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즈]
라파즈로 가자
원래 계획상 우리의 다음 행선지는 우유니였다. 항공권을 저렴하게 구매한 대가로 라파즈에서 19시간 동안 경유해야만 했다. 처음에는 라파즈 공항에서 노숙하기로 했지만, 비니쿤카를 다녀온 후 체력 부담이 크기도 했고, 앞으로의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휴식을 취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하여 라파즈 시내에 숙소를 구했다. 정들었던 쿠스코 숙소를 떠나 다음 장소로 향했다. 다른 숙소에 비해 머물렀던 시간이 많았던 만큼 더욱 애틋했다. 쿠스코 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를 타러 갔다.
비행기가 있는 곳까지 걸어서 이동했다. 비행기치고 귀엽고 앙증맞은 외형이었다. 군대에서 자주 봤던 민간 수송기 CN-235보다 더 작은 크기였다. 우리 자리는 1열이었다(1A~1F) 비행기 맨 앞좌석(First class)도 타보고 참 운이 좋다고 우스갯소리를 해댔다. 그러고보면 우린 참 긍정적이었다. 이런 사소한 부분에서도 긍정적인 면을 끌어내는 걸 보면 말이다. 긍정적인 사고와 유쾌함, 유연한 태도 덕분에 30일 동안 다툼 한번 없이 즐겁게 여행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쿠스코에서 라파즈까지 이동하는 데 1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버스로 이동했으면 5시간은 족히 걸렸을 거리였다. 역시 비행기가 최고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도, 라파즈
비행기에서 내리자 금방 숨이 차기 시작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도라는 명성에 걸맞은 도시답게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찼다. 라파즈의 고도는 쿠스코보다 약 400m 더 높은 3,625m이며 위성도시 엘알토는 무려 4,150m에 달하는 고도를 자랑한다. 라파즈 공항은 도시의 가장 높은 지역에 있었기 때문에 시내까지 빙빙 돌아 내려오는 데 한참 걸렸다. 공항에서 조금만 벗어나자 라파즈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꼭 라파즈 공항이 하늘 궁전처럼 느껴졌을 만큼 건물들이 조그맣게 보였다.
라파즈의 첫인상은 썩 좋지 않았다. 숙소가 라파즈의 중심부에 있었지만, 갓길에는 너저분하게 주차된 차가 많아서 도로의 상태가 어지러웠다. 차량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연이 정말 심해서 차가 지나가면 숨쉬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보행로도 좁았고, 곳곳에 쓰레기와 오물이 있어서 쾌적하진 않았다. 회색빛의 도로만큼이나 흐린 하늘이 한층 더 분위기를 어둡게 만들었다.
호텔에 도착해 체크인을 했다. 호텔 직원은 친절하게 우리를 맞이하였고, 능숙한 솜씨로 알맞은 절차에 따라 체크인을 마쳤다. 4인이 쓰기에 숙소는 충분히 넓었다. 침대에 널브러져 편안하게 쉬다가 다음 일정에 대해 의논했다. 볼리비아에서 쓸 돈이 필요했기에 우선 환전을 하고 식사를 하기로 했다. 라파즈는 수도라서 우유니보다 환전소를 찾기가 더 쉬울 거라고 예상했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라파즈에서 쉬어가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밖으로 나섰다.
광장으로 이동하자 사람이 많았다. 광장 한가운데에서 한창 공연을 준비하느라 바빴고, 성당 앞은 관광객과 상인들로 붐볐다. 도로에는 차량도 많았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떤 남성이 천천히 지나가는 봉고차를 불러 세우더니 자연스럽게 차량으로 뛰어들어 합석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봉고차를 타고 이동하다가 목적지에서 내린다고 한다. 이를 꼴렉티보 택시라고 부르는데, 볼리비아에서는 버스를 대체하는 교통수단이라고 한다. 하지만 외국인이 이 교통수단을 이용하기엔 상당히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적절한 타이밍을 맞춰 봉고차에 탑승하는 게 난관일 듯 싶다. 처음 보는 장면에 문화 충격을 받은 상태로 길을 건넜다.
