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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희수 May 30. 2021

서울역

서울시는 서울 시민들의 오랜 혐오의 대상이었던 비둘기를 퇴치하기 위한 시민운동을 선포했습니다. 비둘기 한 마리당 포상금이 주어집니다. 길거리에서 비둘기를 잡는 모습이 눈살을 찌푸리게도 하지만 앞으로 깨끗한 서울시 거리를 위해 서울시민 모두가 동참하는 모습입니다. 지금은 서울역에 나와있습니다. 많은 비둘기들이 서식하기로 유명한 곳이어서 많은 서울 시민들이 나와 비둘기를 잡고 있습니다. 작은 새총부터 시작해서 올가미 덫 등을 이용해 곳곳에서 열심히 비둘기를 잡는 서울시민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드디어 오랜 골칫거리 비둘기를 없앨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아요. 전선 위에 앉아 있는 비둘기 밑을 지나갈 때면 새똥에 맞지 않을까 얼마나 신경 쓰였는 걸요. 겁도 없어서 길을 걸을 땐 비키지도 않아요. 발길질을 해야 그제야 날아가는데 언제는 제 얼굴로 날아와 얼마나 불쾌했는데요. 속이 시원합니다. 저희 집 창문에 붙어있는 비둘기들 때문에 얼마나 골치였는지 창문 턱에 깨진 유리를 박아 놓기도 했어요. 그래도 어떻게든 틈새를 찾아서 둥지를 터는데 창문에서 비둘기 우는 소리 때문에 노이로제 걸릴 판이었습니다. 이번에야 말로 깡그리 잡아서 씨를 말려야 합니다. 근데 비둘기 잡아서 그냥 다 태워버리나요? 얘네도 치킨처럼 튀겨먹을 수 있나요? 재밌어요! 사냥 놀이하는 것 같아서 아이들 감각을 키워주는데 도움이 돼요. 벌써 많은 비둘기들이 보이지 않게 됐습니다. 서울시는 도시 곳곳에 비둘기가 앉지 못하게 설치해 놓은 가시들을 제거하고 있습니다. 확실히 더 깔끔해진 서울시의 모습입니다. 비둘기 사체는 트럭에 실려 서울 외곽 지역에서 매장될 예정입니다. 서울시는 앞으로 도심 내에 비둘기 및 시민들의 불편을 겪게 하는 동물의 개체수가 늘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그 뒤로 길고양이 청소에 나섰다. 비둘기 때와 다르게 반대하는 국민들도 많았지만 찬성하는 입장의 세력이 더 컸기 때문에 서울시에 길고양이는 사라지게 됐다. 서울시 어디에도 비둘기와 고양이는 볼 수 없었다. 간혹 유기된 동물들이 보이긴 했으나 바로 신고가 들어와 금방 모습을 감췄다. 볼 수 있는 동물이라고는 참새뿐이었다.


자주 가는 음식점이 있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항상 가자고 칭얼대면 그런 맛없는 곳에 왜 가는지 이상해 하며 혼자 가라고 한다. 나는 휘청거리며 가게에 들어와 국밥을 하나 시켰다. 역시나 맛이 없다. 김치는 양념이 배어있지가 않아서 생으로 배추를 씹는 듯 하고 국물은 지나치게 느끼하고 짜서 물 없이는 먹기 힘들다. 요즘은 노숙자들에게 일자리와 집을 제공해준다고 한다. 어디서 표 나올 구멍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정치인들 답지 않는 일을 하고 있다. 뜨거운 국밥에 밥을 말아서 숟갈로 퍼올린다. 새우젓을 젓가락으로 집어 올리고 한입에 문다. 뜨거워서 바로 씹지 못하고 혀로 몇 번 굴리며 어금니로 씹는다. 밖에 비가 온다. 이제 거리에 처량하게 비를 맞는 어떤 동물도 없다. 맛이 없지만 숙취에는 나름 먹을만하다. 소주를 한병 시킨다. 국밥과 소주 반병 정도 먹고 가게를 나왔다. 집에 가는 길에 서울역이 있다. 비둘기도 노숙자도 보이지 않는다. 서울역 계단에 앉아 시시각각 변하는 서울 스퀘어 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잠에 들었다. 


나를 깨운 건 노인이었다. 이런 데에서 자면 안 돼요. 나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보고 몇 시인지 확인했다. 새벽 세시. 지내실 때 없으면 저를 따라오세요. 나는 술이 덜 깬 채로 노인의 부축을 받으면서 서울역 뒤편 골목길로 들어갔다. 노인에게서는 냄새가 났다. 집이 있는 사람의 옷이라기에는 많이 탁한 옷이었다. 탁해진 옷이다. 때가 묻고 밀려 모이고 다시 때가 묻어서 겹겹이 덮인 옷이다. 노인이 이끈 집에 곧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그곳에는 여러 사람들이 있었다. 고양이도 세 마리 있었다. 그들은 방에 불을 켜지 않고 둘러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코를 찌르는 독한 냄새가 났다. 그들 사이에 앉았다. 노인이 페트병을 따서 나에게 줬다. 물이다. 지금까지에 비해 정상적인 물이었다. 굳게 닫힌 방에서는 새소리가 났다. 나는 무슨 소리인지 물어봤다. 비둘기 소리라고 했다. 방문을 열어보니 방을 가득 채운 비둘기 깃털과 똥들 그 위에 비둘기들이 행거에 앉아 있었다. 방문을 닫고 집 밖으로 뛰쳐나왔다. 술이 깼다. 기억을 더듬어 길을 빠져나와 서울역에 도착했다. 골목을 걷는 길에는 지독한 냄새와 비둘기 고양이 소리가 차있었다. 돌아본 골목은 깜깜한 어둠. 외진 그곳에 아직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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