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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SJ Aug 12. 2021

6-1. 무지개 산 비니쿤카, 오르다

[쿠스코]


비니쿤카는 가는 길조차 호락호락하지 않아


비니쿤카 투어를 위해 새벽 4시에 눈을 떴다. 태양이 뜨기엔 아직 이른 시각, 쿠스코의 새벽은 추웠다. 한낮에는 30도에 육박할 만큼 덥고, 태양은 타오르는 것처럼 이글대지만, 새벽에는 패딩까지 입어야 비로소 추위로부터 몸을 보호할 수 있었다. 게다가 비까지 내려 한기가 한층 더 진하게 내려 앉았다. 예정된 시각보다 늦게 작은 밴 한 대가 불빛을 밝히며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 추위로 지친 몸을 녹이기 위해 몸을 한껏 웅크리고 잠을 청하려는데, 몇 분도 채 이동하지 않아 다른 버스로 갈아타야 했다. 아쉬운 마음으로 허름한 버스에 몸을 실었다. 다른 승객들을 태우느라 버스는 1시간 동안 쿠스코 시내를 돌아다녔고, 기다림도 잠시 눈꺼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눈을 떠보니 가이드 알렉스는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고, 버스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아침식사 장소에 도착한 모양이다. 졸린 눈을 비비며 차에서 내려 식당으로 들어갔다. 가정집을 개조해 패키지 투어를 위한 식사 장소로 활용하고 있는 듯 보였다. 긴 나무 테이블 위로 조식이 준비되어 있었다. 오늘 조식 메뉴는 빵과 버터, 딸기잼, 따뜻한 코카차와 퀴노아 스프가 차려져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슈퍼푸드로 알려진 퀴노아를 이곳에선 주식으로 먹는 듯 했다. 몸에 좋은 음식이 입에는 쓴 법이라더니.. 퀴노아 스프는 너무 밍밍해서 맛도 없고, 은은하게 올라오는 특유의 향 때문에 먹는 것도 여간 쉽지 않았다. 그래도 산을 오르기 전에는 배를 든든히 채워야 하기에 꾸역꾸역 입 안으로 집어 넣었다. 비니쿤카는 쿠스코의 고산지대 중에서도 높은 곳이기 때문에 다른 지역보다 극심한 고산병을 느낄 수 있다고 들었다. 우리는 고산병에 좋다는 코카차를 서너 잔씩 마시고, 고산병 약 소로체필도 복용했다. 바로 옆 구멍가게에서 코카 캔디 몇 개를 사서 입안에 넣으며 만반의 준비를 했다.


다시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비좁은 산길과는 어울리지 않은 대형버스가 곡예를 부리듯 오르기 시작했다. 도로는 산길에 비포장도로라서 덜컹거림의 연속이고, 흔들림이 너무 심해서 정신이 산만해질 지경이었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건 아찔하게 깎여 급경사를 자랑하는 절벽. 만약 절벽 아래로 떨어진다면 뼈도 못 추릴 만큼 깊고 까마득했다. 심지어 자리에는 안전벨트도 없었다. 안전벨트가 있었다고 해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굽은 길을 돌 때마다 아슬아슬하게 길을 지나는 버스가 행여나 떨어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속으로 연신 기도를 했고, 무사히 통과하면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기를 반복했다. 사람은 궁지에 몰렸을 때 신을 찾는다더니, 종교를 믿지 않는 나도 이 순간만큼은 열심히 기도를 했다.



비니쿤카로 이동하는 중



혼이 반쯤 빠져나갔을 무렵 비니쿤카 초입으로 보이는 건축물이 보이더니 가이드 알렉스가 이제 곧 내릴 준비를 하라는 설명을 한다. 버스가 멈추고, 하나 둘 차에서 내리기 시작한다. 1시간 30분 동안 이어진 대자연 디스코팡팡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땅을 밟는데, 다리가 조금 후들거렸다. 그동안 비가 꽤나 내렸는지 지면 상태는 엉망이었고, 질퍽한 느낌이 좋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슬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어 우비를 꺼내 입어야 했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니 운무로 가득해 이곳이 도통 어디인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다. 제대로 온 게 맞겠지?



