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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Jun 07. 2018

한국 여자 공대 안 가서 월급 적단 소리 또 들어서

2017년 1월 7일

한국 여자는 공대 안 가서 월급 못 받는다는 소리를 또 들어서.     

이 질문을 영국에서도 할 수 있다. 왜 영국 애들은 공대에 안 가냐?? 영국의 실업 문제는 공대를 안 가서이다!!     

이게 맞는 말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공대가 취업 잘 되는 건 맞는데, 그렇다고 다른 직업이 취업 안 되냐, 돈 못 버냐 하면 그건 아니었거든. 그리고 나라마다 '잘 나가는 직업'은 다르다. 

영국에서 제일 잘 버는 직업이라 하면, 사실 지금까지도 단연코 금융 쪽이다. 다 잘 버는 건 아니고 평균 연봉도 따지면 그리 높진 않지만, 잘 버는 애들이 너무 미친 듯이 잘 벌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1위다. 한국에서 그냥 사원이 일 년에 몇십 억 번다하면 뉴스거리겠지만 런던 시티에서 (런던 도시가 아니라, City of London이라고 런던 내에 1mile square 작은 지역이 있다) 잘 번다고 하면 10억 정도는 흔하다. 와아 걔 누구야 누구 할 정도 아니다. 일 년에 백억 벌었다 하면 자기네끼리는 대강 알음알음으로 수군거리는 정도란다. 몇십 억, 몇백 억 연간 수입에는 의대, 공대 다 메리트 별로 없다. 그리고 지금이야 완전히 분위기 다르다고 하지만 수십 년 영국의 명문대 출신들은 인문학 학사 하나만 가지고도 큰 은행의 싱가포르 지사 고급 간부 정도는 쉽게 쉽게 갔다고 한다. 하기야 대영제국 시절에도 장교 정도만 되도 전 세계 어디라도 가서 한자리 하기 쉬웠다. 금융계가 세고 상경계가 이렇게 세니까 꼭 취업하려고 공대 갈 필요가 없었다.     


사실 법 쪽도 의대보다 센 거 같은데 - 편차가 크긴 하지만 법대 간 똑똑한 애들 버는 것도 ㅎㄷㄷ하다. 열심히 해서 파트너라도 땄다 하면 금융계 보너스도 안 부러울 수 있겠다. 금융의 중심이고 그 외 웬만한 세계적인 대기업이 런던에는 베이스가 있다 보니까 법, 회계, 감사 등등의 기업 서비스 사이즈가 장난이 아니다(참고로 브렉시트로 다 폭삭 망할 거다). 변호사라고 다 잘 버는 건 당연히 아니지만, 잘 버는 사람 정말 많다. 의대도 당연히 잘 벌긴 한데 미국 레벨은 절대 아니고, NHS에서 일하는 공무원이다 보니까 그에 따른 문제도 많다. 사회의 암적인 존재 취급받는 금융계나 정의의 사도로는 보지 않는 변호사보다 훨씬 더 사회의 인정을 받는다는 이점이 있으나 또 그만큼 노동력 갈아 넣기도 한다. 국가에서 운영하다 보니까 의사가 돈을 밝힌다는 건 아주 안 좋게 보기도 한다.     


자, 영국에서 자란 내 아이들이 사회에서 크게 성공하고 싶다면 어떤 전공을 원할까. 돈을 많이 벌고 싶다면 늘 주위에서 보아온 금융 쪽을 탐낼 수 있겠고 아니면 법. 뭔가 사회적으로 공헌도 되는 일이라면 의대. 역시 안정적이고 연봉 좋은 회계사. 만약 돈 버는 게 아니라 예술 쪽에 관심이 있다면? 영국에서 방송 사업은 전 세계 상대다 보니까 덩치도 크다. 미디어/방송 쪽에서 일하고 싶다는 건 취업에 관심 없는 문과생의 허황한 꿈이 절대로 아니었다. 세계적인 광고회사, 디자인 회사도 영국에 많다. 건축 쪽도 큰 회사 많다. 관심 있는 분야가 뭐든 간에 들어가서 일할 만한 자리가 있었다. 그러니 이공계에 관심이 있다면 물론 공부할 수 있겠지만 '취업하고 싶어서', '돈 벌고 싶어서'는 뭐 별로.   

  

그런 문화에서 자란 아이들이 경기 불황을 맞았다. 졸업하면 취업이 힘들다고 한다. 하지만 경기는 좋다가도 나쁜 거라 하고, 주위에서 보아온 예를 보면 뭐 조금 힘들더라도 약간 눈높이 낮춰서 일하다 보면 어찌어찌 잘 풀린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냥 평소에 관심 있었던 분야를 택한다. 근자감 넘치는 십 대 애들이 경기 조금 힘들다고 겁먹어서 무조건 공대 넣을 리는 없었다. 어차피 공대가 압도적으로 전망 있는 분야도 아니었고.     

그렇다 보니 IT 팀은 정말 영국인 퍼센티지가 낮다. 우리 팀에서는 3년간 한 명도 없다가 이제 두세 명이다. 남편의 금융IT 쪽은 그래도 영국인 비율이 좀 더 높았다. 50% 이상인 곳도 보였다. 최근엔 영국에서도 청년 실업으로 말이 많은데 그때마다 나오는 말 있다. 왜 공대 안 가냐. 공대 가면 취업 된다. 컴사 공부해라. 니네가 공대 안 가고 인문계 가서 취업 안 되는 거다.     

이건 그냥 게으른 사고방식 같다. 난 더 이상 생각하기 싫고, 공대 안 간 건 너 잘못이니까 그냥 그게 이유라고 치고 넘어가자 정도.     


십몇 년 동안 블로그 하면서 한국 탑 공대 나온 여자분들하고 만나고 얘기할 기회가 상당히 많았다. 그러면서 들은 바로는 임금 차가 한국 여자들의 인문학 선호 때문이라는 건 뭐 대략 아무말. '한국 여자에게' 공대 졸업 후 취업이 쉬운지(안 쉽다), 이공계에서 차별이 적은지(안 적다. 더 크다), 아이 낳고 버티기 쉬운지(안 쉽다) 등등은 무시하고, 이공계보다는 취업 더 쉽고 차별 덜하고 아이 낳고 복귀 가능한 의대, 약대, 공무원, 교대 등을 택하게 되는 분위기와, 어차피 여자는 잘나 봐야 별 볼 일 없고 시집만 잘 가면 된다는 식의 부모/사회의 영향과, 롤모델 전무와, 여자 공대생보다는 걸그룹이 훨씬 더 추대 \받는 사회, 신붓감으로 공대녀가 더 환영받지 않는 거 다 모른 척하고 무조건 "남녀 수입 차이는 공대 안가서임 왜냐면 내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QED" 이런 무식한 소리 하지 말죠.     


덧. 

한국 여자분들 해외 공대 가세요. 여자면 가산점 있습니다. 보장합니다. 취업했는데 실력 있다면 회사에서 엄청나게 밀어줍니다. 좋은 회사 가세요. 임신한 여자를 감히 자를 간 큰 대기업 별로 없어요. 다른 건 몰라도 공대는, 여자 은, 탈한국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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