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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사 Oct 16. 2024

서화촌 프롬나드

나는 왜 미문만을 우려내고자 골몰하는가

나는 왜 미문(美文)만을 우려내고자 골몰하는가?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이따금 신선한 경험을 해보고자 늘 걷던 경로를 사알짝 변주(變奏)해본 일이 있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신선함을 찾는 일이로다.

그것은 늘 걷던 창릉천의 서쪽 제방 대신 동쪽 제방을 걸어보는 일이었다.


언제부터 나는 작문을 위한 산보를 하였는지―노정(路程)을 개시하기부터 어떤 글을 우려내어 볼까 싱글벙글하였다.


어떤 날은 글이 잘 써지지만 어떤 날은 잘 안 써지기도 한다. 글이 잘 안 써질 때는?―생각나는 대로 원고지를 메워 가면 그만이지.―나는 이를 이제야 깨달았다.


나는 왜 미문만을 우려내고자 골몰하는가. 작문 한 개 우려내어 보겠다고 창릉천 다녀오고서 원고지 칸 하나 메우지 못하는 것이 무엇 때문이냐 무엇 때문에 무엇 때문에 미문 때문에―미문 탓이로다.


글이 수수하고 정갈하였으면 그만이지 되도 않는 미문 우려낸다고 골몰하면서 글이 잘 안 써진다고 하면 퍽 가소롭다. 미문이 본디 만성(晩成)이거늘 미문 우려내기 안 하였으면 작문은 술술―.

노정의 개시부터 쓰면 된다. 우선 동쪽 제방은 표면이 요철(凹凸) 가득인 것이 그냥 애로(隘路) 그것이다. 자전차를 몰고 진행하자니 앞바퀴가 부웅 또 뒷바퀴가 부웅 그때 즈음이면 앞바퀴가 쿠웅 내려앉는 식이니 차라리 걷는 게 나을 지경이다. 허나 이 길은 수시로 화물차가 지나다니니 도보하는 이에게도 퍽 불친절하다. 하다못해 경운기라도 신고 다녀야 하는가.

나는 강 건너 서쪽 제방 너머 강반(江畔)에 솟은 아파트들을 바라본다. 구일(九日)에 나는 저곳에 있는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차나 한 잔 하며 원고지 스무 장을 두어 시간 만에 소비하였다. 허나 지금같이 한 장 메꾸는 데에도 종일인 경우가 있다. 미문 때문에.


그러면 눈이 본 것을 귀로 들은 것을 코로 맡은 것을 쓰면 그만이더라.


순창천이 창릉천에로 합류하는 이곳에 서화(瑞花)촌이라는 십여 가구가 모인 마을이 있다. 이 십여 가구라는 것이 본디 지금 중앙로라 일컬어지는, 서울 수색과 일산신도시를 잇는 신작로 자리에 있었는데, 그 신작로 건설로 인해 이곳에로 이주하였다고 한다. 1990년대 이주로 인해 만들어진 새로운 취락인 것이다.

우선 이 마을의 입구에는 한자로 ‘서화촌’이라 적힌 비석이 있다. 그 비석이 맞이하는 입구로 들어가면 십여 가구가 나온다.

특기할 사항은 이 십여 가구엔 집집마다 ‘서화촌’이라 적힌 명패가 있다는 것이다. 가운데 ‘서(瑞)’라는 글자와 태극 문양을 중심으로 손에 손잡은 이들이 둘러서 있는 모양의 휘장도 인상적이다.


이곳 또한 창릉신도시 개발 예정지에 포함되어 머지 않아 사라질 모습이다.


강이라는 소재는 으레 단절감을 준다는데 창릉천 건너로는 아파트라는 도시 문명이 관입(貫入)하였으나 이쪽은 아직 이십세기 ‘농촌 고양’의 경관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아 맞는 말이로다. 이런 대비의 광경은 볼 만하다. 같은 강을 마주하고도 서로 다른 생활을 영위한다.


서화촌을 떠난다. 나아가는 곳에는 비닐하우스가 일단 가득하다. 폐기물 처리장에서, 입체에서 평면이 되는, 물건들의 말로도 엿보고, 신작로를 질주해야 할 버스가 흙밭에 누워 있는 모습도 본다. 개가 짖어 대는데 이 개는 은못이에서 맞닥뜨린 개와는 달리 내 진로를 방해하지 않으므로 대치는 면한다. 하늘엔 조각구름 대신 비구름이 떠 있고 뭍에는 아파트가 설 듯싶다. 창릉천 양안(兩岸)이 마침내 같은 생활을 영위하게 될 거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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