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2-1. 햇빛을 찾아 나서는 사람

여러분은 햇빛의 아름다움에 빠져본 적이 있나요?

by 밝을 명 가르칠 훈 Feb 12. 2025

2장. 빛과 공간, 그리고 머무름의 낭만


도쿄에서 나는 햇빛을 따라 움직인다.

아침이 되면 가장 먼저 창문을 열고 햇살이 얼마나 들어오는지 확인하고,

그날의 빛깔을 가늠해본다.

때로는 투명한 은빛으로, 때로는 따스한 황금빛으로 달라지는 아침 햇살.

계절마다, 시간마다 조금씩 다른 빛의 결을 읽어내는 것이

하루의 시작이 된다.


공원에서는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빛을 따라 걸으며,

잎사귀 틈새로 떨어지는 빛방울들을 바라본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나뭇잎들이 흔들리면,

마치 빛이 춤추는 것 같다.

그 춤사위를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나도 빛의 리듬 속에 젖어들 때가 있다.


카페에서는 창가 자리를 찾아 앉는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커피잔에 반사되어 작은 무지개를 만들고,

테이블 위에 그림자 패턴을 그린다.

때로는 그 그림자가 시계처럼 움직이며

오후의 시간을 알려주기도 한다.


햇빛이 머무는 공간을 찾아다니는 것은,

마치 나만의 작은 의식처럼 반복된다.

그것은 도시 속 일상의 시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작은 마법 같은 것이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왜 이렇게 빛을 좇는 걸까?


도쿄에서 햇빛을 찾아 나서는 이유


도쿄는 높고 빽빽한 빌딩들로 가득한 도시다.

광고판의 네온사인이 밤을 환하게 밝히지만,

인위적이라는 것을 알아서 그런걸까.

어떤 뜨거운 기분이 들지는 않는다.

나는 다시 미친사람처럼 빛을 좇는다.


거리를 걷다 보면,

마치 거대한 콘크리트 숲처럼 하늘을 가리는 건물들 사이,

좁은 틈새로 햇빛이 쏟아지는 순간을 만난다.

마치 도시가 잠시 숨을 쉬는 것 같은 그 순간,

나는 걸음을 멈추고 잠시 그 자리에 서 있곤 한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가 빛을 가릴 때,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햇빛은 그야말로 눈부시다.


이곳에서는 햇빛을 제대로 받는 순간이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빛을 찾아다니게 되는지도 모른다.

빛이 희소한 만큼, 그것을 발견하는 순간의 기쁨도 더 특별해기 때문에.


카페를 가도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은

커피 메뉴가 아니라 "창가 자리가 비어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곳에서 마시는 커피는,

그냥 실내에 앉아 마시는 커피와는 완전히 다른 감각을 준다.

마치 태양과 함께 커피를 마시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빛이 잔잔히 내려앉는 테이블,

따뜻한 노란빛이 가득한 공간 속에서 마시는 커피 한 모금.

잔에서 피어오르는 김이 빛을 받아 반짝이고,

그 반짝임이 공중에서 천천히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본다.

그 순간만큼은 그저 햇살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전철을 타면,

터널을 지나 잠시 햇빛이 쏟아지는 순간을 기다린다.

그 짧은 순간,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손등을 따뜻하게 감싸면

나는 그 순간을 온전히 느끼려 한다.

마치 빛이 내 피부 속으로 스며드는 것 같은 감각,

그것은 도시의 숨가쁜 일상 속 작은 쉼표가 된다.


햇빛이 나를 비출 때,

나는 순간을 붙잡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마치 시간이 잠시 멈춘 것처럼,

그 순간만큼은 모든 것이 선명해진다.

나는 그런 세계가 좋다.


빛이 만드는 그림자의 세계


햇빛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그림자가 함께한다.

때로는 그 그림자가 만드는 풍경이

빛보다 더 아름다울 때가 있다.


오후의 긴 그림자가 거리에 드리워질 때면,

평범한 도시의 풍경도 다르게 보인다.

자전거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춤추고,

전봇대의 그림자가 건물 벽에 기하학적인 무늬를 그린다.

