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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Jun 01. 2018

난 튼튼한 여자다

2016년 4월 24일

난 튼튼한 여자다.

남자처럼 힘이 세고 그런 건 아닌데 적당히 체력 좋고 적당히 에너지 넘치고 적당히 제 몸 사리면서 관리하다 보니 몸이 아파서 힘들어서 우는 소리 하는 일은 잘 없다.


냉장고를 새로 샀다. 7년 전에 사서 이사 할 때마다 끌고 다녔던 냉장고와, 지금 이 집에 원래 있었던 붙박이 냉장고 두 개를 같이 쓰다가 드디어 둘 다 처리하고 큰 거 하나로 대신 하기로 했다.

배달은 왔는데 문제. 냉장고 문을 떼지 않으면 현관도 못 통과다. 부엌은 2층이다. 배달해주는 사람들은 이건 자기네가 할 수 없다고 내뺐다.  

양파와 남편은 우선 냉장고 문을 분해하고, 안의 물건을 다 꺼내고, 고등학교 물리 실력을 총동원하여 어떻게 2층으로 올릴 것인가 연구 계획을 한 다음에, 114킬로그램(마이너스 문 두 개)의 양문 냉장고를 2층으로, 그것도 180도 회전이 있는 계단을 올라가야 나오는 2층으로 옮겼다. 내가 하비 체질이라 다리가 굵은데, 그동안 쌓아온 데드리프트 실력으로 어찌 어찌 됐다. 물론 남편도 정통 아프리칸스 농부의 후손으로 평소 운동 안 해도 황소 힘이다. 불행하게도 우리 딸내미는 엄마 아빠의 떡대와 다리를 닮았다.

어쨌든.

냉장고 둘이서 올렸다. 죽을 뻔했다. 그러나 나는 적당히 에너지가 넘치는 여자고 냉장고 설치는 오후 두 시에 다 끝났다. 그래서 점심 해서 다 먹고, 그 동안 냉장고가 차가워져서 정리하고 나니까..

붙박이 냉장고가 있던 자리가 휑하니 비었네?

적당히 체력좋은 양파는 붙박이 냉장고 들어가 있던 자리에 선반 해 넣을 계획을 세우고 남편을 하드웨어 가게에 선반 사이즈 대로 사 오라고 보내고 저녁에 잠깐 손님이 오니 밥해서 같이 먹고 얘기하고 놀다가..

저녁에 밀린 직장일 하겠다고 외면하는 남편 대신에 붙박이장 뒤에 플라스터 보드 해 넣고, 석회로 틈 메꾸고, 나무 잘라서 선반 해 넣었다. 적당히 똑똑한 양파는 톱질 드릴질 뭐 등등 적당히 잘 한다(circular saw 도 있는데 그건 남편이 안 준다).


어릴 땐 공부하다가 코피 터지는, 하늘하늘한 여자애들이 제일 부러웠다. 샤프로 콧속을 찔러봤는데 코피 안 났던 슬픈 기억이 있다. 난 애 낳고 딱히 산후조리 안했는데도 아주 튼튼했다(물론 친정 어머니가 산후조리원 뺨치는 케어 백퍼 해주셨지만, 밖에 안 나가고 샤워 안 하고 이런 건 안 했다). 두 번째 아이는 제왕절개로 낳고 2주 만에 직장 복귀했는데 전혀 건강에 문제없다. 나 사실 둘째 낳고는 한여름에 덥고 열이 많이 나서 찬물 샤워까지 했다. 아이스크림도 막막 먹어주고.

지금 현재 애 낳았을 때 빼고 최고 몸무게 기록 중인데...

뭐 어쨌든 일 잘하고 에너지 빠방하니 좋다고 보자 ㅠ.ㅠ 아 그래도 이 허벅지는 어쩔겨.

저도 가냘픈 여자가 되고 싶을 때가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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