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일상
봄은 산보다 바다가 먼저다.
속살을 뜰썩이던 겨울바다가 거품을 걷어내고 푸른 봄빛으로 젖어간다. 봄의 바다와 겨울의 바다가 물색부터 다르다. 겨울의 바다가 강퍅한 속을 허옇게 까 보인다면 봄의 바다는 하늘을 품은 듯 말간 살결을 슬쩍 내보인다.
당신을 만나러 가는 길.
낡은 어촌 너와지붕 위에 아직 덜 녹은 눈이 하얗게 붙어 있었다. 싱싱한 갯내를 실은 해풍이 비루한 나무 등걸 새로 움튼 매화 망울을 어루만졌다. 눈 묻은 매화를 보러 섬돌에 발을 올렸다. 알싸한 향 때문에 금세 코끝이 찡했다.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지독한 향이었다. 이래서 매화는 한평생을 춥게 살아도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고 하는 모양이었다.
매화는 잎보다 꽃을 먼저 피운다. 맵싸한 추위를 여린 꽃잎끼리 머리를 수그려 보듬고 안아 이겨낸다. 손톱 끝에 못 미치게 작고 속이 투명하게 비치는 여린 꽃잎이 어찌나 고집스러운지. 매서운 진눈깨비에도 조금도 꺾이는 법이 없다.
덜 추운 때를 고르고, 잎을 보호막으로 내세웠다면 조금은 쉽게 피고 오래 머물 수 있을 텐데. 매화는 뭐가 그리 급한지 겨울이 가기 전 급히 찾아와 봄꽃이 피기 전에 서둘러 사라진다.
올 봄, 당신과 매화를 보고 싶었다. 자잘한 꽃잎이 위태롭게 매달린 나무 아래서 독한 향에 취한 듯 당신의 어깨에 기대 펑펑 울고 싶었다. 이제는 그래도 될 것 같았다. 봄이니까, 벌써 두 번째의 봄이 지나니까.
당신은 날 보면 봄이 생각난다고 했다. 술을 마시면 발개지는 내 볼이 매화 같다고, 혹은 벚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봄이 오면 가장 먼저 당신을 떠올렸다.
그러나, 당신은 올해도 오지 않았다.
"그거 알아요? 우리 한 번도 봄을 함께 본 적이 없는 거.."
당신을 기다리는 동안 눈보라는 그치고, 햇살이 따스해지고, 매화는 저물었다.
그리고 나의 봄도 저물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