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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희수 Jun 15. 2021

개미

여름날이다. 바닥에 아지랑이가 피어올라 울렁이는 땅을 발로 누르며 걷고 있다. 목이 말라 보이는 편의점에 들어가 한 손에 쥐어지는 물을 샀다. 뜨거운 기운이 어깨를 짓눌러 바닥을 보며 걷는다. 멍하게 뜬 눈앞에 보이는 개미. 개미들은 원을 만들고 있었다. 가운데 풀과 돌을 두고 서로의 엉덩이를 쫓아 돌고 있었다. 신기한 광경에 개미들 앞에 서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때 말이 들렸다. 오 신이시여 저희의 요청을 들어주셨군요. 주변을 둘러봤다. 멀리서 달리는 오토바이 빼고는 주변에 아무런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저희의 소원을 들어주세요. 내려다봤다. 개미의 요청이다. 나는 쭈그려 앉아 믿기지 않는 광경에 귀를 기울였다. 오랜 가뭄으로 말라죽게 생겼습니다. 제발 저희에게 비를 내려 주십시오. 나는 대답했다. 그래. 알겠어. 들고 있던 물을 개미들에게 부어줬다. 개미들은 물에 휩쓸려 떠내려가 가면서도 감사하다고 소리쳤다. 들고 있던 물을 다 부어버리니 바닥에 검게 물길이 만들어졌고 그 끝을 향해 개미들은 떠내려 가고 있었다. 집에 도착해 샤워를 했다. 몸에 묵혀 있던 땀을 씻어내니 기분이 나아졌다. 노곤함에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하다 잠에 들었다. 타는 냄새가 나서 깼다. 어두운 방에 작은 불빛들이 보였다. 개미들이 내 침대 주위를 둘러싸고 작은 횃불을 들고 있었다. 내 발끝에는 크고 노쇠한 개미 한 마리가 보였다. 그 개미는 이 곳에 모인 개미들을 대표하는 큰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걸었다. 신이시여 비를 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희는 안타깝게도 다른 위험에 또 처했습니다. 저희 마을과 멀지 않은 흰개미 마을에서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저희는 보시다시피 나약하고 작습니다. 그들과 전쟁을 한다면 분명히 패배하여 많은 희생을 치를 것입니다. 부디 저희를 도와 흰개미 마을을 없애주셨으면 합니다. 이것은 저희가 받치는 제물입니다. 내 발 사이에 하찮은 크기의 과일이 있었다. 자다 일어나 무슨 일인가 싶으면서도 과일을 집어 입에 넣었다. 처음 맛보는 과일이었다. 작은 과일이지만 치아로 으깨면 터져 나오면 맛과 즙은 지금까지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의 과일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이 어디인가. 재빠른 개미 한 마리가 내 손등에 올라탔다. 이쪽입니다. 안내를 하기 시작했다. 슬리퍼를 신고 집을 나와 개미가 알려주는 곳에 도착하니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이곳입니다. 개미가 가리키는 곳은 평평한 땅이었다. 자세히 보니 구멍이 몇 군데 뚫린 것으로 보아 이곳 아래에 흰개미의 마을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주변에 보이는 나뭇가지 하나를 들고 구멍을 중심으로 땅을 파내니 흰개미들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도망치는 흰개미를 짓밟았다. 손등에 올라탔던 개미는 환호성을 질렀다. 흰개미의 시체가 바닥에 널브러지자 나에게 부탁을 한 개미들이 흰개미의 마을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개미들은 흰개미의 알과 식량을 물고 나와 어딘가로 사라졌다. 집으로 돌아와 침대로 오니 아까 먹은 과일보다 많은 양의 과일들이 준비되어있었다. 한 알을 먹고 잠에 들었다. 비명소리에 잠에서 깼다. 창문을 열어보니 개미집을 아이들이 부시고 있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지르는 비명이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개미들의 소리가 크게 들리는 것이었다. 밖으로 나와 아이들을 말렸다. 의문을 갖는 표정이다. 개미들을 괴롭히지 않아야 착한 아이지? 아이들은 네라고 대답하고 골목을 꺾어 사라졌다. 개미들의 비명소리는 처참했다. 크기가 작아 흉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개미들의 비명이 모든 것을 설명했다. 나에게 대표로 대화를 청한 노쇠한 개미는 죽어 있었다. 많은 개미들이 그 개미의 주위에 몰려 울고 있었다. 마음이 불편했다. 잠을 다 못 자서 인지 하품이 나왔다. 돌아와 다시 잠에 들었다. 얼마 못가 발바닥을 찌르는 듯한 고통에서 잠에서 깼다. 개미들이었다. 평소보다 많은 개미들이 몰려 있었다. 신이시여 잠을 깨워 죄송합니다. 저희는 개미 연합입니다. 아까 쫓아내 주신 작은 신들이 와서 저희를 짓밟고 있습니다. 작은 신들은 항상 개미 역사 속에서 저희의 적이었습니다. 수많은 대항을 해봤지만 매번 지고 말았죠. 하지만 오늘 큰 신이신 당신이 작은 신들을 이기는 것을 봤습니다. 저희를 도와 평화를 안겨주십시오. 이것은 저희의 제물입니다. 발 밑에 많은 양의 작은 과일들이 있었다. 한 손에 움켜쥐고 입에 넣었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맛이다. 밖으로 나와 작은 신들을 물리쳤다. 발로 걷어차고 겨드랑이를 들어 멀리 던져버렸다. 작은 신들은 울음을 터트리며 도망쳤다. 나는 작은 신을 따라가 머리채를 잡고 돌로 머리를 내려쳤다. 다른 작은 신들은 도망쳤지만 나에게 머리가 맞은 작은 신은 쓰러져 움직이지 못했다. 개미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나는 두 손을 높게 들어 소리쳤다. 내가 너희의 신이다. 원하는 것을 말해라.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바닥에 몸과 머리를 눌린 채로 경찰들에게 체포되고 있었다. 쓰러진 상태로 보이는 아이의 머리맡에 피가 고여있었다. 개미들은 아이의 위에 올라타 작고 날카로운 입으로 잘개 조각내어 어딘가로 들고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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