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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희수 Jun 03. 2021

아귀

시끄럽게 뛰어노는 아이들을 감싼 아파트 단지. 수많은 창문들이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다. 그 창문 중 하나 자신의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가 있다. 아이들은 뛰다가 넘어지기도 구르기도 올라타기도 미끌어 내려오기도 하며 이리저리 연약한 몸을 부딪힌다. 걱정되는 눈으로 아이를 보지만 아빠가 없는 아이를 너무 울타리를 쳐서 키우면 버릇이 잘 들지 않을까 걱정해 자신의 시선 아래에서 자유를 줬다. 고등학생 베이비시터가 함께 있으니 걱정은 잠시 두고 창문에서 멀어져 아직 마치지 못한 설거지를 한다. 남들도 모르게 서성이다 울었지 지나온 일들이 가슴에 사무쳐. 작은 스피커로 틀어놓은 노래에서 이문세 목소리가 들린다. 세월이 지나도 질리지 않는 노래가 있다. 나이가 들어도 유치하게 들리지 않는 노래가 있다. 이문세가 그런 노래를 들려준다. 흥얼거리며 덜그럭거리는 그릇의 소리에 박자를 맞춘다. 도어록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아이가 달려온다. 물 묻은 손을 앞치마에 닦고 아이를 안는다. 현관에 서 있는 베이비시터. 소파 위에 올려둔 봉투를 건네주며 말한다. 오늘도 수고했어요. 조금은 불량해 보이는 학생이지만 깍듯한 면이 마음에 들어서 아이를 맡기고 있다. 베이비시터는 허리를 깊게 숙여 인사를 하고는 봉투를 손에 쥔 채로 나갔다. 더러운 옷을 벗기고 욕실로 아이의 등을 밀어서 갔다. 씻는 걸 좋아하는 아이는 아니다. 그래서 욕조에 장난감을 여러 개 띄워 놓는데 관심 있게 잘 갖고 노는 날이면 씻기기 수월해진다. 아이에게 먼저 물을 끼얹기 전에 어느 정도 따뜻해졌는지 샤워기를 통해 나오는 물줄기에 손을 대본다. 적당한 온도가 됐을 때 살살 어깨부터 뿌려주면 세상모르고 장난감과 놀고 있다. 수건으로 꼼꼼히 물기를 닦아주면 아이는 해방이라도 됐는지 소파 위로 뛰어오른다. 소파 위에서 뛰면 안 된다고 매번 하는 같은 잔소리지만 귀찮지 않다. 아이의 옷을 들고 세탁기에 넣었다. 아이의 옷이 있던 자리에 검은 부스러기가 떨어져 있어서 집어서 보니 분해된 곤충의 머리와 몸통이었다. 소리를 질렀다. 아이는 여전히 소파 위에서 뛰고 있었다. 아이를 불러 앉히고 물어봤다. 이거 어디서 났어? 아이는 친구가 줬다고 한다. 어떤 친구가 줬어? 희수가. 곧잘 놀던 친구였다. 베이비시터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 혹시 희수랑 노는 모습 봤어요? 네. 둘이 뭐하고 놀았어요? 평소처럼 술래잡기도 하고 그네도 타고 놀았어요. 알겠어요. 무슨 일 있으세요? 희수가 저희 애한테 곤충 시체를 줬는데 혹시 아는 게 있나 해서요. 어머 죄송해요. 제가 못 봤나 봐요. 다음에는 신경 써주세요. 네. 쉬세요. 전화를 끊고 곤충 시체를 휴지에 싸서 변기에 내려버렸다. 통화를 끊고 나니 아이는 소파에서 잠들어 버렸다. 잠옷을 입히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희수가 보인다. 작은 점처럼 보이지만 분명히 희수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다른 아이들보다 움직임이 민첩하다. 베이비시터에게 신경을 써달라고 했지만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세탁기다 다 돌아간 소리가 났다. 허리를 깊게 숙여 세탁기 안에 상체를 집어넣고 세탁물을 한 가득 꺼냈다. 베란다에 빨래를 놓고 강하게 털어서 펼쳐 널었다. 희수와 우리 아이가 보이지 않는다. 베이비시터도 보이지 않는다.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엘리베이터가 분명히 빠르겠지만 계단으로 내려갔다. 놀이터에 오니 시야기 넓게 보였다. 주변을 보니 작은 풀숲 아래에 작은 움직임이 있었다. 그곳에 가보니 베이비시터와 두 아이가 쪼그려 앉아 개미들을 보고 있었다. 개미들이 구멍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창백한 얼굴로 서서 숨을 가다듬었다. 애들아 뭐해? 엄마! 저희 개미 보고 있었어요. 어머 그러네 개미들이네. 희수야 안녕. 안녕하세요. 우리 애랑 사이좋게 지내줘서 고마워. 감사합니다. 너무 예민한가 싶었다. 집에 돌아오면서 희수네에 전화하기로 마음먹었다. 어머니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저번에 희수가... 몇 번 말이 오가고 희수 어머님 자신도 지켜본다고 이야기했다. 다행히 이야기가 통하는 사람이었다. 문이 열리고 아이가 들어왔다. 엄마! 소파 위에 올려둔 봉투를 베이비시터에게 주고 아이의 옷을 벗겨 세탁기에 집어넣었다. 혹시 몰라 주머니를 뒤집어 보니 모래만 나왔다. 아이를 씻기기 위해 함께 욕조에 들어갔다. 아이는 꼭 쥐고 있던 두 손을 펴서 개미를 욕조 안에 떨어뜨렸다. 검은 점들이 가느다란 실 같은 다리를 휘저으면서 멀리 보이는 벽을 향해 헤엄쳤다. 나는 아이를 혼냈다. 살아 있는 생명을 갖고 이러면 안 돼! 아이는 울었다. 서럽게 울었다. 맞다. 아이는 자신이 왜 혼나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그저 작은 장난감인데. 욕조에 띄어져 있는 오리 장난감과 같은 장난감 정도일 뿐인데 갑자기 내가 화를 내니 무서웠겠지. 아이를 안아줬다. 엄마가 미안해. 목욕이 끝나고 언제 그랬냐는 듯 아이는 소파 위를 뛰기 시작했다. 미안한 마음에 잔소리하지 않았다. 화를 내서 인지 숨이 가빠졌다. 숨을 가다듬고자 베란다 앞에 서서 멀리 바라보고 있었다. 발 밑에는 놀이터가 보였다. 희수가 그네를 타고 있었다. 곧 고개를 들더니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내가 보이나 싶었지만 혹시 모르니 나도 손을 흔들어 보였다. 희수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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