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주가이드 Apr 12. 2023

고기국수는 맛있는 음식이 아니에요

제주 여행에서 많이 찾는 음식 중 하나가 고기국수가 아닐까. 돼지 육수에 밀가루 면을 넣고 삶아 돼지고기 수육을 함께 올려 먹는 고기국수는 담백한 맛에 여행자는 물론 도민도 자주 찾는 음식이다.


고기국수는 제주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 제주에서 고기국수는 오랜 역사를 가진 음식은 아니다. 고기국수의 주재료인 밀면은 1900년대 초반에 들어서야 일본인에 의해서 제주에 도입되었고, 1920년대에는 밀가루로 건면을 만드는 국수 공장이 생겨 이때부터 일반화된 음식으로 전해진다.



제주 고기국수



원래 제주에는 밀국수가 존재하지 않았다. 밀국수에 대한 기록은 1898년이 최초 기록으로 알려지는데 이 또한 제주인이 먹었던 기록이 아닌, 조선시대 말 제주로 유배 온 김윤식이 ‘국수를 만들어 지인과 나눴다’라는 기록이다. 제주에서는 여러 이유로 밀 농사를 쉽게 지을 수 없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제주인의 주곡인 보리와 농사 시기가 겹쳐서이기 때문이었다. 제주에 밀가루와 밀가루로 만든 건면이 보급된 건 일제강점기에 들어서이다.


제주 사람들은 잔치나 초상 같은 집안의 대소사가 있을 땐 항상 돼지를 도축하였고, 소중한 재료인 돼지를 허투루 쓰지 않고 알뜰하게 모든 부위를 사용하였다. 맛있는 부위는 삶은 고기 형태로 대접하고, 남은 살이 붙은 뼈와 부속물은 함께 푹 삶아 육수를 만들어냈다. 만들어진 돼지 육수에 제주의 참모자반, 먹고사리, 메밀 등을 넣고 손님에게 한 그릇씩 대접한 것이 몸국, 제주식 육개장이다. 많은 사람에게 한정된 재료로 골고루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 이런 방식으로 준비한 것이다.



제주 향토음식 몸국



제주의 참모자반은 쉽게 바다에서 구할 수 있었고, 독특한 식감과 향을 가져 제주 사람에게 중요한 식재료였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은 제주의 수산물을 착취하였고 모자반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이에 집안의 큰일을 치를 때 손님에게 내주기 위해 끓였던 몸국을 더 이상 만들지 못했다. 대신 이때 도입된 새로운 재료인 밀면을 이용한 고기국수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 것이다. 돼지 삶은 국물에 밀면을 넣고 삶아 괴기반(제주의 잔칫날 귀한 고기를 담은 특별한 반)의 수육을 얹어 먹는 형태로 시작된 고기국수가 지금은 여행자가 가장 많이 찾는 제주 토속 음식이 됐다. 어떻게 보면 지금의 고기국수는 제주의 맛있는 식문화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선택했던 음식이 지금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비빔국수로 재탄생한 고기국수



제주도엔 국수문화거리가 있다. 국가 서적 제134호로 지정된 유적 삼성혈 주변 거리이다. 이곳에 가면 많은 고기국수 전문점이 있는데 맛은 대동소이하다. 고기국수가 맛있게 먹기 위해서라기보다 함께 나눠 먹기 위해서 만들어진 음식이라는 걸 이해한다면 꼭 줄을 서는 맛집을 찾지 않더라도 이 음식의 의미는 충분히 전달될 수 있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페인 그라나다 말고 식당 그라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