코스요리를 3,000원에 드립니다
환전을 마치고 식당을 찾아 헤매던 길에 닭고기와 돼지고기를 판매하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당에 앉아 메뉴를 달라고 요청했는데, 메뉴판은 가져다주지 않고, 접시를 세팅하더니 대뜸 음식부터 나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사장님께 물어보니 이 식당은 코스요리만 판매하는데 1인당 20볼만 내면 된다고 말했다. 7볼에 1달러였으니까 20 볼이면 한화 기준으로 약 3,000원 정도 하는 셈이었다. 닭고기 코스와 돼지고기 코스를 각각 2인씩 주문했다. 닭고기 메뉴는 치킨, 삶은 감자, 샐러드, 밥 그리고 튀긴 바나나로 구성됐고, 돼지고기 메뉴는 돼지고기 스테이크, 삶은 감자, 밥, 카레소스가 들어 있었다. 음식은 페루 음식보다 덜 짜고 덜 자극적이라서 좋았다. 무엇보다 가격 대비 양이 푸짐해서 든든하게 먹을 수 있었다. 이후 디저트까지 깔끔하게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자 하늘에 새까만 먹구름이 드리워지더니 바람도 심상치 않게 불었다. 돌아오는 길에 마녀시장을 가볍게 훑어보듯 둘러 보고, 서둘러 숙소로 돌아갔다.
볼리비아에서 인생 피자를 만나다
숙소에서 한없이 늘어져 쉬다가 저녁 먹으러 나왔다. 숙소 바로 옆 Mozzarella Pizza에서 저녁을 해결하기로 했다. 가게는 작았지만, 사람들로 꽉 찼고, 포장해 가는 사람들이 계속 들어오는 걸로 보아 맛집이 분명했다. 테이블마다 손님들이 휴지나 종이에 리뷰를 적고 테이블 유리 밑에 끼워 두고 간 것을 보고, 한 번 더 맛집임을 확신했다. 화덕에서 직접 구워 내다 보니 피자가 나오는 데 오래 걸렸다. 40분을 기다린 끝에 주문한 피자가 나왔다. 한 조각씩 나눠 먹기 위해 피자 4판을 스몰사이즈로 주문했다. 치즈가 지글거리고, 토핑이 아낌없이 올라갔다. 비주얼은 일단 합격이다. 한입 베어 물자, 치즈의 풍미와 온갖 토핑들이 어우러져 입안에서 맛의 오케스트라가 펼쳐졌다. 재료들은 서로 조화를 이루며 섬세하게 선율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화덕에서 구워내서 토핑의 식감이 살아있고 촉촉했다. 피자 도우마저 바삭하고 맛있었다. 너무나도 훌륭한 맛이다. 40분의 기다림은 가치 있는 투자였다. 스몰사이즈 한 판에 28~30볼로 대략 4~5,000원인 셈인데 가격과 맛 모두 만족스러운 피자였다. 다시 한번 볼리비아의 저렴한 물가에 감사했다. 정말 맛있게 먹었던 인생 피자다. 남미 여행 중 먹었던 음식 중 손에 꼽을 정도로 맛있었다.
라파즈의 야경이 유명한 데는 이유가 있다
숙소 옥상에 올라가면 라파즈의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는 호텔 직원의 말을 듣고, 부리나케 옥상으로 향했다. 옥상에서 본 라파즈의 야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도심 중심부는 저지대에 있고, 높은 지형으로 둘러싸인 분지형 고산지대의 야경은 서울의 야경과는 색다른 분위기였다. 가장 낮은 지대는 번화가로, 고층건물이 여럿 있어 도시 느낌이 풍겼고, 산을 따라 빼곡하게 수 놓인 주택들과 가로등에서 나오는 불빛은 거대한 크리스마스 트리를 연상케 했다. 게다가 밤하늘에 떠 있는 보름달은 야경과 함께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핸드폰으로 영상을 촬영해도 제대로 담기지 않아서 눈으로 담았다. 수도임에도 지저분한 거리와 낙후된 시설, 위험한 치안 때문에 라파즈의 첫인상은 좋지 않았는데, 야경만큼은 정말 아름다웠다. 야경으로 명성이 유명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오늘의 가계부
우버택시 (쿠스코 숙소~쿠스코 공항) 18솔
일반택시 (라파즈 공항~사마하 호텔) 80볼
사마하 호텔 숙박비 539.50볼
볼리비아 코스요리 점심식사 94볼
모짜렐라 피자 134볼