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26일
난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끝냈다. 아버지가 군인이셔서 늘 군인아파트에 살았다. 객관적으로 보면 확실히 부자는 아니었다. 내가 자랄 때는 아이패드도 없었고 개인 PC, 전화기도 당연히 없었다. 초등학교 시절 어느 날 아버지 친구집에 늦은 시간에 도착해서 그 집 아주머니가 밥과 참치를 내주셨는데 정말 너무 맛있어서 생각했었다. 와, 원 없이 참치 캔 먹고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땐 바나나도 귀했고 피자도 귀했고 좋은 레스토랑에서 먹었다 하면 돈가스였다. 우리 반에서 '잘 사는 애' 하면 이층 단독주택 살고 구두 신고 집에 피아노랑 자가용 있는 애였는데, 우리 집도 피아노를 샀고 내가 초등학교 다닐 즈음에는 아빠가 자동차도 사셨으므로 난 우리 집이 그래도 잘 사는 줄 알았다. 용돈이라고 해봐야 몇백 원 가끔가다 받아서 백 원 과자 사 먹고 했는데 동네 애들 다 비슷비슷했다. 외국에서 살다 온 애 딱 한 명 봤고, 비슷한 사정의 동네 사람들끼리 왕래도 아주 많았다. 부모님한테 얘기하고 허락받고 그런 거 없이 그냥 동네 친구애 집 아무데나 가서 놀고 그랬다. 어차피 군인 아파트라 다 구조 똑같고 사는 것도 거기서 거기였다. 옷 브랜드라 해봐야 조다쉬, 뱅뱅 뭐 이런 거였다. 해외 브랜드 들어오기 시작했던 거 같긴 한데 난 워낙 그런데 둔하기도 해서 잘 몰랐다.
그러니까 따지자면 지금보다 훨 가난했던 거 맞다. 부모님은 비싼 학원이나 과외를 시켜줄 여유가 없었지만 뭐 동네 애들도 같았다. 남아공 와서도 그랬다. 다 교복 입는데다 사는 거 다 비슷비슷해서 크게 내가 못 산다는 생각은 안 해봤다. 첫 직장에서 월급 50만 원 정도 받았는데 레알 이 큰돈으로 내가 뭘 할까 정말 신났었다.
요즘 세상의 눈으로 본다면 정말 별거 없는 직장에 별거 없는 연봉에 미래도 보이지 않는 자리지만, 그땐 몰라서 그랬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뭐 다들 고만고만했다.
바나나랑 참치 캔 정도는 맘껏 먹을 만큼 벌고 사는 요즘 생각한다. 그때 내가 지금의 인터넷 정보에 노출되었다면 과연 행복했을까. 그땐 어리고 희망과 야망이 넘치고 꿈이 있어서, 에너지가 넘쳐서 그렇게 패기가 넘쳤을까 아님 뭘 몰라서 그랬을까. 고만고만한 이들 사이에서, 조금만 노력해도 잘 될 것 같다는 착각이 행복에 큰 도움이 된 건 아니었을까. 어쨌든 행복은 상대적이라고 하니, 우리 모두 인터넷 다 꺼버리고 인스타 페북 안 하면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