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희수 May 23. 2021

무제

넓은 실내 광장 둥그런 유리가 감싸고 있는 광장 가운데에는 오르고 내리는 에스컬레이터가 있다. 광장 어디에서든 에스컬레이터를 볼 수 있다. 둥근 유리안에는 칸칸이 작은 가게들이 자리를 잡고 잡다한 물건들을 팔고 있다. 에스컬레이터가 올라오는 정면에 보이는 가게에는 심심하게 그곳을 바라보는 청년이 있다. 그 가게 안에는 사장인 중년의 남자와 유일한 직원인 젊은 청년이 거리가 있는 두 책상에 각각 앉아 각자의 업무를 보고 있다. 사장은 백발이지만 얼굴은 머리카락에 비해 삭지 않았다. 살집이 있어 자주 움직이는 것을 불편해해 자리에 앉아서 이런저런 지시를 하면 직원이 지시받은 일을 한다. 그런 둘의 관계에 서로 불만은 없었다. 몇 년간 합을 맞춰왔다. 다수의 직원이 있다면 그들 안에 자신을 숨길 수 있다. 하지만 일대일의 관계에서는 자신을 숨기기 힘들다. 처음 청년은 어쩔 줄 몰라 무조건 바쁘게 열심히 일했다. 일이 없는 날에도 괜히 가게에 진열되어 있는 물건을 꺼내 닦고 위치를 조정했다. 사장은 그런 그를 보며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노력하는 모습을 꼬집지는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니 서로를 적응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지났다. 이제는 전처럼 열심히 바쁘게 하지 않는다. 그저 맡은 업무를 깔끔히 처리하는 식으로 바뀌었다. 사장도 소란스럽지 않아 오히려 좋았다.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청년은 자리에 앉아 에스컬레이터에서 올라오는 이가 누군지 맞추는 게임을 혼자 한다.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는 에스컬레이터 자연스럽게 머리 끝부터 보인다. 보통 자주 보이는 사람들이 많아서 머리 끝만 봐도 금방 맞출 수 있다.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성별을 맞춘다던지 나이를 맞추는 게임을 한다. 얼굴이 채 보이기 전에 빨리 맞춰야 점수를 높게 쳐준다. 자신만의 약속이자 게임이다. 사장이 앉은자리에서는 에스컬레이터가 보이지 않는다. 구석진 자리 유리 너머로 좁은 틈으로 광장을 볼뿐이다. 장사가 안 되는 날에는 그 틈을 멍하니 보며 몇 분씩 보내기 마련이다. 빠르게 그 틈새를 지나가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상상해본다. 파란색 백팩을 멘 사람 키는 170cm에 까무잡잡한 피부 남자로 생각된다. 정답이 어떤 사람인지 중요하지 않다. 그저 자신이 상상하는 사람이 세상에 있다는 사실이 그를 즐겁게 만든다. 점심시간이 되면 그 둘은 손님이 들어오면 앉는 자리에 책상을 옮겨 배달음식을 시켜먹는다. 둘은 서로가 앚아있던 곳에서 벗어나 다른 풍경을 볼 때 기분이 환기되는 것을 느낀다. 서로 대화를 많이 하지는 않는다. 말을 계속 이어가게 될 때는 보통 일에 관한 일이거나 명정과 같이 며칠 가게를 닫은 후에 만났을 때이다. 둘은 음식에 시선을 두다 씹는 동안에는 유리 너머 광장을 본다 많은 이들이 엉켜 걷고 있다. 아까 봤던 사람이 있다는 것을 청년은 안다. 상상했던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사장은 신경 쓰지 않는다. 



 

작가의 이전글 고소공포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