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15일
어렸을 때 말이 빠르다든지, 글 읽는 게 빠르다든지, 뭐 이런 걸로 상당히 기뻐하는 부모들이 많다. 두 돌인데 벌써 말을 조리 있게 잘 한다!! 하지만 남들의 반응은 한결같다.
who gives a shit? 그래서 어쩌라고.
거의 99.99%의 아이들은 늦어도 다섯 돌이면 말 한다. 글도 웬만하면 다 읽는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다른 애들보다 좀 더 앞서가면 드는 생각이 있다.
우리 애가 천재가 아닐까??
이 때 부모들이 잊기 쉬운 것이, 아인슈타인이 유명한 건 똑똑해서가 아니다. 상대성 법칙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아이작 뉴턴이 유명한 것 역시 똑똑해서가 아니라, 중력 이론 때문이다. 인간 역사에, 아무것도 이루지 않았지만 '똑똑한 것' 하나로 유명해지고 존경받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뭔가를 이루어서 대단한 사람인데 그런 사람은 역시 엄청나게 똑똑했고, 어렸을 때부터 뭔가 달랐다는 그런 흥밋거리 이야기가 따라오긴 한다.
그러니까 어린아이가 똑똑하다 하면 오, 이 아이가 커서 뭔가 대단한 걸 하지 않을까?? 란 기대 때문에 그 아이를 띄워주는 것인데, 여섯 살에 벌써 중학교 수학을 한다?
Who gives a shit? 어쩌라고?
그래서 사회에 생산적인 뭔가를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애기가 세 돌이 아닌 두 돌에 기저귀 뗀다고 해서 뭔가 사회에 도움이 되는 기술을 획득한 게 아니듯이, 여섯 살에 수학 문제 좀 어려운 거 푼다고 해서 엔지니어로 일 할 수 있는 거 아니다. 꼭 우기자면 공부방에서 다른 아이들 수학 가르치는 정도의 기술은 기여할 수 있겠다.
똑똑한 아이가 열두 살에 대학교 들어가서 열여섯 살에 졸업했다고 하자. 사실 고용주 입장에서는 이런 애보다 그냥 정상적인 시스템 통해서 나온 스물다섯 살 졸업생이 낫다. 어린 졸업생은 좀 더 뭔가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우길 수 있겠지만, 지금 당장 내가 필요한 사람은 신입 사원이고, 그건 어느 정도 철 들었고 다른 팀원들과 인생 경험이 비슷해서 잘 어울릴 수 있는 이십 대 중후반(군필 남자!)애가 낫거든.
아무리 애가 똑똑하다고 해도, 이십 대 전에 진짜 정말 사회가 필요로 하는(== 월급 받을 만한) 기술을 갖추기는 힘들다. 그리고 그럴 필요도 없다. 이십대에 박사를 따든, 서른다섯에 따든, 결국 얻은 것은 차고 넘치는 박사학위. 어린 나이에 딴 것이 대단하긴 하지만, 그것 자체로는 시장가치가 별로 없다.
옆집 아이가 피아노를 뚱땅거린다. 그걸 듣는 대가로 내가 돈을 낼까? 택도 없다. 세상에 훌륭한 피아니스트들이 그리 많은데도 내 돈 주고 사는 음반은 극소수다. 그러나 그 훌륭한 피아니스트들도 아주아주 오랜 시간동안 뚱땅거렸을 것이다. 그 노력을 생각해서 돈 내놔 하면 당신은 과연 돈 줄 생각이 있을까? 아니죠. 내 취향이 아닐 수도 있고, 내 취향이라도 구입의 목적이 파티용 음악이라서 안 살 수도 있다. 내가 필요로 하고 원하는 것에 돈을 내는 것이다.
옆집 아이가 3학년인데 5학년 수학을 한다. 아주 열심히 공부한다. 내가 걔한테 매달 성적에 따라 용돈을 줄까? 내가 왜? 흠. 그럼 중학교 1학년 수학은? 아, 이러면 아주 조금 더 나에게 유용해지는데, ‘우리 옆집 애가 공부를 엄청 잘한다’라는 정도의 가십 아이템을 주위 엄마들에게 제공해줄 수 있겠다. 그 이상은 없다. 만약 내가 그 나이 또래 아이가 있다면 훨씬 더 유용가치가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극소수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몇 년 앞서가는 옆집 애보다는, 친정이 시골에서 과수원 해서 과일을 맨날 박스째로 얻어오고 나눠주는 동네 아줌마가 훨씬 더 나에게 유용하다 (…)
그렇다면 천재 아이가 사회 전체에게 상업적으로 유용한 케이스는 딱 하나다. 뉴스거리. 사람들이 알고 싶어 하는, 내 아이와 비교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뉴스를 만들어내면 그 대가로 시청자를 얻고, 그것을 담보로 광고를 파는 시스템이니까 언론 종사하지 않은 개인의 입장에서는 뉴스를 이용해서 돈을 벌기가 상당히 힘들다. 화성인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사람들 생각하시면 될 듯. 그것도 사실 반짝하고 끝이다.
