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음 나는 날이면...

캠퍼스에서, 연구단지에서 꽃따라 헤매기

by 양군의 북스택

서울 관악산에서 13년을 살아내다보니 다른 사람들보다 여유롭고 자연 가까운 삶을 살았다. 비가오는 날이면 불어난 관악산 계곡 물에 발을 담궜고 낭만 넘치게 공대폭포호수에 들어가기도 했다. 조그마한 샛길로 관악산에 들어서면 남들은 등산장비를 갖추고서야 들어서는 관"악"산을 반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뛰어다니는 재미를 누렸다. 캠퍼스의 공대쪽 샛길에는 공대폭포 위에 아무도 오지 않는 나만의 바위가 있었고 우울하고 답답할 때면 그 자리에 커피를 사들고 가 한참이나 산을 바라보다 오곤 했다.

그 중 내가 가장 즐거워했던 일 중 하나는 꽃구경이었다. 진달래, 개나리, 특히 벚꽃이 만발하면 연구를 제껴두고 응당 나다녀야했다. 학부시절에야 할 수 없이 중간시험 준비로 사진 한두장 찍는 게 다 였지만 대학원, 그리고 수료생이 된 후에는 캠퍼스 꽃구경을 안 다니는 악행을 저지를 수 없었다.

DCIM - 496.jpg 대학교 캠퍼스 숲속에서 발견한 함박꽃나무. 목련 같지만 꽃이 더 탐스러워보인다.

하지만 더 즐거웠던 나의 꽃 여행은 캠퍼스를 다니며 남이 모르는 꽃을 발견하는 일이었다. 하루는 조그마한 캠퍼스 오솔길에서 함박꽃을 찾았다. 몇년을 사진을 찍어두고 아름다운 목련으로만 알고 지냈는데 우연찮게 함박꽃나무라는 근사한 이름과 그 꽃이 북한의 국화임을 알게 되었다. 어느날은 달달한 풍선껌 향이 바람에 묻어 불어왔다. 두 해를 두리번 거리며 찾다가 수 층 짜리 건물 위로까지 자라 꽃피운 일본목련 나무의 꽃내음임을 알게 되었고 친구와 함께 일본목련이라는 상투적이고 조금은 붙이고싶지 않은 이름대신 "씹다버린 풍선껌향 나무"라는 재치넘치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풍선껌향이라기엔 그 향이 많이 묽었기 때문이다.

대전에 처음 이사 온 후 차 없이 사는 4년동안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하며 봄마다 사람들은 잘 모르고 지나치는 영춘화라는, 조금은 촌스러운 이름을 가진 꽃 보기를 기다렸다. 버스를 타고 지나가며 생명연구원 앞 담벼락에서 가끔 볼 수 있던 꽃은 자칫 잘못해서 시기를 놓쳐 못보기도 했다.

영춘화는 여러모로 개나리를 닮았다. 꽃나무와 꽃 모양, 색깔, 잎이 나기 전 꽃이 피는 점이 개나리와 닮았다. 꽃은 개나리보다 한두주 정도 일찍 피고 가지가 개나리보다 더 늘어지며 꽃의 양도 가지에 드문드문 피기 때문에 조금만 주의깊게 보면 개나리와는 조금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가까이서보면 그 차이가 더 뚜렷한데 노란 꽃잎이 개나리와 비교해서 작고 편평하게 펴져서 동그랗게 말린 개나리의 꽃모양과는 확실히 구분된다.

길가 옹벽에 펴 있는 영춘화

이번 봄에는 저녁마다 동네를 걸으며 그 꽃을 실컷 만났다. 코로나 때문에 삶의 번잡함이 없어 좀 더 나만의 낭만에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꽃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년간 만나온 그 꽃에게 촌스럽고 기억하기도 어려운 영춘화라는 이름 대신 "뜨문뜨문 피는 개나리 닮은 꽃"이라는 내 방식대로의 이름을 붙여줬다. 친구들과 깔깔대며 붙이던 이름은 아니지만 나는 꽃에게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이름을 주고 싶었다. 이제 며칠이면 뜨문뜨문 피는 개나리 닮은 꽃은 지고 내년을 기약해야한다. 그래도 괜찮다. 매화, 목련, 벚꽃. 특히 대전와서 감탄한 이팝나무가 순서대로 주르륵 따라피기 때문이다.

아! 봄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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