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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달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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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혜영 Mar 16. 2017

이별은

달의 일상 (이미지는 다음 출처)

겨울비 내리는 길을 걸어본 적이 있는가?      


노루꼬리만한 겨울해가 순식간에 사그라져 어스름에 잠긴 길을 걷다보면 자연스레 이별이나 소멸같은 서글픈 단어가 생각났다. 그래서 나는 겨울이 싫었다. 겨울은, 내게 늘 빨리 지나가버렸으면 하는 추운 날에 불과했다.

      

아마 그 해 겨울을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도 그러했을 것이다.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머물 때였다. 매일 새벽 첫차로 병원에 와서 마지막 차로 귀가하는 팔순의 노인이 있었다. 왕복 두 시간이 넘는 거리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오가는 노인과 눈인사를 나누다 긴 사연을 듣게 됐다.   

   

“아내는 9년 동안 후두암을 앓았어요. 그때 이미 심각해 수술을 못하고 약물 치료로 최대한 버텨주기만 바랐는데, 이제 시간이 다 되었다고 하네요. 올 겨울이 마지막인 셈입니다.”     


남의 이야기처럼 말하는 노인을 보며 나 또한 애써 담담해지려 했다. 우리는 손에 쥔 커피가 차갑게 식도록 마시지 못했다.     


“60년 동안 큰 다툼 없이 잘 살아서 아쉬워하면 안 되는데, 매일 자고 일어날 때마다 빈 옆자리를 보면 온 세상이 다 빈 것처럼 무서워요.”     


6개월을 그렇게 보냈다고 했다. 한여름에 들어와 가을을 지나 겨울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밤중에 걸려온 응급전화를 다섯 번 받았고, 부리나케 달려와 무사히 넘긴 아내를 들여다보며 가슴 쓸어내리기를 또 다섯 차례.      


그는 눈시울을 훔치며 이별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조금도 준비가 안 된 것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가끔, 내가 떠난 세상 그리고 당신이 떠난 세상을 생각한다. 매일 잠을 깨우고 재우던 목소리가 사라지고, 더 이상 눈을 마주칠 수 없게 되면 남은 이는 무엇으로 살아가게 될까?     


우리가 사랑이라는 부르는 시간은 이별을 준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세상에서 가장 긴 준비시간이었으면 하지만, 언젠가 무슨 이유로든 헤어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타임머신을 만들어서라도 멈추게 하고 싶은 지금. 영원히 늙지 않았으면 하는 당신과 나.   

  

아무리 고쳐먹으려 애를 쓰고 마음을 다잡아도 내게 이별은 아름다울 수 없을 것 같다. 



<강풀, 그대를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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