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밥일기 2-
어두우면 안 되는 곳들이 있다. 예를 들면 늦은 퇴근길의 골목, 가파른 옥탑방의 계단
그리고, 여자 혼자 사는 자취집 화장실.
내가 사는 집 구식 화장실엔 간이샤워기와 세면대 안쪽에 변기가 놓여 있을 뿐, 송풍창이 따로 없었다. 빛이라곤 한 뼘 크기의 전등이 전부였다.
이사 오고 얼마 되지 않아, 샤워하는 도중에 전구가 나갔다. 파팟 하는 소리와 함께 빛이 번쩍하고 곧이어 칠흑 같은 어둠이 찾아왔다. 두려운 마음에 온몸에 소름이 돋아 젖은 채로 뛰어 나가 스위치를 눌렀지만 빛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며칠 동안 휴대폰 불빛으로 버텨봤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타일 바닥에 떨어지는 물소리, 피부에 닿는 물기, 어스름한 거울 속에 비친 그림자를 보면 꼭 괴기영화를 찍는 것 같아 더는 견딜 수 없었다. 독립한다고 큰소리쳐놓고서 고작 화장실 전등을 두려워하는 것 같아 부끄러웠던 것이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고 난생 처음으로 전등을 갈기로 결심했다.
토요일 오전, 늦잠을 포기하고 마트에 갔다. 전구의 종류는 왜 그리 많은 건지, 고르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직원에게 물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전구로 두 개 골랐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화장실로 들어가 의자에 올라가 전등을 노려봤다. 잔뜩 화가 난 듯 입을 앙다물고 있는 덮개를 사정없이 돌렸다. 그리고는 새까맣게 탄 전구를 빼고 하얀 새 전구를 끼웠다. 마지막으로 다시 덮개를 몸통의 홈에 맞춰 딸깍 소리가 날 때까지 돌렸다.
전등에서 손을 뗐지만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의자에서 내려와 스위치를 올렸다. 눈부신 빛이 환하게 쏟아졌다. 대성공이었다.
정리를 마치자마자 H에게 전화했다. H는 그저 웃기만 했다. 사실 그에게 전구 가는 일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는 이미 여러 번 전구를 갈아 봤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그가 처음 세탁기 사용한 날을 기억했다. 어디에 세제를 넣어야 하는지, 버튼은 어디에 있는 건지, 내 눈엔 빤히 보이는 것을 그는 알아보지 못하고 어려워서 쩔쩔맸다. 결국 내가 방문해서 하나하나 가르쳐 줘야했다. 그때 그의 눈빛은 마치 신세계를 보는 것 같았다.
어른이 되어 혼자 사는 것은 그런 것이다. 해 보지 않았던 일에 도전하는 것. 우리는 혼자 살면서 나와 너라는 벽을 부수고, 같이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해간다. 그것은 남자와 여자란 틀에서 벗어나 평범한 ‘사람’으로 함께 사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