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아주면 버릇 든다. 안아줄까 말까?
그럼, 이 아기는 누가 안아주나?
“오오, 아기 안아주지 마세요.”
“네~?, 우는데 안아주지 말라고요?”
“버릇 들어서 안 돼요. 우리 친정엄마도 안아주지 말랬어요.”
“버릇 든다고요?”
산후관리 첫날, 아기가 칭얼거리는 소리에 달려가 안으려고 하니 A산모가 막아섰다.
안아주면 버릇 들어서 앞으로 자기가 고생한다는 것이다.
엄마의 만류에도 우는 아기를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안아주겠다고 했더니
“저희 아이 쭉 키워주실 거 아니면 안아주지 마세요.”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했다.
앞으로 자기 아기를 키워줄 거 아니지 않느냐는 말에 어이없어서 안으려고 뻗은 손을 거두었다.
잠이 온 아기는 잔뜩 인상 쓰며 온몸을 비틀고 칭얼거리다 울음을 터트렸다.
‘잠들기 힘들어요. 제발 안아 재워주세요.’라는 신호를 계속 보냈다. 그 엄마는 아기가 보내는 간절한 신호를 무시해 버렸다.
급기야 울음이 크게 터져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운 후에야 엄마는 내 눈치를 보며 아기를 안았다.
이미 화가 난 아기는 안고 토닥여줘도 쉽사리 달래 지지 않아 젖을 물고서야 울음을 멈추고 잠에 들었다.
이렇게 하루 이틀 지나면서 아기는 감정 표현력이 늘어 더 큰 몸짓과 더 큰 울음으로 도와달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엄마는 그때마다 아기의 울음이 최고조가 되어서야 안아 재웠다.
“아기가 재워달라고 신호를 보내면 울음보가 터지기 전에 안아서 재워줍시다.”라고 말을 해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자기 생각이 옳다고 귀를 닫고 있는 이 엄마를 어떻게 설득해야 하나 내 머릿속은 그 생각으로 가득했다. 일단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부터 물어보기로 했다.
“왜 안아주면 버릇 든다고 생각하게 된 거예요?”
“조카들 다 안아줘야 잤고, 3살 된 친구 딸도 등센서였어요.”
“아 그랬군요.”
“3살 된 친구 딸은 지금도 엄마 껌딱지예요.”
“그래서 안아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안아주면 버릇 드는 거 확실해요. 같이 살던 조카도 언니 형부가 달래지 못해서 제가 안아줘야 잤어요. 난 그렇게는 못 키워요.”
“조카는 그래도 안아줄 이모가 있었는데 애는 이모도 없고 어떡하죠?”라고 하는 내 말에 잠시 머뭇거리는 눈빛이 보였다.
“아아, 그래도 안아주면 안 돼요.”라고 고개를 흔들며 말하는 엄마 마음은 쉽사리 열리지 않았다.
신생아 관리사인 내가 우는 아기를 엄마 눈치 보며 살짝살짝 안아 달래야 했다.
그렇게 며칠을 더 보낸 뒤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아기가 칭얼거리기 시작하면 쉬고 있는 엄마를 불러 울며 괴로워하는 아기 모습을 곁에서 쭉 지켜보게 했다.
아기 혼자 잠에 들지 못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있는 엄마에게 넌지시
“혹시 다른 사람에게 이 아기를 맡겼는데 울어도 안아주지 않고 이렇게 지켜보고만 있었다면 엄마 기분이 어떨 것 같아요?”하고 물었더니
“그건 좀 그럴 것 같네요.”라고 했다. 이틈을 타 잠투정하는 아기를 안아주며
“남이 하는 건 안 되고 내가 하는 건 괜찮아요?”라고 했더니 아기 엄마는 살포시 웃음 지었다.
산모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하며 “부모가 안아주지 않으면 이 아기는 누가 안아주나요?”라고 말하자
“그건 그러네요. 그래도 많이는 안아주지 마세요.”라며 닫혀있던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우여곡절 끝에 아기가 잠투정하면 바로 토닥여 주거나 안아서 재웠더니 2~3시간씩 깊게 잘 잤다.
