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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희수 May 31. 2021

어쩌면

오늘 강아지랑 산책하기로 했는데 같이 갈래? 여자 친구의 물음이었다. 평소에 강아지를 좋아하는 여자 친구가 강아지 카페에 글을 올렸었다. 근처에 강아지 산책하시는 분들 중에 같이 하실 분 있나요? 저는 00에 살아요. 그 글을 보고 댓글이 달린 것 중에 집 근처에 있는 사람이 있어서 오늘 저녁에 강아지와 함께 만나기로 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이 나올지 모르니 같이 가자고 하는 것 같았다. 마침 저녁 시간이 비어서 같이 가기로 했다. 약속 장소에 일찍 도착해 기다렸다. 여자 친구는 기대에 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손에는 강아지를 주기 위한 선물도 사서 들고 있었다. 속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여자 친구에게 화장실에 간다고 하고 혼자 있을 수 있냐 물어보봤다. 조금 불안한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곧 돌아온다고 약속했다. 급하게 화장실로 뛰어가 변기에 앉았다. 예상처럼 복통과 함께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배출했다. 한숨 돌리고 나니 다른 한 명이 들어와 옆에 칸에 들어와 배변을 했다. 한참을 쏟아내고 나왔다. 옆에 칸에 있던 사람도 나왔다. 어? 고등학교 동창이다. 여기 어쩐 일이야? 나 이 건물 헬스장 다녀. 못 본 사이에 몸이 커져있었다. 지금 운동하고 있는 중이야? 아니 이제 끝나서 가려고 너는? 나는 근처에 일이 있어서. 바쁜 일이야? 딱히. 편의점에서 맥주 한잔할까? 좋지. 너무 반갑다. 우리는 건물을 나와 근처 편의점 앞에 맥주를 사서 앉았다. 딱 좋은 날씨였다. 선선한 바람에 춥지도 덥지도 않은 온도. 차가운 맥주캔과 그것을 쥐는 손과의 결합이 아주 만족스러웠다. 서로 한 캔씩 마시니 편안한 이야기가 더 오갔고 오래 앉아 있을 생각으로 더 많은 주제를 던졌다. 문자가 왔다. 확인해보니 여자 친구였다. 강아지 사진을 찍어서 보냈으리라 생각하고 열어보니 충격적인 사진이 와있었다. 강아지의 모습이 많이 흉했다. 털은 군데군데 빠지고 눈은 불에 지진 듯 일그러져 있었고 혀는 이빨 사이로 길게 삐져나와 있었다. 어디야 빨리 와. 나는 동창에게 오늘 여자 친구와 해야 하는 일에 대해 설명해주고 강아지 사진을 보여줬다. 동창은 역겹다는 소리를 냈다. 그렇지만 곧 상황을 이해하는 듯 말했다. 어디서 학대받은 강아지를 입양하셨나 보네. 나도 그러리라 생각했다. 동창과 번호를 교환하고 여자 친구에게 전화했다. 여자 친구는 감정을 추스르는 듯한 목소리로 자기의 위치를 말해줬다.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뛰어서 그곳에 도착했다. 길게 뻗은 산책로였다. 멀리서 익숙한 실루엣이 보여 그곳으로 뛰어가니 사진 속 강아지와 여자 친구 그리고 태어나서 한 번도 본적 없는 뚱뚱한 여자가 서 같이 있었다. 견주로 보였다. 나는 속에 놀란 감정을 들킬까 침착하게 인사를 건넸다.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여자 친구는 내 옆구리를 세게 꼬집으며 지금까지 뭐했냐고 했다. 나는 입에서 맥주 냄새를 들킬까 작게 입을 벌려 화장실을 못 찾아서 오래 걸렸다고 했다. 아무래도 눈치를 보니 여자 친구는 얼른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다. 자기를 신경 써줘서 성사된 만남인데 그냥 돌아 설 수 없어서 나를 명분으로 벗어날 심산이다. 머리를 쥐어짰다. 어떻게 해야 빠르게 저 사람과 헤어질지. 우리는 일단 걸었다. 털 없는 추한 강아지와 그 뒤를 따르는 초고도비만의 여자를 따라 걸었다. 주변 사람들은 우리 넷을 쳐다봤다. 아니 그 둘일지도 모르겠지만 무언가 민망한 기분은 우리 둘만의 느낌이었다. 결국 우리는 산책을 마쳤다. 여자 친구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강아지 인형을 선물해 주었다. 견주는 받으며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기분이 좋지 않은 미소였다. 티격태격 하며 우리는 집에 돌아왔다. 샤워를 마치고 둘이 누워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지난 일이라서 그런지 농담 섞어 이야기하니 나름 괜찮은 추억이 됐다. 그리고 늦은 이유에 대해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처음에 여자 친구는 화를 냈지만 점차 지나면서 어떻게 그런 일이 있는지 신기해했다. 동창에게 문자를 보냈다. 잘 들어갔어? 다음에 시간 맞으면 또 보자. 답장이 오지 않았다.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 동창의 번호로 검색해 SNS를 찾아 들어갔다. 거기 사진첩에는 아까 만난 견주와 강아지가 찍힌 사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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