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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희수 Jun 22. 2021

로봇

로봇으로 살아가고 싶다 생각했다. 인간이 갖고 있는 육체는 번거롭다. 사용하는 어떤 물건보다도 손이 많이 가는 물건이다. 갖고 있는 육체의 모습보다 더 높은 이상을 바란다. 치장하고 수술하고 운동을 해서 더욱 멋지고 강하고 아름다운 육체를 만들기를 원한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얻어내는 부러움과 관심이 돈이 되기도 한다. 누구라도 이 육체를 사용하지 않고는 어떤 일도 할 수 없다. 거기서 벗어나고 싶다. 아름답지 않아도 된다. 강하지 않아도 된다. 이 몸에서 오는 피로와 배고픔, 추위, 더위, 고통, 배변, 수면, 노력,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 싶다. 로봇이 돼서 쓰고 쓰이다 몇 번의 오류로 망가지고 움직이지 못해 폐품이 되어 버려지고 싶다. 그게 지금의 삶과 어떤 차이도 없다. 오히려 몸을 유지하기 위해 드는 비용들보다 적게 들어 많은 것을 소비하고 관리하지 않아서 노동에서 벗어난 삶을 살 수 있다. 나를 대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살아보고 싶다. 두 다리로 어디든 걸어가 보고 싶다. 그곳에 무언가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연료로 사막과 바다를 넘어서 얼음과 햇빛만 존재하는, 높은 철 탑과 언어가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그곳에 가고 싶다. 지하로 내려가는 길이다. 깜깜한 통로 끝에 옅은 전구가 죽어가는 빛을 뿜고 있다. 인간을 로봇으로 개조해주는 곳인데 전구 하나 갈지 못하는 건가. 문을 열고 들어가니 수많은 신체 부품이 있었다. 그 육체의 정글 가장 깊은 곳에 나를 기다리는 사람. 말끔한 사람이었다. 내 말은 완전한 사람이라는 말이다. 일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몇 가지 신체 부위는 로봇으로 대체할만한데 머리카락 한 올까지 온전히 제 것이었다. 더럽고 냄새나는 곳이었지만 실력은 확실하다. 많은 비용을 지불했다. 앞으로 쓰일 일이 없으니 상관없다. 오히려 로봇이 되어 축적되는 돈이 더 많아질 것이다. 마취를 통해 잠에 들었다. 오랜 어둠이었다. 몇 년 아니 몇십 년이 지난 듯했다. 오랜 어둠이 걷어지고 무엇인지 알아볼 수 없는 형태들이 떠다니는 곳에 있었다. 이해할 수 있었다. 저게 무엇인 이해가 됐다. 그렇지만 설명할 수 없다. LSD를 했던 기억이 났다. 깨어나니 가벼웠다. 정신도 몸도 판단은 있지만 감정이 무뎌졌다. 실시간으로 느껴지는 감각이 사라져서 그렇다고 한다. 지하에서 나오니 밤이었다. 내일 출근까지 6시간 남았다. 뛰었다. 집까지 뛰어갔다. 집으로 향하다 꺾어 무작정 뛰었다. 아무리 뛰어도 숨이 차지 않았다. 다리가 아프지 않았다. 속도도 평소보다 빨라 자전거를 타는 기분이었다. 집에 도착해 몸에 묻은 먼지를 닦아냈다. 무엇을 해야 할까. 평소라면 누워서 티브이를 켰겠지만 눕는 것과 서 있는 것에 차이가 없다. 현관에 가만히 서 있었다. 지루하지 않았다. 이 상태로 전원이 꺼질 때까지 있을 수 있다. 회사 가야 하는 것일까. 욕구가 사라지니 삶의 구조가 바뀌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미 시작됐다. 회사에 사표를 내고 로봇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간단하고 보수가 훨씬 높았다. 작은 집으로 이사를 했고 집에 있는 많은 것들을 팔았다.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선풍기, 소파, 침대 등등. 신체 활동에 도움을 주던 물건들은 필요 없다. 삶의 의미보다는 지속이 돼버렸다. 존재했기 때문에 존재하고 있다. 동물과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 그래야 했기 때문에 그렇게 살아가는 게. 생각하는 것? 생각한다. 일을 할 때 수학적인 계산. 반복되는 기계의 유지. 동물도 이러한 생각은 한다. 사냥을 하기 위한 계산. 반복되는 몸의 유지. 그래 인간의 몸일 때도 차이는 없었다. 어릴 때는 사회에서 지시하는 방향이 있으니 그곳을 향해 움직였다. 사회에 나와 도태될 수 없으니 직업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죽음이 두려웠다. 죽기 싫어서 살았다. 지금은 죽음이 두렵지 않다. 근원적으로 멈추지 않고 유지하는 이유를 찾고 싶었다. 하나의 로봇을 만들었다. 많은 공부를 했다. 나와 같은 외형의 로봇. 나와 같은 알고리즘을 갖고 있는 로봇. 우리는 인사했다. 세상이 옅어짐을 느꼈다. 그 로봇은 나 대신해 두배의 일을 했다. 자신과 나를 유지하기 위해. 나는 그 시간 동안 의무적으로 인간의 몸일 때 생각한 여행을 계획했다. 무리였다. 쇠로 된 몸으로는 바다도 사막도 얼음만 존재하는 그곳을 가기에는 제약이 많다. 비용도 만만치 않다. 로봇을 한 대 더 만들었다. 두 대는 돈벌이에 시간을 쏟고 있다. 부족하다. 계속해서 만들었다. 시간을 줄이기 위해 벌어들이는 돈은 복제에 쓰였다. 규모가 커져 거대한 생산 공장처럼 일했다. 효율적인 계획 구상과 벌이를 위해 정보를 공유했다. 나는 나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우리기도 했다. 나는 내가 아니게 되었다. 계획은 이어받기다. 수많은 자기 복제를 했다.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가능하기에 한 명 한 명이 움직이지 못할 때까지 세계를 여행한다. 다른 나들은 일로 자금을 조달하고 비행기나 배로 이동하여 멈춘 곳부터 다시 이동한다. 그렇게 사막과 바다, 전쟁지역, 높은 철탑, 신전, 산맥을 지나 빙하가 펼쳐진 곳에 도착했다. 무수한 나는 세계 곳곳에 버려져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해냈고 우리는 이곳에 있다. 하늘을 보니 무수한 별이 보였다. 그렇다. 나는 하나의 눈으로 무수한 별을 보고 있다. 얼굴에 쏟아질 듯한 셀 수 없는 별들을 하나의 눈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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