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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Jun 09. 2018

청소년 무시에 대해

2017년 2월 28일

이민가정에서 영어를 할 줄 아는 아이는 특수한 역할을 맡게 된다. 영어가 불편한 부모님을 대신해서 그 나이에 걸맞지 않는 상황에 자주 처하다 보니 그렇다. 난 고등학교 졸업하기 전에 집 사고 팔기, 차 사고팔기, 경찰서에서 이런저런 일 해결하기, 아이를 학교에 넣기, 세일즈 뛰기, 계약서 보기 등등을 다 해봤다. 그래서 한국 교민 수가 아주 작았던 동네에서 나는 어른들이 내 말을 경청하는 데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인터넷에서 한국의 어떤 신문사 게시판에서 논쟁이 붙었다. 그때 난 고딩으로 영어, 프랑스어, 아프리칸스, 라틴어를 한참 공부하던 때라 언어에 무척 관심이 많았다. 지금같이 병든 닭같지 않고 (...) 의욕으로 철철 넘치던 때였다. 영어 배우기에 대한 토론이었는데 나는 언어 학습 이론에 대해서 엄청 길게 글을 썼다가 고등학생이라는 이유로 무시당했다. 그 전까지는 열 올리며 토론하던 사람들이 "아 너 고딩이었어?? 하이고 대견하다. 공부 열심히 해라." 면서 아예 더 이상 상대를 안 하는 것이다. 한국말로 이런 상황에 딱 맞는 단어가 뭔지 모르겠는데 영어로는 patronizing. 어이구 그래 우쭈쭈 잘했어 내가 봐줄게 하는 그런 느낌이다. 그 순간 얼마나 빡치던지 컴퓨터 다 때려 부수고 싶었다. 어른에게 무시당하는 경험이 별로 없었기에 더했다. 니가 뭔데, 나보다 더 잘 아는 거 아니면서, 니가 나이 좀 많다고 지금 나 인간 취급 안 하는 거야?? 라면서 분노했다.

     

...시간은 흐르고 나는 중년의 아줌마가 되었다. 그때보다 아는 게 더 많냐고 하면 뭐 그런 부분도 있고 아닌 부분도 있고. 언어 습득에 대해서는 솔직히 그때가 더 낫지 않았나 싶다. 열정으로 넘쳐서 라틴어 그렇게 공부했는데 이젠 amo amas amat 외엔 기억 안 난다. 삶에 대해 좀 더 지혜로워졌냐 묻는다면, 뭐 그런 부분도 있고 아닌 부분도 있고. 그 때의 치기와 에너지가 어떻게 변하는지는 지금 더 잘 알고, 하지만 그때의 느낌과 사고방식은 또 잃었다.     

설명충의 대표적인 예로서, 청소년 무시 얘기 나오면 찔끔한다. 나도 한때 그렇게 열 받아 했지만, 지금은 아마 내가 그렇게 싫어하던 어른의 모습이 꽤 있을 거다. 내 자신이 나를 어른스럽지 못하다고 많이 느끼고, 20대에 많이 방황했다보니 다들 나보다 더 훨씬 야무지게 준비하고 살아가는 거 같아서 자격지심에 내놓고 꼰대질은 좀 힘들지만.     

아주 적나라하게는, 우리 팀에 새로 들어오는 신입들 22, 23 이렇다 (...). 근데 일 무지 잘함. 머리 팽팽 돌아감. 얘네들의 제일 큰 단점은 나에게 자괴감을 준다는 것. 나보다 훨씬 더 지 앞가림 잘 하고 어른스러운 애들이라 꼰대질 시동도 걸기 힘들다는. 

   

내 환경과 사정에 많이 제한되는 게임판에서 내 선택으로 살아온 내 인생이라, 내가 겪은 것에 대해서만 잘 안다. 20대 초반에 일찍 결혼해서 난 연애에 대해서 잘 모르고, 싱글로 사는 삶이 어떤지 모르고, 학계의 삶, 예술인의 삶, 그 외의 수백 수천 수만 가지의 인생 방법에 대해서 모른다. But you can't live all lives. 모든 삶을 살 수는 없지. 내가 택한 삶, 그리고 그 택한 삶 내에서 만나는, 주로 나와 비슷한 사람들의 삶을 볼 뿐. 책이나 신문 등으로 간접적으로 접하는 삶에 대해서는 나보다 아마 직접 겪는 그들이 훨씬 더 잘 알겠지.    

 

....그리하여!!! (드디어 본론!!) 지금까지 발현하지 못한 꼰대력을!!! 일곱 살 아들에게 겨우 포텐 오픈하고 있다!!!     


"나는 말야!! 니 나이에 말야!! 음식이 없어서 못 먹었어!! 참치가 얼마나 귀했는지 알아!!!?? 내가 말야!! 아프리카에서 자라면서 (<-- 이거 엄청나게 울궈먹을 계획. 아프리카에서 20년 썩었는데 최대한 써먹어야 덜 분함)!!"     


...그러나 과하게 밀어붙이다간 아드님과의 관계가 급속히 냉각될 것 같아 아끼는 중. 여러분 나이 들면서 꼰대질이 삶의 큰 즐거움이 될 수도 있는 거 아는데요, 반격이 거세더라고요. 오늘 아침에도 아들한테 당했어요. 


"난 아프리카 가서 안 살 거니까 괜찮아. 엄마 가서 살아. (싱긋)" 


이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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