빛과 그림자가 만드는 이중주는

도시를 하나의 거대한 캔버스로 바꾸어놓는다.


순간을 붙잡고 싶지만, 붙잡을 수 없는 감각


하지만 햇빛은 붙잡을 수 없다.

어느 공간에서든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시간에 따라 이동하고,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는 곳으로 흘러간다.

그것은 마치 시간의 흐름을 눈으로 볼 수 있는 것 같은 경험이다.


햇빛을 좇아 공원을 걸어도,

구름이 지나가면 모든 것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 순간의 따뜻함,

빛이 닿던 자리의 온기,

모두 붙잡고 싶어도 결국 놓아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게 사라지기에

더욱 소중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는 매일 다시 햇빛을 찾는다.

매일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빛,

그것을 발견하는 즐거움은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


햇빛이 만들어주는 순간들은 늘 짧지만,

그 짧은 순간을 온전히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오히려 그 순간의 덧없음이

우리를 더 깊이 현재에 머물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빛이 있는 곳에서 머무른다는 것


햇빛이 드는 곳에 앉아 있으면,

시간이 조금 더 천천히 흐르는 것 같다.

마치 빛이 시간을 걸러내어

가장 순수한 순간만을 남기는 것처럼.


햇살이 바닥을 타고 흘러내리는 모습을 바라보거나,

창문을 통해 반짝이는 먼지를 가만히 들여다보거나,

그냥 눈을 감고 햇빛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그때의 고요함은 도시의 소음마저 달라지게 만든다.


도쿄에서는 이런 순간들이 소중하다.

이곳에서 빛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은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래서 더 애틋하게

빛이 주는 순간들을 기억하려 하는지도 모른다.


어느 카페에서는,

창가 자리에서 햇빛을 받으며 차를 마시는 할머니를 본 적이 있다.

그녀는 책을 펼쳐놓고 있었지만,

책장을 넘기지는 않았다.

그저 창밖을 바라보며,

햇빛이 비치는 순간을 천천히 즐기고 있었다.

그녀의 흰 머리카락이 빛을 받아 은빛으로 빛났다.

마치 오후의 햇살이 그녀에게 작은 왕관을 씌워준 것 같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햇빛이 주는 감각을 온전히 누리는 사람이란, 어쩌면 저런 모습이 아닐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은 순간,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만한 시간.


조급해하지 않고,

그 순간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바로 그런 시간이,

도쿄에서 내가 빛을 좇으며 찾고 있는 것이 아닐까.


빛이 만드는 기억의 순간들


때로는 특별한 햇살이 기억 속에 오래 남는다.

비 갠 뒤 구름 사이로 비치는 노을빛,

이른 아침 안개를 뚫고 들어오는 은은한 햇살,

한여름 나무 그늘 아래로 스미는 부드러운 광채.

그런 순간들은 마치 시간이 응결된 것처럼

선명하게 마음에 새겨진다.


그리고 그 빛의 기억은

우리를 특정한 순간으로 다시 데려다 준다.

마치 향기가 오래된 기억을 불러일으키듯,

빛도 그렇게 우리의 감각 속에 깊이 스며들어

시간을 넘어 우리를 어떤 순간으로 인도한다.


당신은 어떤 빛을 찾아가나요?


나는 도쿄에서 빛을 찾아 움직이는 사람이 되었다.

공원에서, 카페에서, 전철에서,

늘 빛이 있는 자리를 찾아 앉고,

그곳에서 한동안 머물며,

빛이 만들어내는 순간을 감상한다.


어쩌면 이것은

도시에서 자연을 찾아가는 작은 몸짓일지도 모른다.


당신도 그런 경험이 있을까 궁금하다.

창가에 앉아 빛을 느껴본 순간,

어느 골목길에서 따뜻한 오후의 햇살을 마주한 순간.

그때 당신의 마음은

어떤 빛깔을 담고 있었을까. 하는 물음이 떠오른다.

이전 05화 1-4. 도쿄의 밤, 골목에서 듣는 음악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