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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희수 Jun 10. 2021

스승

시대를 홍익 정신으로 이끌어 나가야 합니다. 타인을 이롭게 했을 때 행복은 나에게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항상 배우고 갖춰 나가며 성장해 나갈 때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주위의 사람을 돌보고 삶을 불평하지 않고 살아간다면 좋은 일이 옵니다. 박수갈채와 함께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층고가 높은 강당 하얀 조명 여러 대의 카메라와 정장을 입은 남자들과 한복을 입은 여자들. 그들 사이에 나는 작은 나이프를 소매에 숨겨두고 있었다. 어째서 인간은 노인이 될 때까지 죽지 않을까? 살아가다 보면 삶을 위협하는 요소들은 주위에 차고 넘친다. 자동차, 가스레인지, 칼, 범죄자, 고층빌딩, 공사장, 전기 등등 언제나 죽음에 가까이 있다. 수많은 위험들이 인간을 감싸지만 끝내 닿지 못해 목숨을 가져가지는 못한다. 목에 몇 센티만 들어가도 된다. 작은 나이프지만 매우 날카롭다. 소매에 숨겨 찌르는 연습을 하는데도 몇 번이나 손을 베였다. 내가 있는 이곳을 지나 퇴장한다. 몇 번이고 참석해본 자리이기 때문에 안다. 처음에는 믿음이었다. 어두운 긴 통로 끝에 보이는 작은 빛과 같은 희망이었다. 그 빛을 계속 봤다. 주변은 분명히 어둠인데 빛을 계속 보니 내가 빛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도 빛이 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어떻게 해야 저 빛을 능가할 수 있을까. 돈, 명예, 인기 어떤 것도 지금의 나로 써는 따라잡을 수 없다. 어떤 한 분야에서도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다. 폭력, 그것만이 저 빛을 능가할 수 있다. 폭력은 원초적이다. 근본적인 힘이다. 질서를 파괴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질서인 시절이 있었다. 지금의 시대는 개인의 폭력을 인정해주지 않는다. 적을 죽이면 영웅이 되지만 사람을 죽이면 범죄자가 된다. 범죄자가 돼도 상관없다. 나의 존엄은 빛을 능가했을 때 스스로를 인정하며 생기기 때문이다. 설법이 끝나고 무대에서 내려온다. 주변에 수행원이 있지만 경호의 목적보다는 대신 일을 처리해주는 사람들이다. 충분히 파고들 수 있다. 강당에 있는 모두가 기립했다.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보통 스승이 퇴장하기 전까지 모두 고개를 들지 않는다. 눈을 지긋히 떠서 내 앞을 지나가는 발을 보려 한다. 하얀 바지에 하얀 신발. 기다린다. 몸이 뜨겁다. 괜히 땀이 난다. 시원한 바람이 분다. 옆 사람이 움직인다. 고개를 들어보니 이미 퇴장이 끝나고 사람들은 참고 있던 대화를 터트렸다. 주변을 둘러보니 활기가 넘쳤다. 기운이 빠졌다. 자리에 앉아 식은땀을 닦고 찬 물을 마셨다. 아직 기회가 있다. 설법은 일부와 이부로 나뉜다. 30분 정도 쉬는 시간 후에 다시 시작하니 화장실에 다녀와야겠다. 남자 화장실 앞에 수행원들이 서 있었다. 들어가도 되나요? 웃으면서 문을 열어줬다. 하얀 옷의 스승이 서있었다. 이런 사람도 오줌을 싸는구나. 가볍게 목례를 했다. 목례를 받아주었다. 민망한 상황이다. 동시에 기회이다. 아니다. 나는 공개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빛은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손을 닦고 사라졌다. 뒤따라 나와 자리에 앉았다. 아직 이십 분이 남았다. 무엇을 해야 할까. 머리가 복잡했다. 등을 기대 누웠다. 시뮬레이션을 돌린다. 당장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도반님. 도반님. 누군가 부르는 소리.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나는 방향을 쳐다봤다. 여기 자리 남나요? 나와 비슷한 나이대로 보이는 여자다. 네. 단정하고 깔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여자였다. 불행하게도 오늘 끔찍한 일을 보겠군. 모두가 기립했다. 천진난만한 미소를 띤 스승이 들어왔다. 나의 눈을 덮는 그늘이 더 짙어졌다. 길고 긴 설법이 시작됐다. 이상히 라 더웠다. 셔츠의 윗 단추를 풀었다. 소매에 숨긴 나이프가 무겁게 느껴져 테이블 위에 올려 두고 싶었다. 도반님, 괜찮으세요? 그 여자였다. 땀을 많이 흘리시는데 어디 아프세요? 나는 손사래를 치고 소매로 땀을 닦아냈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도 나를 힐끔 쳐다보기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집중을 받으면 안 된다. 그 여자가 내 손목을 잡았다. 흠칫 놀랐다. 잠깐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올까요? 지금 이 상태로는 계획의 문제가 생길 것 같아 일단 그 여자와 밖으로 나왔다. 신선한 공기가 온몸에 끼얹어졌다.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화장실에 들어가 세수를 하고 나오니 그 여자가 기다리고 서 있었다. 우리 잠깐 걸을래요? 나는 알겠다고 했다. 옆에는 저수지와 함께 긴 산책로가 있었다. 설법이 끝나기 한시간 전이다. 잠시 땀을 식히고 들어가 수없이 돌려보던 그 일을 완수해야 한다. 여자는 쉼 없이 떠들었다. 여기로 오게 된 이야기. 어릴 때 있던 트라우마. 현재 어떤 일을 하는지 등등 궁금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 그 여자가 사라졌다. 나는 멍하니 있다가 그 사실을 알아채는데 시간이 걸렸다. 주위를 돌아보니 그 여자가 보이지 않아 왔던 길을 되돌아 갔다. 저수지 쪽에서 작게 첨벙 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여자다 나는 윗 옷을 벗어던지고 물속으로 잠수했다. 그 물속에서 그 여자의 등을 발로 차 뭍으로 밀어냈다. 자신의 발이 땅에 닿는다는 것도 모르고 계속 첨벙댔다. 나는 뭍을 올라와 여자의 두 팔을 잡았다. 이제 괜찮아요. 그 여자는 물을 토해내면서 울음을 터트렸다. 너무 못생겨서 웃음이 나왔다. 그 여자는 왜 웃냐며 나를 때렸다. 그리곤 나이프를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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