사회 전반에서 상업적으로는 천재, 혹은 영재 아이보다 그냥 보통 명문대 나와서 군대 마치고 회사에 충성할 준비 완료된 20대 중반 신체 건강한 남자가 훨씬 유용하다. 수요가 많다. 열 살에 대학교에 입학할만한 똑똑한 애는, 사회 비용 면에 있어서는 심각한 장애등급과 별로 다르지 않다. 그 애가 심심해하지 않도록 다른 교과 내용을 준비해주고, 선생님을 붙여주고 해야 할 국가적 필요는 별로 없다. 의외로 영재(부모는 천재로 보는 애들)은 아주 많고, 그 애들이 다 커서 사회에 크게 기여하기보다는, 정상적인 시스템을 통해 잘 하는 애들 속에서 성공 케이스가 훨씬 많다. 실제로 국가적인 입장에서 보면, 성공 가능성이 50% 인 천 명의 아이들보다는(500명), 성공 가능성이 5% 인 백만 명 아이들에게 투자하는 편이 훨씬 더 이득이다(5만 명). 당연한 얘기지만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투자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기도 하다.
공부 잘 하는 천재라는 아이들은 보통 과학, 수학 쪽으로 많이 가는데, 이 부분은 특히나 투자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 인류 전체는 아인슈타인의 이론으로 이득을 볼지 몰라도 당장 투자해야 하는, 돈 쓰는 사람에게는 직접적인 이득이 별로 없을 가능성이 높다 (학계로 들어간다든지 하면). 사회적으로 좋은 직업을 가진다 해도, 열다섯에 의사가 되나 서른에 의사가 되나 의사는 의사다. 똑똑하다고 다 유지되는 거 아니고, 유지된다고 해서 원하는 인재로 딱딱 맞춤 생산되는 게 아니고, 된다고 해서 본인 이외에는 딱히 이득 보는 사람도 별로 없다 보니 이 길은 힘들 수밖에 없다. 어릴 때부터 천재 소리를 들은 아이들은 주위의 기대 때문에 오히려 아예 포기하기도 하고, 주위 아이들과 잘 못 어울려서 사회성 취득에 실패하는 케이스도 많다.
실제로 개인에게나 사회에게나 제일 유용한 것은 ‘필요한 기술이나 지식을 오랜 시간 동안 습득했고 직장 생활 쉽게 적응하는 사람’ 혹은 '나에게 이득이 되는 기술이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나이 들어서 보면 볼수록 느끼지만, 머리 좋다고 갑질은 학교에서 끝이다. 체계적으로 가르쳐주고, 뭘 공부해야 하는지 확실하고, 어떻게 성공해야 하는지도 쫙 펼쳐져 있는 것도 그 때가 끝이다. 진짜 세계에 나오면, 당신이 얼마나 머리 좋은지 별 관심 없다. What do you have? What can you do for me? What can you do? 이런 질문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스티브 잡스처럼 뛰어나다면, 나를 원하는 사람을 찾기보다는, 내가 만든 것을 세상이 원한다고 믿게 만들 수 있겠으나 이건 진짜 희귀한 케이스니까 스킵하고, 우린 결국 돈 벌고 먹고 살려면 다른 이들이 원하는 것을 해줘야 돈과 교환할 수 있다. 기술이든지, 지식이든지, 아님 그냥 노동력만이라도. 교환하기 힘들수록 그 대가가 올라간다. 사람을 구하기 힘들면 연봉이 올라가고, 직장을 구하기 힘들면 입사 요구사항이 어려워진다.
요즘 내 주위에 보면, 같이 일하던 친구들 중에 자기 사업 시작한 친구들도 많고, 스타트업 들어가서 대박친 친구들도 많다. 난 어렸을 때 사업을 안 해봐서, 그리고 겁이 많아서, 그냥 안전빵 기술직으로만 파고들었다. 그리고 요즘엔 생각한다. 내가 열 살에, 다른 애들 피아노 뚱땅거릴 때 사업 뚱땅거렸다면, 그래서 몇 번 말아먹고 경험을 쌓았다면, 똑같이 일하고도 훨씬 대박 쳤을 텐데 말입니다.
그래서 ㅡㅡ
내 아이가 똑똑하다면, 월반을 시키느니 성향 잘 봐서 살아가는데 유용한 기술을 가르치겠다. 코딩을 가르쳐도 되고, 글쓰기를 가르쳐도 좋고, 운동은 꼭 하나 시키고 싶고, 요리시키고 싶고, 집 앞에서 음료수 파는 장사라도 차리도록 하고 싶다. 학교 공부 열심히 하는 것은 미래의 몸값 거래를 대비한 준비지만, 진짜 공부 좋아하는 사람 몇 빼고는 오히려 좋아하는 기술이나 분야에서 일찌감치 경험과 경력을 쌓아두는 것은 ‘나’를 위주로 한 더 확실한 준비라고 생각해서이다.
물론 이건, 어렸을 때부터 머리 좋다고 칭찬받았으나 20대에 방황할 거 엄청 하고 월급쟁이로 안착한 제 쓰라린 경험을 바탕으로 한……. ㅜㅜ who gives a shit 이론. 머리 좋아도 하나 소용없습니다. 결국은 뭘 배워서 뭘 할 수 있느냐, 얼마나 적당하게 필요한 사람인가 중요.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