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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맨 Jan 16. 2023

흰머리가 나기 시작해서 건강검진을 예약했다

너를 더 오랫동안 안아주기 위해서

이제는 어느새 말도 하고, 두 발로 서기도 때로는 우다다 뛰기도 하는 연필아, 안녕.

오랜만이야.


흰머리가 나셨네요? 하나, 둘, 셋, 넷, 다섯 개요.
이제 날 때도 됐죠.


오전에 미용실에 머리를 자르러 갔다가 담당 디자이너 선생님이 흰머리가 났다는 사실을 처음 알려줬어. 올해로 이제 삼십 대 후반이니까, 흰머리가 날 때도 됐지. 사실 나이를 먹어가는 것에 큰 슬픔이나 두려움은 없었어. 오히려 중년이 되어간다는 사실에 아빠는 조금 설레고 있었어. 아빠는 어릴 때부터 멋진 중년이 되는 게 큰 꿈이었거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를 먹어간다는 게 가끔은 놀랍거나 두려운 일이었기도 했어. 군대를 가야 했을 때, 결혼을 했을 때. 살면서 지금까지 딱 2번 그런 생각을 했고, 오늘이 3번째였단다. 흰머리가 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게 됐단 말이지.


처음 네가 세상에 온 후로 벌써 2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어. 이제 너는 스스로 밥도 먹을 줄 알고, 우유를 꺼내 마시기도 해. 냉장에 앞에 서서 요구르트를 달라고 떼를 쓰기도 한단다. 집에서는 우다다하며 뛰어다니지만, 아빠와 함께 어린이집에 등원하는 길에는 "아빠, 힘들어요. 안아주세요"라며 응석을 부리고 있단다. 아직은 아빠가 꽤 건강해서 너를 번쩍 안고 어린이집까지 바래다주고 있어. 엄마는 벌써 네가 무겁다고 하더라.


흰머리가 나기 시작했다길래, 건강검진을 신청하기로 했어. 좋아하던 술도 조금씩 줄이기 시작했단다. 아빠가 나이 드는 만큼, 너도 자라고 있다는 뜻일 테니까. 아빠도 이제 건강을 관리하기 시작해야 할 것 같아. 그래야 너를 좀 더 오랫동안 안아줄 수 있을 테니까.


어린이집에서 OO이가 밀었다는 얘기를 주말 내내 했어. 아빠는 사람을 이유 없이 미는 건 잘못된 거라고 너에게 말을 해주었어. 물론 이유가 있더라도 사람을 미는 것은 대체로 잘못된 행동일 거야. 아직 네가 거기까지는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리고 누군가 너를 계속 밀치면 아빠가 쫓아가 혼쭐을 내주겠다고 했어. 아빠는 꽤 오랫동안 너를 지켜주고 싶단다. 


새해에 아빠는 건강을 좀 더 돌볼게. 아빠 품에 안기고 싶으면 언제든 안기렴. 아빠는 아빠 품에 안긴 네 숨소리를 듣는 게 행복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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