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끊길 걸 예상하고 우도에 들어왔습니다. 사람들이 빠져나간 후 홀로 남아 섬의 주인 노릇을 하던 맛을 알기에 배가 끊길 걸 알면서도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왔습니다.
성산항에서 우도로 올 수 있는 뱃길은 두 곳입니다. 우도 청진항과 하우목동항. 한쪽만 너울이 생기는 경우도 있지만 풍랑주의보가 뜨는 날이면 어느 곳으로도 배가 들어올 수 없어 소가 누워서 자듯이 섬은 잠이 듭니다.
우도로 들어온 날은 날씨가 괜찮았습니다. 숙박한다고 하니 매표소에서 내일은 날씨가 좋지 않아 배가 뜨지 못할 거라고 이야기합니다. 이틀 후 나오는 일정이어서 상관없다고 하니 모레는 날씨가 괜찮을 거라 안심시켜 줍니다.
휴일의 시작이라 그런지 우도행 배에는 사람과 차가 꽉 찹니다. 성산항과 우도를 왕복하는 배에는 대부분 정원을 꽉 채워 쉴 새 없이 물살을 가릅니다. 전기 스쿠터와 자전거가 우도의 해안 길을 꽉 채웁니다. 답답하지만 우도니깐 짜증이 나지는 않습니다.
하하호호 앞을 지나갑니다. 우도 최고의 핫플레이스에는 대기 줄도 보입니다. 기다릴까? 내일 섬에는 아무도 없을 텐데 내일 오자. 내일 문을 열까? 연중무휴래. 날이 어두워지자 예보 그대로 비바람이 치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예상한 자발적 고립이라 묘한 희열이 올라옵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섬의 주인이 된 것 같습니다.
아침은 숙소에서 간단히 챙겨 먹고, 비를 뚫고 나왔습니다. 목적지는 하하호호. 혹시 문을 닫진 않았을지 걱정과 함께 차에 올라탔습니다. 어제 복잡했던 해안 길엔 아무도 보이지 않습니다. 정말 이곳엔 우리만 있습니다. 해안 길 따라 하하호호까지 천천히 차를 타고 갔습니다. 작은 섬이라 그런지 지날 때마다 파도의 방향과 세기가 모두 달랐습니다. 하하호호 앞에 도착하니 가게 문은 닫혔고, 창문을 통해 보이는 안은 어두웠습니다. 빗물에 흐려진 창문을 내려 자세히 보니 불이 켜진 듯합니다. 문을 열고 들어간 가게에서 반갑게 웃으며 영업 중이라고 알려주십니다.
하하호호는 흑돼지 버거의 원조입니다. 우도에서 시작해 13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전한 브랜드 파워를 갖고 있습니다. 방송에 여러 번 나왔던 인기 절정의 시절엔 우도를 방문한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이곳에서 버거를 먹어야 했고, 인증샷을 찍어야 했습니다. 결국 우도를 벗어나 제주 본섬에 분점이 생겼습니다. 지금은 성산일출봉 근처에 하하호호 성산점이 있습니다.
제주의 재료로 맛있는 햄버거를 만들어 제주의 맛을 느낄 수 있었던 이 가게의 버거는 스타일이 조금씩 바뀌기는 했지만 정체성은 그대로 유지 됐습니다. 우도땅콩, 구좌마늘 제주 흑돼지 등을 사용한 햄버거는 호불호 없이 누구나 좋아할 만한 맛입니다. (저는 담백한 하하호호 버거가 가장 맛있습니다.) 매일 매장에서 굽는 번은 부드럽고 촉촉한 식감에 고소한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오래된 건물을 리모델링한 매장에서는 독특한 제주만의 감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창밖을 통해 보이는 우도의 바다는 버거의 맛을 더 올려줍니다. 하하호호 우도 본점에선 맛과 풍경으로 제주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성산에서 우도로 들어오는 배가 하루종일 뜨지 않은 이 날, 하하호호에는 우리밖에 없었습니다. 마치 우리 가족을 위해 프라이빗 서비스를 제공받는 듯한 이 경험은 꽤 기분이 좋았습니다. 한없는 친절함과 아이스크림 서비스는 이곳에서의 경험을 더욱 행복하게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