무지개 산 비니쿤카, 오르다


하늘은 온통 먹구름으로 뒤덮인 채 비가 내리고 있었다. 패딩을 입었는데도 비바람이 몸 속까지 파고들어 제법 추웠다. 등산하는 데 좋지 않은 조건이었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온 이상 정상을 향해 올라가야만 했다. 악천후도 우릴 막을 순 없었다. 가이드의 인솔을 따라 출발 지점으로 이동하는데 머리가 조여왔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도 말이다. 하긴 등산로 초입이라고 해도 해발 4,000m 에 달하는 지역이니 고산병이 없을 리 없지...! 정상은 5,036m, 우리는 약 1km를 올라가야 했다. 등산코스 시작점은 그동안 내린 비 때문에 진흙과 말 배설물이 뒤섞인 진흙탕으로 가득했다. 질퍽질퍽한 진흙 위로 몇 발자국 내디뎠더니 신발과 바지 밑단이 금세 더러워졌다. 더구나 나와 S는 흰색 운동화를 신은 탓에 얼룩이 신발에 선명하게 묻었다. 처음에는 진흙을 밟지 않으려고 신중하게 걸었지만, 이내 마음을 비우고, 모든 걸 내려놓은 채 걸어 올라갔다.





등산로 입구에는 체력이 약한 등산객을 위해 정상 근처까지 말을 타고 이동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등산로를 따라 걸으면서 편하게 말을 타고 산을 오르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었는데, 호사를 누리려면 1인당 70솔에 육박하는 거금을 지불해야 했다. 우리는 경제적 여유도 없었거니와 지쳐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온 몸으로 부딪혀봐야 하지 않겠냐는 청춘의 패기를 발휘해 직접 걸어서 비니쿤카를 오르기로 했다.


고산을 오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고산병이 쉴 새 없이 괴롭혀 한국에서 등산하는 것보다 수십 배는 더 힘들다. 호흡이 거칠어지고 곧이어 두통이 찾아와 머리가 지끈거린다. 친구들의 안색을 살펴보니 고산병으로 여간 편치 않은 듯 보였다. 

‘하아.. 하아..’

어느새 말수가 확 줄었고, 거친 호흡만이 그 공백을 메우고 있었다. 게다가 비가 내리다 그치고, 해가 반짝이더니 금방 다시 흐려지고 비가 내리기를 수 차례 반복하는 날씨는 우리를 더욱 힘들게 했다. 등산로가 좁아서 일렬로 걸어갈 수 밖에 없었는데, 여기서 뒤쳐지면 길이 막히는 바람에 힘들어도 참고 걸어야 했다. 가방 속에 챙겨 둔 코카차를 마시고 코카 캔디를 먹으며 숨을 고른 후 다시 힘을 내서 길을 나섰다.


천천히 오르면서 주변 경관을 둘러보며 호흡을 가다듬어야 했다. 왼편 저 멀리 커다란 호수도 보이고, 들판에는 라마 무리가 한적하게 풀을 뜯고 있었다. 고도가 얼마나 높은지 바로 옆으로 가파르게 솟아 있는 산줄기를 따라 구름이 올라가고 있었다. 거친 호흡을 가다듬고, 요동치는 맥박을 가라 앉히는 우리와는 정반대로 평화로운 장면이었다. 아름답게 펼쳐진 장면들을 보고 있으니 지친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건 각 휴게 장소에 좌판을 펼치고 기념품을 판매하던 상인들과 그 옆에서 해맑고 웃고 있던 아이들. 한 손에는 어린 아이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에는 물건을 담은 보따리를 짊어지고 이토록 험준한 곳까지 어떻게 올라온 걸까? 세상은 넓고 신기한 일은 참 많은 법이다.



비니쿤카 오르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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