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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혜영 Feb 14. 2018

나의 책이 너에게, 너의 책이 나에겐

[도둑맞을 편지 / 한유주]




무슨 말인가를 쓰려고 했는데, 잊어버렸다.



책상 앞에 앉으면, 창문 밖으로 멀리, 파도가 들어오고 나가는 것이 보인다. 맑은 날이면 수평선이 한결 분명하게드러난다. 수평선 너머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수평선 너머를 볼 수 있는 이는 없으며, 이는 지평선과 마찬가지로, 수평선이라는 단어가 존재하는 이유이므로, 나는 바다 너머의 바다를 상상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것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것을, 쓸 수 없다고 쓰는 것은 가능하다. 바다 너머에는 바다가 있다. 바다 너머의 바다 너머에도 바다가 있다. 그럴지도 모른다.  



나는 아무것도 쓸 수가 없다. 내가 글쓰기를 시작하는 동안, 이 글은 이중의 글쓰기가 되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쓰고, 나의 단어가 나의 단어를 지우고, 나의 문장이 나의 문장과 사라지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것도 쓰지 않는다. 이 글을 쓰는 사람은 내가 아니다.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내가 쓰고 있지 않음에도, 이 글은 계속해서 쓰인다. 순간 나는 아무것도 쓰지 않는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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