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달의 일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혜영 Mar 15. 2017

매화 지다

달의 일상

봄은 산보다 바다가 먼저다.      


속살을 뜰썩이던 겨울바다가 거품을 걷어내고 푸른 봄빛으로 젖어간다. 봄의 바다와 겨울의 바다가 물색부터 다르다. 겨울의 바다가 강퍅한 속을 허옇게 까 보인다면 봄의 바다는 하늘을 품은 듯 말간 살결을 슬쩍 내보인다.      


당신을 만나러 가는 길.


낡은 어촌 너와지붕 위에 아직 덜 녹은 눈이 하얗게 붙어 있었다. 싱싱한 갯내를 실은 해풍이 비루한 나무 등걸 새로 움튼 매화 망울을 어루만졌다.   눈 묻은 매화를 보러 섬돌에 발을 올렸다. 알싸한 향 때문에 금세 코끝이 찡했다.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지독한 향이었다. 이래서 매화는 한평생을 춥게 살아도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고 하는 모양이었다.    

  

매화는 잎보다 꽃을 먼저 피운다. 맵싸한 추위를 여린 꽃잎끼리 머리를 수그려 보듬고 안아 이겨낸다. 손톱 끝에 못 미치게 작고 속이 투명하게 비치는 여린 꽃잎이 어찌나 고집스러운지. 매서운 진눈깨비에도 조금도 꺾이는 법이 없다.      


덜 추운 때를 고르고, 잎을 보호막으로 내세웠다면 조금은 쉽게 피고 오래 머물 수 있을 텐데. 매화는 뭐가 그리 급한지 겨울이 가기 전 급히 찾아와 봄꽃이 피기 전에 서둘러 사라진다.      


올 봄, 당신과 매화를 보고 싶었다. 자잘한 꽃잎이 위태롭게 매달린 나무 아래서 독한 향에 취한 듯 당신의 어깨에 기대 펑펑 울고 싶었다. 이제는 그래도 될 것 같았다. 봄이니까, 벌써 두 번째의 봄이 지나니까.     


당신은 날 보면 봄이 생각난다고 했다. 술을 마시면 발개지는 내 볼이 매화 같다고, 혹은 벚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봄이 오면 가장 먼저 당신을 떠올렸다.     


그러나, 당신은 올해도 오지 않았다.      


"그거 알아요? 우리 한 번도 봄을 함께 본 적이 없는 거.."     


당신을 기다리는 동안 눈보라는 그치고, 햇살이 따스해지고, 매화는 저물었다.

그리고 나의 봄도 저물어 갔다.               




매거진의 이전글 달의 독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