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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혜영 Apr 29. 2017

결혼, 하나가 아닌 하나

로런 그로프 『운명과 분노』(문학동네, 2017)

운명과 분노. 처음엔 참 단순한 제목 같았다. 남자 주인공 로토와 여자 주인공 마틸드는 만난지 2주만에 결혼을 한다. 스물 두 살의 어린 나이라 가능했을지는 모르지만 사랑에 빠져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뜨거움과 경황없음을 공감할 것이다. 그 사람밖에 보이지 않고 이 사람이 없으면 다시는 사랑이란 걸 할 수 없을 것 같은 간절함. 로토는 그것을 ‘쿠 드 푸드르-첫눈에 반한 사건’이라고 했다.      


둘은 결혼식을 올리고 아무도 없는 해변에서 처음으로 하나가 된다. 결혼 서약이 발효되는 것은 그때부터다. 바닷새들이 침묵한 부슬비 내리는 회색빛 해변을 오롯이 둘이 차지하고 조금의 틈도 없이 완벽하게 하나로 합쳐지는 때. 거기서 끝났다면 둘의 이야기는 행복하게 끝맺어졌을 것이다. 모든 시련을 이기고 결혼에 이른 동화가 이쯤에서 끝을 내는 것은 딱 거기까지가 아름답기 때문이다. 거짓과 급작스런 끝맺음 위에 아름다움이 꽃핀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결혼’ 그 찬란한 슬픔에서 시작되었다.      


사랑을 등산에 비유하면 결혼은 정상에 다다르는 일이다. 산 정상에 오르면 내려갈 일 밖에는 남아 있지 않다. 하산의 길은 그래서 조금은 서글픈 노을과도 같다.      


같은 공간에서 함께 살면서 몰랐던 서로의 모습을 알게 된다. 같은 공간에 머문다는 것은 더 이상 감출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진실이라 믿었던 거짓, 운명인 줄 알았던 것들의 배신, 행복은 분노로 이어진다.     


『운명과 분노』 상반된 단어의 제목이 말하듯 둘은 너무도 다른 모습이다. 로토가 낙천적이고 빛을 내는 사람이라면 마틸드는 염세적이고 어두운 존재다. 로토가 그들의 만남을 ‘쿠 드 푸드르 - 첫눈에 반한 사건’이라고 말하고, 마틸드는 그것을 ‘쿠 드 푸트르- 일종의 섹스사건’이라 생각했다. 때로는 낱말 하나의 차이가 모든 것을 달라지게 한다.     


밝고 낙천적인 성격에 자신의 결혼을 운명으로 받아들인 로토의 이야기가 그려진 1부의 이야기보다 비밀과 거짓으로 결혼 생활을 영위해 온 마틸드의 분노가 밝혀지는 2부의 이야기가 더 흥미롭다. 커플의 알콩달콩한 모습엔 혀를 차고 싸움 구경에 몰리는 사람의 심리랄까. 그렇다고 마틸드의 이야기만 읽으면 둘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한다. 밝음과 어둠, 진실과 거짓은 결국 하나니까.     


로런 그로프의 『운명과 분노』는 그 양면이 정교하게 얽혀 있다. 책을 다 읽어갈 때쯤 끝없이 반전이 이어지고 우리는 그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게 된다. 우연과 필연, 밝음과 어둠, 사랑과 이별, 삶과 죽음이 결국은 한 가지고, 하나의 삶, 동일한 책이라는 것을 자연스레 깨닫는다.      


운명적인 만남을 꿈꾸는가? 혹은 운명에게 배신을 당한 적이 있는가?


로토와 마틸드는 말한다. 지난 사랑은 가장 찬란하고 행복했던 순간에 머문다고. 그게 진실이었든 거짓이었든. 눈을 감는 순간에 남는 것은 가장 행복했던 첫 날의 해변, 첫 입맞춤, 첫 사랑뿐이라고. 그것이 하나가 아닌 하나일 수 밖에 없는 사랑의 정상, 결혼이라고.



결혼이란 건 거짓말투성이야.
대체로는 친절한 거짓말이지만, 말하지 않는 거짓말이다.
<로런 그로프 -운명과 분노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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