그 후로는 아기의 큰 울음소리를 듣지 못했다. 내가 돌보는 내내 아기는 잘 먹고 잘 자고 잘 컸다.
최성애, 존 가트맨 박사의 저서《내 아이를 위한 감정코칭》에 'OECD 26개 국가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행복지수를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가 8년째 연속으로 가장 낮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에 대한 답은 부모가 아이를 사랑하는 방식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라고 서술되어 있다.
대가족 문화에서는 사람이 많다 보니 아기가 귀엽다고 서로 여기저기서 안아줬다.
할머니, 고모, 이모, 삼촌은 물론 동네 아주머니 아저씨들까지도 그랬다.
제가 고향에 가면 지금도 동네 이모 삼촌들이 서로
“너를 내가 업어 키웠다. 넌 땅에 발도 못 붙였어.”라고 경쟁하듯 말씀하신다.
그런 덕에 여러 사람 손을 타느라 땅에 내려놓을 새가 없어서 ‘버릇 든다.’라는 말이 생겨나지 않았겠는가.
이 시기의 아기는 버릇을 가르치는 교육을 할 때가 아니다. 아기가 원할 때마다 안아주고 보듬어 주어야 한다.
산모가 “조카들하고 친구 딸을 봐서 제가 알아요.”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만 알고 다른 것은 몰라요.’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남들 상황이나 말을 듣고 안다고 말하는 것은 모르는 것과 같다.
육아 전문지식을 쌓고, 경험하며 진짜 아는 것이 힘이다.
등센서는 엄마가 만든다
엄마들 사이에 ‘등센서’라는 말이 있다. 잠든 아기를 눕히기만 하면 바로 깨버리는 아기를 두고 생긴 말이다.
아기가 칭얼거리기 시작할 때 달래는 것보다 크게 울어버린 후에 달래기는 매우 어렵다.
아기는 부모가 피곤하고 몸이 아파도 전혀 개의치 않고 밥 달라 재워달라 울어댄다.
우는 아기 안고 토닥이며 집안 곳곳을 한참 걸어 다니다 보면 어깨와 다리는 물론 허리까지 아파진다.
땀도 삐질삐질 나기 시작하면 “이제 좀 그만 자라.”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겨우겨우 잠이 든 아기를 침대에 눕혀놓자마자 “앵”하고 울면 모든 기운이 몸에서 빠져나가는 기분이 든다.
1분 1초도 떨어지려 하지 않고 딱 달라붙어 있던 아기를 키워본 나는 너무나 잘 안다.
잠도 다리 뻗고 누워서 편히 자보질 못했다.
밤에 잠든 아기를 안고 있다가 아픈 허리라도 잠시 눕히려고 소파에 비스듬히 내 몸을 눕히려 들면 바로 깨어나 울었다. 이렇게 내 둘째 아들처럼 엄마를 어렵게 하는 아기는 아직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우리 둘째도 안아주고 또 안아주다 보니 2달 만에 순둥이가 됐다.
잠시도 떨어지려 하지 않은 아기를 키워본 나는 ‘등센서는 엄마가 만든다.’라는 결론이다.
아기가 원하는 만큼 안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엄마는 아기의 마음을 모른 채 ‘이만큼 안아줬으면 됐어.’라고 생각하고 아기를 내려놓는다.
엄마 품에서 충분한 안정을 찾지 못한 아기는 뉘면 깨고 또 뉘면 또 깬다.
아기가 자꾸 깨는 것은 아직 깊은 잠이 들지 않았거나 엄마 품속에서 심신 안정을 찾는 중인데,
엄마가 자꾸 떼어놓으려 하니 아기의 불안은 오히려 더 커진다. 그래서 아기는 점점 더 엄마를 꽉 붙잡는다.
