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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Jun 10. 2018

히든 피겨스를 보고 - 완벽하지 않은 약자의 딜레마

2017년 3월 26일

영화는 재미있었다. 

그러나 차별을 얘기하는 영화는 늘 좀 보는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 이렇게 똑똑하고 도덕적으로 훌륭한 사회적 약자 그룹에게 이렇게 못됐게 대하고 길을 막는 주류 못된 인간들을 보라...는 세팅이 보통인데, 아무래도 보는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내기 위해서겠지만 넘사벽의 완벽한 모델 피해자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영화에 나오는 여자들은 무려 나사의 과학자 백인 남자들 따귀 후려칠 만큼 똑똑하다. 열일하고, 도덕적이며, 지혜롭게 역경을 이겨나가면서 당당하다. 흠잡을 데가 없다. 미디어에서 늘 보이는 단계이긴 하나 - 사회적으로 차별받는 이들을 '띄워주는' 시기가 오면, 이전에는 소모적이고 스테레오타입 가득한 역할로만 캐스팅하다가 확 반대로 돌아간다. 이전에는 그저 섹시한 백치미 액세서리로 나오던 여성은 급반대로 지성과 인성이 완벽한 캐릭으로 등장하며, 흑인들도 마약상 혹은 강력범죄자로 나오다가 갑자기 엄청나게 훌륭한 인격의 군인, 천재 과학자 등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이런 사람들을 왜 억압해애애애!!' 가 들릴 정도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그런가? 나는 히든 피겨스에 나오는 존잘 여성들이 그저 부러운 1인이다. 기회만 주어진다면 5분 만에 모든 사람들 납득시킬 정도로 똑똑한 먼치킨 캐릭이 아니고, 엄청나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도 아니고,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해서 법정에 가거나 대들고 싸우거나 할 능력은 없다. 여자도 남자와 똑같이 찌질한 사람 많고 게으른 사람 많고 나 역시 그중 한 명인데, 알파걸들이 이렇게 엄청나게 훌륭한데도 그보다 못난 남자들보다 차별을 받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아 난 알파걸... 정도는 아닌데, 그리 야망 있지도 않은데, 내 주위 남자들도 뭐 그리 못난 사람들은 아닌데, 저렇게 뛰어나야 인정받나 싶고, 난 좀 해당 안 되는 거 같은 쎄한 느낌이 든다.

     

최근에 '페미들이 싸우려면 도덕적으로 완벽해야' 어쩌고 하는 댓글을 봤다. 아니 왜? 성폭행 피해자가 '피해자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공격당하듯이, 여성 인권얘기를 하는데 '너네는 그런데 권리 찾을 자격이 있냐'부터 말한다. 사실 이건 페미 쪽에서도 마찬가지다. 남자에게 기대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자는 슬로건이 좀 오버하면 당당하지 못한 여자, 능력 없는 여자, 돈 잘 못 버는 여자, 사랑받아서 좋은 여자 까기가 되어버린다.     

우리 다 골드미스가 되어서, 그러니까 '모델 소수자'가 되어야 배려 받을 자격이 있다는 건 좀 아니지 않나. 난 그냥 보통 사람이고 적당히 게으르고 적당히 찌질한데, 나 그 정도밖에 안 되는데, 그냥 어중간한 여자라도 어중간한 남자와 비슷하게, 성별에 대해 별 생각 없이 살 수 있는 게 페미니즘이 바라는 목적지 아닌가효. 꼭 존잘 여자들 내세워서 '이런 여자들 탄압하지마!' 해야 하나.     


글 시작만 했다가 마무리 못 지은 글이 이걸로 다섯 개라서 이건 그냥 올립니다 -_-     


존잘 여성들에 기가 눌려서 이렇게 투덜투덜해놨지만 영화는 재미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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