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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May 30. 2018

파란 눈동자

2016년 1월 3일

십 년도 전의 일이다. 로망띠끄란 사이트에서 로맨스 단편을 봤는데, 어머니가 프랑스인이고 아버지가 한국인인 남주가 파란 눈을 가진 세팅이었다.

오지랖녀 양파는 아 이건 아니다 싶어서 길고 긴 쪽지를 썼다. 작가님 안녕하세요 저는 냥파라고 하는데요, 작가님 글을 읽다가 말씀드릴 게 있어서 쪽지 드립니다. 남주 아버지가 한국인이고 어머니가 프랑스인이라면 절대로 눈이 파랄 수가 없거든요. 만약 남주 아버지가 혼혈이었다거나 그렇다면 가능할 수 있겠네요. 혹시라도 출판하시게 된다면 복선으로 넣으시는 거 고려하셔도...?

나 어렸으니까 좀 용서해주라 ㅋㅋ

쪽지 저렇게 보냈는데 당연히 씹혔다.


그리고 나서 2013년. 둘째를 낳았는데 눈이 파랬다. 첫째도 파랬지만 돌 지나고 색깔 변했기 때문에 별 기대 안 했다. 그런데 얘는 두 돌이 지나도 눈이 아주 정말 파랗다. 큰 애는 눈이 파랄 때도 회색이 섞인 진한 남색이었는데 얘는 그냥 하늘색으로 파아랗다. 이제 두 돌 반인데 이렇게 파랗다면 나중에 색깔이 변해도 녹색정도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파란색 -> 녹색 -> 헤이즐 -> 갈색으로 간다)

아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요.

생각해 보니까 난 생긴 건 백퍼 한국 사람이지만 피부는 하얀 편이고, 어릴 때도 머리색이 약간 갈색이라 학교 선생님들에게 염색했냐고 호통 듣곤 했다. 엄마와 이모분들도 피부가 많이 하얗고 눈 색깔도 까망보다는 약간 갈색이고 머리 색깔도 좀 연하다. 엄마 포함해서 자연 쌍꺼풀도 꽤 있고 엄마는 눈이 푹 들어갔다. 아, 글고 보니 피부도 잔주름 잘 가게 얇은 편이고 머리결도 좀 가늘고 힘이 없구나. 하여튼.

엄마한테 추궁해봤더니 -

외할머니 쪽은 원래 피부가 하얀 편이었는데 더 중요한 건.

외할아버지의 아버지, 그러니까 외 증조할아버지?? 되시는 분이, 키가 크고 얼굴이 좁고 코가 크고 눈 색깔도 까만색이 아닌 회색/갈색, 피부는 하얗고 해서 회회교 사람처럼 생겼다는 소리를 가끔 들으셨다네. 회회교가 뭔가 해서 찾아보니 예전에는 이슬람교를 회회교라도 불렀단다.

아랍 쪽이라면 피부가 까만 편이었을 텐데 하얬다니 좀 수상하긴 하다. 외할아버지가 1920년대 생이시니까 증조할아버지는 1890년도 생이시라 치고, 백퍼 한국 분이셨다니까 증조할아버지의 아버지가 외국인이었다 치면 1860~1870년도 생이 된다. 포항 근처가 고향이셨다던데 그러면 일본에 외국인들이 드글드글한 시절에 가까운 한국의 항구... 뭐 대략 그림이 그려진다. 외국인 1이 포항에 왔든지 아니면 외국인 1과 관계를 가졌던 여성이 포항에 왔던지 해서 증조할아버지가 포항에서 자라시고, 그 아래에 할아버지가 일본에서 태어난 할머니와 결혼하시고, 그 아래로 어머니 남매분들, 그 아래 나. 파란 눈 유전자가 어디 숨어 있긴 있었나 보다. 신랑은 아버지가 파란 눈에 금발이셨고 어머니는 갈색 눈에 갈색 머리색이었지만 어머니의 부모님 쪽은 파란 눈과 금발 많았다니까 그 쪽 유전자 다분 (신랑 눈은 녹색, 머리는 까맣지만 수많은 백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태어날 때는블론드에 파란 눈이었다).

물론 이 모든 건 만두양 세 살 돼서 눈 색깔 바뀌면 도루묵 ㅋ


또 재밌는 건, 난 장사를 잘 하는 건 아니지만 돈 관리엔 좀 예민하고 장사 쪽에 관심은 있는데 어머니 형제분들이 다 그렇고, 외할아버지도 그러셨고 (장사 크게 하셨음), 증조할아버지도 도박을 좀 즐겨하셔서 그렇지 (...) 무역업 하셨다고. 만약 정말 선조 중에 일본까지 기어 온 외국인이 있다면 그 사람도 좀 방랑벽 내지 역마살도 있고, 거기서도 오지 말라는 쇄국정책 한국까지 악쓰고 들어왔다면 장사꾼이었을 가능성 꽤 있겠다. 외할아버지는 증조할아버지가 도박으로 재산 말아먹어서 학교도 안 보내준다고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가셨고, 뭐 엄마도 아빠 따라서라지만 전국을 이사 다니다가 남아공까지 가고, 지금은 필리핀 가보시더니 좋다고 홀랑 떠나시고. 나 역시 이사나 이민 샥샥 잘 다니고.

신랑 쪽도 그렇다. 신랑 외증조할머니가 성이 Coventry였는데, 19세기 영국에서 남자 만나서 사랑의 야반도주를 무려 남아공까지 했던 간 큰 신식 여성!! 친가도 뭐 어쨌든 아프리칸스 사람들은 네덜란드/독일/프랑스 등등에서 자기 나라 버리고 아프리카까지 온 정착민들이고, 아프리카 온 다음에도 영국인들 피해서 2천 킬로미터 내륙 요하네스버그까지 짐 끌고 전쟁하면서 기어 올라간 사람들이라 생활력은 만렙이다. 둘 다 역마살 많이 낀 집안이고, 장사해서 먹고 산 사람들 많고, 뭐 그런 것 같다는 말.


그러나 결론은.

만두양 세 살 돼서 눈 색깔 바뀌면 도루묵!! (세 살까지 눈 색깔 안 바뀌면 그냥 그대로 갈 가능성 크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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