‘엄마는 네가 원하면 언제든지 안아줄 거야. 네 곁에 항상 있을게.’라는 믿음을 심어주면 아기는 더 이상 엄마를 붙잡지 않는다.
이 시기에 버릇 들여야 하는 것은 통잠이다.
통잠을 자야 스트레스가 풀리고 안정을 찾아 잘 노는 아기가 된다.
자꾸 깨는 쪽잠을 만들어버리면 커가는 내내 아기는 물론 부모도 매우 힘들어진다.
유독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하는 날은 자꾸 깨게 하지 말고 푹 통잠을 잘 수 있게 더 오래 안아줘라.
엄마가 안아주면 아기 혼자 자는 잠보다 더 길게 푹 잔다.
안아줄수록 아기는 더 잘 잔다.
일반적인 신생아들은 배부르면 잠시 놀다 잠이 오면 잠투정한다. 잠투정하는 아기를 조금만 안아주면 금세 잠이 든다. 이렇게 하루 종일 먹고 자고를 반복한다. 그런데 어떤 날은 이상하리만큼 재우면 깨고 재우면 깬다.
이럴 땐 아기도 스트레스가 쌓여 예민한 상태라고 보면 된다. 엄마 뱃속에서는 아무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됐었다. 태어나 보니 모든 환경이 180도 달라져 있다.
배가 고프고, 힘껏 빨아먹어야 하고, 기저귀는 축축하고, 잠들기 어렵고, 춥고, 덥고, 배는 더부룩하고, 아프고,,, 이런 상황들이 아기도 힘들지 않겠는가? 힘들 때 아기는 엄마의 따뜻한 품 안에서 위안받고 싶은 건 당연하다.
아기가 자꾸 깨서 운다는 산모에게 “아기가 자꾸 깨면 품에 안고 2시간 정도 푹 재우세요.
그러면 아기는 원래의 컨디션으로 돌아옵니다.”라고 한 가지 방법을 알려준다.
이런 말을 해주면 믿을 수 없다고 의아해하는 표정을 짓는 엄마에게
“그러면 계속 우는 아기로 키우실 건가요? 일단 해보고 말해 주세요.”라고 다시 한번 강조한다.
이 효과를 알았거나 알게 된 산모는 아기를 필요 이상으로 많이 안아준다.
무조건 많이 안아달라는 게 아니라 아기가 안아 달라고 할 때는 언제나 안아주라는 것이다.
거듭 언급하지만 더 자야 할 아기가 자꾸 깨는 것은 ‘엄마, 나 지금은 엄마 품에 더 안겨있고 싶어요.’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안아줄 때는 힘들어도 원한만큼 안아주면 마음의 안정을 찾고, 엄마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쌓이면 아기는 순둥이가 되어있다.
아기를 안아줄까 말까를 더 이상 고민하지 마라.
‘아기는 안아줄수록 더 잘 잔다.’ 아기를 안아주고 보듬어주고 쓰다듬어 주는 것은 아기의 기분도 좋아지고 성장발육이 향상된다. 덤으로 두뇌까지 좋아지는데 안아주는 수고를 망설일 이유가 없다.
정토회, 행복학교, 즉문즉설로 유명하신 법륜스님은
“3살까지 뜨겁게 사랑해 주고 성장해 가면 뜨거웠던 사랑의 불을 천천히 하나씩 빼줘라.”라고 말씀하신다
집안 난방을 한겨울에는 쩔쩔 끓게 하고 봄이 오고 날씨가 따뜻해지면 점차 불을 줄이고 여름엔 아예 꺼야 하는 것처럼, 3살까지는 아주 뜨겁게 안아주고, 차츰 커감에 따라 스스로 할 기회를 주고, 성인이 되면 자녀를 믿고 관심을 꺼줘야 한다.
핵가족화로 단출한데, 어린 아기를 엄마·아빠가 안아주지 않으면 누가 안아주겠는가.
버릇은 말귀 알아들을 때 들이고, 우선 마음의 안정을 찾고 엄마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쌓일 때까지 많이 안아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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