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일상 (이미지는 다음 출처)
겨울비 내리는 길을 걸어본 적이 있는가?
노루꼬리만한 겨울해가 순식간에 사그라져 어스름에 잠긴 길을 걷다보면 자연스레 이별이나 소멸같은 서글픈 단어가 생각났다. 그래서 나는 겨울이 싫었다. 겨울은, 내게 늘 빨리 지나가버렸으면 하는 추운 날에 불과했다.
아마 그 해 겨울을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도 그러했을 것이다.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머물 때였다. 매일 새벽 첫차로 병원에 와서 마지막 차로 귀가하는 팔순의 노인이 있었다. 왕복 두 시간이 넘는 거리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오가는 노인과 눈인사를 나누다 긴 사연을 듣게 됐다.
“아내는 9년 동안 후두암을 앓았어요. 그때 이미 심각해 수술을 못하고 약물 치료로 최대한 버텨주기만 바랐는데, 이제 시간이 다 되었다고 하네요. 올 겨울이 마지막인 셈입니다.”
남의 이야기처럼 말하는 노인을 보며 나 또한 애써 담담해지려 했다. 우리는 손에 쥔 커피가 차갑게 식도록 마시지 못했다.
“60년 동안 큰 다툼 없이 잘 살아서 아쉬워하면 안 되는데, 매일 자고 일어날 때마다 빈 옆자리를 보면 온 세상이 다 빈 것처럼 무서워요.”
6개월을 그렇게 보냈다고 했다. 한여름에 들어와 가을을 지나 겨울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밤중에 걸려온 응급전화를 다섯 번 받았고, 부리나케 달려와 무사히 넘긴 아내를 들여다보며 가슴 쓸어내리기를 또 다섯 차례.
그는 눈시울을 훔치며 이별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조금도 준비가 안 된 것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가끔, 내가 떠난 세상 그리고 당신이 떠난 세상을 생각한다. 매일 잠을 깨우고 재우던 목소리가 사라지고, 더 이상 눈을 마주칠 수 없게 되면 남은 이는 무엇으로 살아가게 될까?
우리가 사랑이라는 부르는 시간은 이별을 준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세상에서 가장 긴 준비시간이었으면 하지만, 언젠가 무슨 이유로든 헤어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타임머신을 만들어서라도 멈추게 하고 싶은 지금. 영원히 늙지 않았으면 하는 당신과 나.
아무리 고쳐먹으려 애를 쓰고 마음을 다잡아도 내게 이별은 아름다울 수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