상을 지키기 위한 절박함이 있기 때문이다.


방콕 생활은 헤테로토피아를 허락하지 않는다. 이럴수록 나 자신에게 좀 더 집중하게 된다. 건강한 음식을 먹는 일, 몸에 무리가지 않는 자세를 유지하는 일, 부정적인 감정이나 에너지에 나를 내버려두지 않는 일. 일상을 지키려는 전쟁이다.


p.251
바다는 늘 잿빛이었다. 한 번도 다른 색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 잿빛은 깊었고, 내 모든 말과 원을 다 받아주며 항상 표정을 바꾸었다. 세상의 모든 바다가 다 다른 색채라는 걸 아는 지금도 내 바다는 늘 잿빛이어서, 혹시 좌절하고 슬프면 나를 천천히 위로하는 부산의 바다를 찾는다. 바다는 그렇게 나에게 위안의 다른 말이 되었다.
/ 그렇다, 전해지는 것은 사유뿐이다 - 지중해

내게도 바다는 위안이다. 소중한 헤테로토피아인 셈이다. 내게 바다는 언제다 파도 소리다. 철썩-하는 소리는 낮고 둥글어, 다 괜찮다고 감싸주는 것만 같다. 들러붙어 있는 힘들고 아픈 감정들을 생채기 내지 않고 떼어내, 저 멀리까지 쓸어가준다. 내겐 소리인데, 색채가 될 수도 있구나. 바다에 가고 싶어졌다.



'공간'에 흥미가 생겨 관련된 책 릴레이를 시작했다. 그리고 마음 속에 들어온 문장들, 꼭 한 번 진실을 목도하고 싶은 공간들.


p.126
그는 베를린 필하모니 홀을 설명하면서 '음악을 가운데 두는 곳'이라는 말로 그의 개념을 요약하였다. 그전까지 거의 모든 음악홀이나 공연장은 무대가 맨 앞에 위치하여 객석과 공간적으로 분리되어 있었을 뿐 아니라 연주자나 공연자는 객석을 향하여 일방적으로 음악을 던져주고 객석의 관중은 수동적으로 받기만 하는 그런 형태였다는 것이다. 
(중략) 이 연주장의 내부 풍경은 그래서 다른 곳과는 너무도 다르다. 깊은 곳에 자리잡은 오케스트라 피트는 경사진 언덕에 놓인 듯한 관중석 테라스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 서로 다른 크기의 테라스 중에는 불과 몇 십 명을 수용할 수 있도록 한 경우도 있어 서로 더욱 강한 유대를 느끼게 한다. 물론 마주보는 테라스들은 그 속에 앉은 이들이 서로를 확인하며 친밀감을 만들어내도록 가깝게 조성되어 있다.
/ 마음의 풍경 - 한스 샤로운의 베를린 필하모니 홀


p.210
이 건축은 땅의 서쪽편의 반을 경사진 광장으로 비웠다. 그리고 딱히 용도가 정해져 있지도 않다. 바로 도시의 비움(Urban Void)을 고밀도의 도시 한가운데 생성한 것이다. 어떤 일이 이곳에서 일어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으며 따라서 아무도 그 가치를 평가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 경사진 광장은 이 건축 내부에 걸릴 수 없는 작가들이 그림을 내거는 장소가 되었으며 내부 공연장을 사용하기에는 품위가 더없이 떨어지는 광대들이 마구 끼를 발산하는 장소가 되었고, 파리의 시민들과 이방인들이 서로 격의 없이 어울리는 장소가 되었다. 경사진 안쪽에 솟은 이 건축의 외벽은 이 장소를 위한 무대 뒷벽이 되었고 이 무대 뒷벽을 오르는 이들이 만드는 풍경은 전통에 찌든 파리의 도시 풍경에 새로운 시대, 새로운 문화, 새로운 삶에 대한 증거가 되었다. 
/ '큰 기술'이 만든 '반건축' - 파리 퐁피두 센터의 시대적 성취

때가 때인지라, 낯설고 다른 이들이 공존할 수 있는 장소를 떠올리며 위안을 얻었다. 서로에게 너그러워질 수 있는 장소라니, 얼마나 멋진가.



p.237
우리는 어떨까. 자기 가족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 재개발지구로 확정되었다고 하여 '경축, 재개발 확정'이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희희낙락하는 우리들. 아무리 건축이 문화가 아니라 부동산으로 전락한 지 오래 되었다고 하더라도 과거의 상실을 축하하기까지 하는 우리들의 정체는 혹 유목민인가. 
(중략) 우리는 너무도 쉽게 짓고 너무도 쉽게 허무는 것 아닌가.
/ 건축과 기억 -  프랑크푸르트 뢰머 광장과 쉬른 미술관

무조건 개발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균형과 공존에 대한 이야기다. 몇 해 전 네이버 지도 거리뷰에서 외가를 찾아본 기억이 떠올랐다. 20여 년 전에 서울로 이사하셨지만, 그래도 여전히 외할아버지의 '집'은, 내 외가는 이곳이었다.


꼬꼬마 때 외할머니 손에 이끌려 갔던 목욕탕이 아니었다면 이마저도 찾지 못했을 거다. 허물기 직전에 거리뷰를 찍었던 걸까, 그나마 다행이다. 거리뷰가 업데이트되면 이 흔적조차 사라질 것 같아, 얼른 캡쳐를 했다.


모든 게 허물어진 폐허. 동네를 통째로 들어 외계로 날려버린 걸까. 기억 속 외가 동네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외할아버지는 현실에 계시지 않다. 분명 존재했었는데, 기억 속에만 남아 점차 사라져간다. 너무 마음이 아파서 외할머니께는 이 사진을 보여드리지 못하겠다.



내가 좋아했고 힘을 얻었던 공간들을 떠올려본다. 일상의 공간이 마법처럼 위안을 줬던 순간들을 되새겨본다. 몇 권의 책과 몇 번의 멍-함을 거치며, 내게 필요하고 중요한 공간이 어떤 곳인지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사를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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