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의 책 - 『나쁜 친구』(앙꼬, 창비출판사)
어쩌다보니 열 다섯짜리 아이와 함께 읽었다. 내 책상 위에 있던 책을 만화인 줄 알고 덥석 집어간 녀석이 읽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읽어서 좋은 내용은 아닌 것 같아요. 너무 어두워.”
며칠이 지나 책을 읽으며 아이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 깨달았다. 올해 열다섯이 된 아이는 이 책에 나오는 세상을 아직 보지 못했다. 알지 못하는 세상이니 어둡다는 표현을 하는 게 당연했다.
마흔을 넘은 나의 느낌도 그러할까? 하지만, 내게는 그리 낯설거나 잔혹한 세상이 아니었다. 고향집 뒷담을 돌면 아무 때라도 마주칠 수 있는 가까운 세상의 이야기였다.
『나쁜 친구』의 주인공 진주와 정애는 열여섯살이다. 그녀들은 부모에게 머리가 터지도록 맞고, 학교 선생님들의 발길에 채이고, 성폭력에 무방비하게 노출됐다. 지금의 같은 또래가 보기엔 납득하기 힘든 여중생의 생활, 겨우 십 년 전의 일이다.
“댓가들을 겪으며 세상을 배웠다.
세상이 어떤 곳인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
잘못된 것부터 알아갔지만 남들보다 일찍 알게 된 것뿐이라고.”
열다섯 아이에게 그들의 이야기가 멀게만 느껴진 건 아직 세상을 알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행이라 생각한다. 세상엔 일찍 알아 좋을 게 별로 없다. 남보다 늦게 알고 천천히 배워야 더 행복할 수 있다.
결국 어린 나이에 세상의 뒷골목을 겪은 이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우리 어른들의 이야기란 것이다. 어른이 되기까지 크기에 상관없이 누구나 아픔이란 걸 겪는다. 좋았던 기억은 추억이란 말로 포장하고, 나빴던 기억은 숨기는 기술이 느는 게 어른이다. 반복하고 싶지 않은 나쁜 기억을 다신 겪지 않으려고 우리는 노력한다. 그렇게 얻은 사회적 지위와 여유로운 생활에 안주하면서 훌륭한 어른으로 변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만족해한다.
“난 내 과거를 부끄러워한 적이 없다.
오히려 그것들을 얘기하는 게 즐거웠다.
난 더 이상 그곳에 속해 있지 않으니..
재미있던 일들은 모두 이야깃거리로 남았다.
그렇지 않은 것들은 기억 속에서 지워버렸고,
난 즐거웠다고, 그렇게 살았기에
지금의 내가 된 것이라고 만족했다.”
과거는 지나면 추억이 된다. 찌질했던 시간마저 재미있는 경험과 즐거운 농담거리로 남는다. 지금의 나는 그때와 달리 많이 성숙하고 변했다는 자신감이 그것을 부추긴다. 그저 농담같은 세월이었다고, 지금의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지나간 시간의 일부였을 뿐이라고.
그러나 과거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창녀로 남은 친구와 용케 그 길에서 빠져나와 성공한 친구, 그 둘의 삶은 같은 궤적을 그리며 다시 마주친다. 과연 누가 누구에게 나쁜 친구였을까? 혹은 나쁜 친구일까?
책장을 덮고 오래 생각에 잠긴다. 나는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리고 지금은 어떤 사람일까?
때때로 많은 말과 두꺼운 책보다 절실한 그림 몇 장이 사람을 흔들고 울릴 수 있음을 새삼 느끼는 휴일의 독서였다.
『나쁜 친구』(앙꼬, 창비출판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