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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는 조선사

1. 고려말 이성계 장군(6) - 신진사대부 비상!

by 나루터

전근대 사회는 어느 시대나 글을 읽고 쓰는 관료들의 존재가 귀한 시대였다.


더욱이 '한자'는 익히기 어려운 글자라, 이 식자의 존재는 한자문화권에서는 특히 더 귀했다.


이는 유생들이 본격 등장하기 시작한 이후에도, 중국의 역대 왕조들이 '음서'와 같은 제도를 유지한 까닭이었다.


유력 가문들의 자식들을 우대하지 않는다면, 지방은 물론이고 중앙에서조차 관료로 채울 수 있는 숫자가 부족했던 것이다.


고려말 등장했던 유학자, 신진사대부들은 그리하여 꼭 조선 건국이 아니었더라도 나라의 중추가 될 운명이었다.


교과서에서는 편의상 권문세족 VS 신진사대부로 세력을 가르지만, 그 구분이 명확한 것은 사실 아니었다.


예를 들자면 드라마 '원경'에서 원경왕후의 아버지인 '민제'다. 당시 여흥민씨 가문은 삼한갑족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힘 있는 권문세족이었다.


그러나 '민제'는 또한 이방원을 가르칠 정도로 학식이 깊었고, 하륜의 친구이기도 했다. 이색의 제자이자 이방원의 책사, 후에 영의정에 오른 하륜 역시 이인임의 조카사위이기도 했다.


현대사회에 와서 유학과 성리학의 이미지는 고리타분한 이미지가 없지 않지만, 당시 성리학은 경제적으로 발전되고 자유분방한 '송'나라의 기조를 본받아 진취적인 학문이었다.


강경하냐 온건하냐의 차이만 있을 뿐, 그들이 공통된 문제의식으로 고려라는 나라를 바라보았을 때, 고려에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공민왕 아래에서는 비교적 단일대오를 갖추고 있던 그들은, 개혁이 좌초하고 공민왕마저 죽자 하나둘 왕씨 왕조에 회의를 느끼기에 이른다.


완전히 새로운 나라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다. 왕조가 뒤바뀌어 땅을 재분배하고, 성리학 이념으로 국정을 운영하려 했던 이들.


정도전과 조준-과전법의 아버지이자 조선의 공동 설계자-과 같은 책사들이다.


여담으로 임진왜란을 통해 일본으로 건너 간 성리학은 각 번에서 학교를 통해 하급 사무라이들을 교육시켰고, 이는 그들을 관료로 키워 메이지 유신을 성공시킨 배경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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