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일상
<은하철도999>란 만화가 있다.
나는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로 시작되는 주제가가 시작되면 하던 일을 멈추고 TV앞으로 내달렸다. 철이와 메텔이 기차 999호를 타고 안드로메다로 떠나는 여행은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흥미로웠다. 기차가 어두운 우주 공간을 날아 새로운 역에 닿을 때마다 신기한 광경이 펼쳐졌다. 나는 예정된 역에서 혹은 우연히 들른 역에서 벌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며 기차여행을 꿈꿨다.
철로가 없는 제주에서 기차여행을 상상만 하다 스무 두 살 겨울에 처음으로 기차를 탔다. 창밖으로 소소히 눈이 내리고 있었다. 열차 창에 눈꽃이 하얀 발자국처럼 찍혔다. 잠깐 사이에 도로가 소프트아이스크림처럼 얼어붙었다.
기차에서 내려 오밀조밀한 기와들이 머리를 맞댄 포구를 지나 방파제로 향했다. 추운 날씨 탓에 인적은 없고 애꿎은 바람만 서럽게 불었다. 방파제 끝에 다다라 고개를 내밀었다. 파도가 발끝까지 밀려들었다. 쉬지 않고 내리는 눈 사이로 갈매기떼가 먹이를 찾아 날아다녔다.
많이 추웠지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날 그곳에서 내 눈을 사로잡은 건 성긴 눈발이나 파도, 갈매기가 아니었다. 방파제 옆 기암괴석 위에 일부러 그런 것처럼 펼쳐진 커다란 그물이었다.
어디서 흘러왔는지 혹은 누가 버렸는지 알 길 없는 그물이 그곳에서 고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렸다기엔 너무 말짱한 모습이어서 나는 주인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수평선 너머에 작은 어선이 떠 있었다. 파도가 허옇게 들청대는 바다 위에 홀로 떠 있는 모습이 뭔가 절실해 보였다. 알지도 못하는 어부의 아내와 아이 얼굴이 수평선 위에 겹쳐졌다.
그 후 여러 기차를 타고 여러 역을 다녔지만 기차를 타면 언제나 그 겨울바다가 먼저 떠올랐다. 눈보라가 성기게 내리는 오후, 잿빛으로 물든 하늘과 수평선을 유영하는 배, 그리고 검은 바위를 통째로 집어 삼킨 그물.
그 날 그곳의 그물엔 무엇이 걸렸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