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갈피를 펼치며
너를 기다리다가
오늘 하루도 마지막 날처럼 지나갔다
너를 기다리다가
사랑도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바람은 불고 강물은 흐르고
어느새 강변의 불빛마저 꺼져버린 뒤
너를 기다리다가
열차는 또다시 내 가슴 위로 소리 없이 지나갔다
우리가 만남이라고 불렀던
첫눈 내리는 강변역에서
내가 아직도 너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나의 운명보다 언제나 너의 운명을 더 슬퍼하기 때문이다
그 언젠가 겨울산에서
저녁별들이 흘리는 눈물을 보며
우리가 사랑이라고 불렀던
바람 부는 강변역에서
나는 오늘도
우리가 물결처럼
다시 만나야 할 날들을 생각했다
<강변역에서 / 정호승>
당신과 이별하고 돌아오던 밤이었습니다.
지독한 감기에 걸린 듯 앓기 시작했습니다.
물 한 모금 넘기지 못할 만큼 목이 붓고,
온몸에 신열이 지글지글 끓어올라
꼼짝할 수가 없었습니다.
잠을 자는 것도 아니고
깨어 있는 것도 아닌 몽롱한 상태로
헛소리처럼 당신의 이름을 수천번을 되뇌었습니다.
몇 날인지 모를 날들이 지나고,
다시는 당신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알고서도
저의 감기는 나을 줄을 몰랐습니다....
그때, 생각했습니다.
한때 당신을 얻기 위해 천마리의 학을 접었듯
이제는 당신을 잊기 위해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한 편씩 모여 천 편이 완성되는 날,
나는 당신을 잊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밤들이...
당신을 향한 밤이 아스라이 이곳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